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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서 하우스 안에 잡초들이 무섭게 올라왔습니다.
잡초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예초기 작업을 했습니다.
겨울을 버텨낸 풀들이라서 조금 질기더군요.
평소보다 오래 작업을 했지만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성한 풀들을 잘라내서 마음도 시원했고, 오래간만에 몸을 움직여 일을 했더니 몸도 개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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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끝내고 의자에 앉아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들을 바라봤습니다.
많은 고민과 걱정 속에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면서 달려온 1년이었습니다.
다음 달에 수확할 때까지 물관리만 잘 하면 되는데, 작년에 마지막 물관리를 실패하는 바람에 한해 농사를 망쳐버린 경험이 있어서 긴장을 놓치는 못합니다.
긴장과 고민들은 아직 쌓여있지만 풍성하게 달린 감귤들이 제 마음을 달래주더군요.
풍성한 감귤들을 보면서 수확 후에 나눠줄 사람들을 점검해봤습니다.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해마다 주위 사람들과 나누면서 즐거움을 함께하려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1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감귤을 받고서야 연락하는 사이가 무슨 의미가 있어?”
“매년 받다보니까 이맘때가 되면 당연히 감귤을 받아보는 걸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너는 진정성을 그렇게도 강조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너의 진정성이 얼마나 가 닿을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제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얘기들이었습니다.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감귤나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소통하려고 해보지만
제 마음은 제자리를 맴돌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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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맘때 감귤이 병에 걸려서 모두 따서 버려야했습니다.
너무나 쓰라린 마음을 달래면서 감귤나무 전정을 했고
다시 새순과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다시! 시작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읽는 라디오의 다섯 번째 시즌인 ‘다시!’가 시작됐습니다.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제 힘으로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젊었을 때처럼 무작정 세상을 향해 뛰어들 자신은 없지만
한발 뒤로 물러나 움츠러든 채 자신만의 아지트에 안주하지는 않으려합니다.
12년 전 ‘내가 우스워 보이냐?’라며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쳤듯이
다시 세상을 향해 주눅 들지 않고 외쳐보려고 합니다.
무슨 선언문처럼 당당하게 포부를 밝히면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고
제 자신이 생각보다 힘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의욕도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중늙은이로 늙어가고 싶지 않아서
3년 동안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 동안
의사들이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었고
“정신병자가 거리를 활보한다”며 난리가 났고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계엄령을 경험해봤고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학살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끔찍한 산불로 두려움에 떠는가하면
상상하기 힘든 폭우와 가뭄 때문에 난리가 나고
끝 모를 폭염을 숨죽여 견뎌야 했습니다.
미쳐 날뛰는 세상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살아가는 마음을 간직하자”고
수없이 되뇌어왔습니다.
그것이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제 마음은 반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3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사람에 의한 상처’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이전 시즌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부터 생각하면 5년을 그렇게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빈약하기만 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더 헐거워져갔고
매번 갈고 닦으며 노력했던 제 마음은 제자리를 맴돌기만 할 뿐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삶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살게 됐는데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려는 노력이
오히려 욕심이 돼서 제 발목을 잡는 걸까요?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떤 조건과 흐름이 잘 맞아들었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저를 중심으로 강한 힘이 만들어졌습니다.
반대로 그 조건과 흐름이 흩어지면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미미한 존재로 남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의 조건과 흐름을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세상이 점점 미쳐 돌아가는 이 상황에서
저의 노력은 너무도 미약해서
쓸려가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걸까요?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제 삶의 조건도 많이 바뀌었는데
변화를 받아들이며 혁신하려는 노력은 포기한 채
주어진 조건에만 안주하려던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일까요?
아니면
저의 노력이
더 근본으로 들어가
더 깊어져야하는 걸까요?
제 자신을 객관화하며 저를 돌아보려 노력해보지만
그럴수록 고민과 상념들만 쌓일 뿐입니다.
이럴 때는 생각을 멈추고 비우는 것이 최고입니다.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들쑤시다가
서서히 가라앉으면 조금은 편안해지겠죠.
그때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걸 붙잡고 씨름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읽는 라디오 다시!’는 여기서 멈추려고 합니다.
3년 동안 해왔던 노력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고민과 상념들이 가라앉은 자리에
뭔가가 남아있겠죠.
그러고 나서 또 새로운 도전을 해볼 마음이 생기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3년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주셨던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캐스커의 ‘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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