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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9회 – 어지러웠던 마음을 정리해줬던 얘기

 

 

 

1

 

“예전에 알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해 와서 많이 힘드니 조금만 도와달라고 한다면...”

“내가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도와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10년 동안 내게 눈길 한 번 보내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내 소식을 전해 듣고 이런 연락을 한다면...”

지난 방송에서 이런 상황을 설정해놓고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에 대해 득명님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저는 연민은 사랑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하고 있어요. 저라면 정중히 거절하고 그냥 살아가시게 둘거 같아요. 그런 무게추가 오히려 그에게 도움이될거라 생각해요.

 

어찌보면 누굴 도운다는게 진짜 돕는건가? 내 자기만족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구요. 한편으로는 직장동료들을 보며 노력하지 않는 무지는 죄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늘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고 항상 옳을 수도 없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하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싱싱한 호박잎이 정겹고 맛있어 보입니다. 마음 편해지는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

 

 

득명님의 의견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들이 제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들어보려고 며칠 동안 가만히 제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습니다.

오늘 방송은 그렇게 들려온 마음의 소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2

 

득명님의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슬프다’였습니다.

제가 삶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도와달라고 외칠 때

진보와 민중과 혁명과 연대를 외치던 무수한 사람들이 저를 외면했었습니다.

그 배신감과 실망감은 고스란히 마음의 문신으로 남았습니다.

 

그 무수한 사람들이

“그가 스스로 살아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야”

“내가 그를 도와주는 것이 자기만족은 아닐까?”

“나는 늘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어. 그냥 마음가는대로 하면 돼”라면서 외면한 것이라면

저는 그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치열하게 살아왔던 제 삶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슬퍼지더군요.

 

 

3

 

가끔 sns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접하게 됩니다.

제가 모르는 분이 dm이나 댓글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구구절절 얘기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글을 접하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삭제하고 그 사람을 차단해버립니다.

한편 힘든 시기를 보내는 누군가를 도와주자는 글이 올라오거나, 간혹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간략히 적으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 글을 접하면 안쓰러워서 작은 금액이라도 마음을 전하곤 합니다.

 

제가 간절하게 바래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누군가의 얘기에서 간절함이 느껴진다면 그 마음을 외면하기 어렵고

그렇지 않다면 단호하게 물리치게 됩니다.

하지만 연민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얼마의 돈을 보내는 것이 전부이고

그 이상으로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너무도 차갑고 이기적인 세상을 뼈저리게 경험해서 그런지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를 외면했던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연민으로 그 ‘다른 모습’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득명님의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4

 

귀농한 후 길고 힘들었던 시기를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기운을 되찾게 됐더니 다시 사람들이 그립더군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사람들과의 연결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농사지으며 지내는 소식도 전하고 농사지은 것들도 나눠주고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주 반가워하고 좋아해줬습니다.

 

그렇게 관계들이 조금은 회복되나 싶었을 때

저에게 또다시 어려움이 찾아왔고

저를 반겨줬던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역시나 찬바람만 불어오더군요.

 

그때마다 저의 선택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세상에서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발 한발 세상에서 뒷걸음질치다보니 제 곁에는 남아있는 것은 사랑이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버리고

세상에 그다지 연연하지도 않으니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이어지더군요.

 

그렇게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제 머릿속의 상상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복원해내고

그렇게 상상 속에 복원된 관계가 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때 득명님이 “나는 늘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고 항상 옳을 수도 없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하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얘기를 해주시는 겁니다.

득명님의 이 얘기가 머릿속 상상들과 어지러운 상념들을 날려버리더군요.

 

뭔가를 애써 만들어내서 고민하지 말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다가

누군가가 다가왔을 때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가면 되는 것인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가야겠네요.

 

 

5

 

득명님은 텃밭에서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호박잎 사진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지셨다고 했습니다.

별 볼일 없는 가난한 농부의 소박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안겨줄 수 있다니 참으로 기분 좋은 얘기입니다.

찾는 이 거의 없는 외지고 볼품없는 이곳이지만 이렇게 마음의 편안함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요.

 

 

 

(샤를르 드 푸코의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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