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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영화답게 깔끔하고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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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제맛이었다.
작가주의 영화보다는 분명히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인데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솔직히 놀랐다.
봉준호 영화는 큰 기대없이 편하게 봐야 재미있는데 수상 소식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뭐, 암튼, 정신없이 바쁜 5월을 보낸 뒤끝이라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보려고 개봉 첫날부터 극장을 찾았다.


주중 낮시간이었는데도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았고 성별과 연령층도 다양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영화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처음부터 영화에 바로 집중할 수 있었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희화화해서 보여주면서 시작한 영화는
곧바로 최상위층의 고급스러운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그 둘의 삶을 명확하게 대비시킨다.
이런 식의 설정과 대비는 익숙한 방식인데도 봉준호답게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설정돤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들이 약간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깔끔하기는한데 현실적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
초반부터 이렇게 테클을 걸면 영화보는 재미가 없어지기에 내 스스로를 달랬다.
“야, 봉준호 영화를 보면서 리얼리즘 영화를 기대하면 안되지.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봉준호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다시 영화가 재미있어지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다지 억지스럽지 않은 상황 설정 속에서 인물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약간은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 냇물처럼 졸졸졸 흘러갔다.
그리고 중간쯤 지나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반전하는데
이 역시 약간은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었지만 억지스럽지는 않았다.
그렇게 편하게 그들의 좌충우돌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조금씩 인물들의 행동들이 예상을 빗나가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렇다고 완전한 반전이 일어나면서 전체 흐름이 확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인물들이 통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좌충우돌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되버렸는데 무질서한 난장판도 아니고 명확한 흑백대립도 아닌 묘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자기위치를 벗어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밀고당기기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거였다.
그때 마음 속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 이게 봉준호 영화야! 그리고 지금까지 봉준호 영화랑은 다른 점이고!”


그렇게 놀이를 즐기듯이 한바탕 뛰놀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반지하로 돌아온 가족들의 상황은 좀전의 대저택에서의 상황과 너무 티나게 대비가 되고 인물들의 대사들은 잔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유롭게 뛰놀던 상황에서 무게감에 살짝 짖눌리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니까 관객들도 조금 짖눌리는지 곳곳에서 휴대폰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독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앞둔 숨고르기 겸 주제의식을 살짝 드러내보일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관객들에게는 김빠지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뭐, 암튼, 그 순간은 길지 않게 끝났고
다시 의도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서 앞서의 자유로운 난장판이 다시 벌어지는데
이번에는 좀더 압축된 상황에서 격렬한 형태로 진행됐다.
그 과정 역시 약간은 예상할 수 있는 전개였지만
인물들의 자유로운 행동들이 흐름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결과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끝나고 영화를 정리하는데
감독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지 조금 늘어지기는 했지만
깔끔하고 무리없는 자연스러움으로 영화는 마무리됐다.


봉준호 영화다운 영화였다.
그 깔끔함과 자연스러움에 자유로움까지 더해지니 봉준호 영화 중에 가장 뛰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봉준호답지 않은 영화이기도 했다.
양극화된 계급사회에 대한 주제의식은 분명한데 너무 자유롭게 춤을 추다보니 칼날이 엄한 곳으로 향해버린 꼴이었다.
차라리 그 주제의식을 내던져버렸더라면 ‘마더’처럼 아주 힘있는 영화가 됐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봉준호 영화는 재미있기는한데 색깔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설국열차’ 이후부터는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는 있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그의 선명한 주제의식과
상업적이고 예술적이기까지 한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가는 방법론에서
자기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삶 속에서 나오는 계급적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욕망과 좌충우돌은 영화적 에너지로만 끝나버렸고
관객들은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나서 뭔가 찝찝한 뒤끝을 느껴야만 했다.
“싸움을 할려면 정면으로 하든가 그렇지 않으려면 그냥 자유롭게 뛰놀기만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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