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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36회 – 행복을 느끼는 순간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오늘도 문을 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들풀입니다.

 

 

저도 저 이불과 버개처럼 맑은 가을하늘 아래 햇볕을 받으며 늘어져 있고 싶어졌습니다. 방송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난주에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조금 어수선했습니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게 문틈으로 작은 쪽지가 끼어져있었습니다.

얼른 꺼내서 봤더니 득명님이 지난 방송에 대한 소감을 남겨주셨더군요.

보잘 것 없고 산만한 가게를 일부러 찾아와 남겨준 쪽지에 어지럽던 기분이 확 풀렸습니다.

 

특별한 것 없이 그저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뿐인데

누군가는 그 소소한 일상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나 봅니다.

우리의 삶이 답답하고 건조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보잘 것 없는 방송이 그런 삶에 아주 살짝이라도 밝고 따스한 햇살로 느껴진다니

너무 너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득명님의 짧은 쪽지가

거울이 돼서

그 햇살을 제게 비춰줬네요.

아~ 좋다.

 

 

2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가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너에게는 곧 엄청난 불행이 찾아올 거야. 네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불행이지. 피할 수 없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대신 부탁할 게 있어. 그 슬픔을 창고에 넣어두고 살면서 매일 감당할 수 있을 자신이 생길 때만 조금씩 따라 마셔. 걱정하지 마. 네 몫으로 정해진 그 불행은 어디 가기 않아. 그러니 절대로 한 번에 들이켜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너에게 새로 주어지는 일상을 지켜내길 바라. 기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는 소중한 거야.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길 바라. 무엇보다 스스로를 좀 더 아껴주었으면 좋겠어. 대단히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매일매일 너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지냈으면 좋겠어.

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 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들여. 깊이 고민하지 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

 

 

산만언니의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에서 한 부분을 읽어봤습니다.

온몸으로 몸부림치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얘기는 그 힘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구절 하나하나 허투루 흘려버리고 싶지 않는 그런 글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불행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불행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차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으니까요.

 

무탈한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나를 아껴주며

작지만 행복한 일을 하면서 지내는 삶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를 감싸고 있는 불행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절절하게 얘기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산만언니님, 아직 가을햇살이 따뜻해서 너무 좋네요.

 

 

3

 

말엽의 단편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

 

 

이 시는 미국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었는지 어떤 글을 썼는지는 잘 모르지만

묘비에 새겨진 글로는 아주 최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죽는 순간에 내가 사랑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게 않을까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서 얼마나 오래 사랑받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겠죠.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득명님이 느꼈을 밝고 따뜻한 햇살을 제가 오롯이 느낄 수 있고

산만언니님의 얘기를 제 마음 속 따뜻한 곳에 간직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느낌이 여러분에게도 전해지질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장필순의 ‘슬픔이 너의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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