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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37회 – 마음의 온기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면 살아가자, 서른일곱 번째 불을 켭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아주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를 원 없이 즐기나 했었는데

오래간만에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지고

그 뒤를 이어 미세먼지까지 밀려왔습니다.

이제, 겨울을 맞이해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민씨와 같이 지내는 사랑이도 날씨가 추워지니까

안방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안방 바닥이 조금 미끄러운데다가 마루가 시원하기도 해서

평소에는 화장실 입구 깔개에서 자리를 잡곤 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보일러가 틀어져있는 안방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1m 정도 자리를 이동한 것인데도

사랑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듯해서

성민씨는 좋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온기를 더 찾게 되는 때인데요

이럴 때일수록 읽는 라디오의 진가가 더 빛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들 마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오늘도 작지만 따뜻한 얘기 나눠보려 합니다.

 

 

2

 

♥ 고령세대의 마음가짐 ♥

 

혼자 지내는 버릇을 키우자.

남이 나를 보살펴 주기를 기대하지 말자.

남이 무엇인가 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자.

무슨 일이든 자기 힘으로 하자.

죽는 날까지 일거리가 있다는 것을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하자.

젊었을 때 보다 더 많이 움직이자.

늙으면 시간이 많으니 항상 운동하자.

당황하지 말고, 성급해 하지 말고, 뛰지 말자.

체력, 기억력이 왕성하다고 뽐내지 말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기르자.

나의 괴로움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지 말자.

편한 것 찾지 말고 외로움을 만들지 말자.

늙은이라고 냉정히 대하더라도 화내지 말자.

자식들이 무시 하더라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친구가 먼저 죽어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자.

고독함을 이기기 위해 취미생활과 봉사활동을 하자.

일하고 공치사 하지 말자.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마음과 다른 인사치례는 하지 말자.

칭찬하는 말도 조심해서 하자.

청하지 않으면 충고하지 말자.

남의 생활에 참견 말자.

몸에 좋다고 아무 약이나 먹지 말고 남에게 권하지 말자.

의사를 정확히 말하고, 겉과 속이 다른 표현을 하지 말자.

어떤 상황에도 남을 헐뜯지 말자.

잠깐 만나 하는 말, 귀에 담아 두지 말자.

가끔 오는 식구보다 매일 보살펴주는 주위 사람에게 감사하자.

할 수 없는 일은 시작도 하지 말자.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동물을 기르지 말자.

사진, 감사패, 내 옷은 정리하고 가자.

후덕한 늙은이가 되자.

즐거워지려면 돈을 베풀자.

그러나 돈만 주면 다 된다는 생각은 말자.

일을 시킬 때는 자식보다 직업적인 사람을 쓰자.

일을 시키고 잔소리하지 말자.

외출할 때는 항상 긴장하자.

젊은 사람 가는데 동행하지 말자.

여행을 떠나면 여행지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자.

도와줄 수 없다면 이사를 가거나 대청소를 할 때 자리를 피해주자.

음식은 소식하자.

방문을 자주 열고 샤워를 자주 하자.

몸을 단정히 하고 항상 화장을 하자.

구취, 체취에 신경 쓰자.

옷차림은 밝게, 속옷은 자주 갈아 입자.

이웃을 사랑 하자.

늙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자.

인간답게 죽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자.

늘 감사 하자.

그리고 또 감사 하자.

늘 기도 하자.

그리고 또 기도 하자.

항상 기뻐하자.

그리고 또 기뻐하자.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아직 고령세대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지만

읽다보니 굳이 고령세대가 아니더라도 곱씹어볼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글 하나하나를 읽어내려 가면서

자연스럽게 제 삶을 비춰봤는데

크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아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채우거나 버리거나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글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으면서

읽는 것만으로 경건하게 만들어줬거든요.

 

원고를 쓰기 위해 이 글을 다시 읽고 나서

샤워를 했습니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몸이 가뿐해진 느낌입니다.

이제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불어넣어봐야겠네요.

 

 

3

 

몇 차례에 걸쳐서 들려드리고 있는 삼풍 생존자 산만언니의 얘기 마지막 순서입니다.

산만언니가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그 것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것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까요?

 

 

이 작업을 하며 그간 조금 특이한 일을 겪었다. 바로 내 글을 먼저 읽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화 도중에 속 깊은 상처를 드러내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눈물에 당황했다.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주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번은 ‘그래, 아무데서나 이렇게 울 정도로 많이 힘든가 보다’ 했는데, 그 후로도 지금까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오히려 이 상황이 난감했다.

물론 그들의 심정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전에 나 역시 한동안 폐쇄 정신과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던 한 작가의 책을 보다가 그에게 무작정 내 심정을 적은 이메일을 보낸 적 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어떻게 아팠냐. 이런 이야기해주어 고맙다.’ 물론 그에게로부터 답장 받지 못했다. 상관없었다. 그저 내 마음을 알 것만 같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 같은 심정이 아닐까. 그때의 나처럼 그들 역시 내 앞에서 그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

 

이때 깨달았다. ‘나 역시 우리 수녀님처럼 앞으로 내 앞에서 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음을 그냥 알아주기만 해도 되겠구나. 이렇다 저렇다 긴말할 것 없이. 그냥 이렇게 마음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되겠구가.’ 물론 수녀님과 정반대로 우리 정신과 선생님은 내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신다. ‘본인도 아프면서 왜 힘들게 남 이야기 듣고 나니느냐. 그 사람들을 차리라 가까운 정신과에 보내라. 아니면 나처럼 돈을 받고 들어주어라. 그리고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에게 응급처치를 해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 내내 ‘사람들 힘든 이야기 많이 들어주어라. 요즘 세상에는 그게 필요하다’ 하시는 수녀님 말씀과 ‘언제나 자신의 상태부터 먼저 돌보라’는 정신과 선생의 조언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산만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동변상련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같은 고통을 겪어봤던 이들이 상대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건데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 힘겨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눈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도 힘들기 때문이죠.

 

박완서 작가님도 다른 톤으로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요

자신과 같은 고통을 호소하며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싫었다고 했습니다.

의지하지 말고 그냥 견디라고 모질게 얘기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처방은 수녀님이나 정신과 의사선생님과는 또 다른 방향이기는 했습니다.

 

결국 나의 고통을 이겨내는 힘은 내 자신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는 거겠지만

누군가 고통을 호소할 때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을 해주든

전문가의 조언을 안내하든

혼자 징징거리지 말라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든

그 방식은 다양할 겁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외면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산만언니가 너무도 힘들 게

지난 고통의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꾸역꾸역 적어놓았던 이유가 그것이겠죠.

 

 

 

(Eric Whitacre의 'Lux Aurum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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