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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니까 조합원들이 달라졌어요 - 수배중인 공무원노조 윤선문 사무국장

 


최근 공무원노조 투쟁과정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상태에 있는 윤선문 남구지부 사무국장을 만났다.

차분한 성격에 말도 많지 않은 윤선문 사무국장과 같은 경우는 인터뷰하기가 참 힘들다. 질문을 해도 대답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활동과 투쟁에 대한 얘기에 들어가면서 단호하면서도 열정적인 얘기들이 나왔다.

91년 공무원이 돼서 1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해 왔던 윤선문 사무국장은 2001년 직장협의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결합하면서 남구지부를 중심으로 노조활동을 계속해왔다. 특별한 동기가 계기가 있었던 것 없이 1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들이 많아서 주위 흐름 속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1년 남구청직장협의회 총무부장을 맞은 후, 2002년 3월 창립대의원이 되어 고려대에서 창립대의원대회에 참가했지만 경찰에 연행되고 말았다. 이어 2002년 11월 연가파업을 벌이고 한양대로 모였지만 역시 연행됐다. 2004년 남구지부 부지부장을 맡으면서 활동하던 중 12월 공무원노조 총파업을 벌였지만 이내 총파업전선은 무너졌고, 막 바로 시청 앞에서 징계저지 천막농성을 벌였지만 그것마저도 연행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실형선고를 받게 돼서 해고가 이어졌고, 2005년에 남구지부를 떠나 울산본부 조직국장으로 잠시 활동을 하다가 2006년 다시 남구로 돌아와 남구지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5년 동안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노조활동 자체로는 크게 어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것은 조합원들의 생각을 읽고, 하나로 조직하는 것이었어요. 아직도 그것이 제일 힘들죠.”

공무원노조는 2006년 초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1월에 있었던 3기 임원선거와 민주노총 가입 찬반투표는 정부의 투표행위 불법 규정으로 매우 힘겹게 진행됐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가 끝나자마자 법무부, 행자부, 노동부 3개 부처 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해 공무원노조에 대한 강경입장을 밝혔고, 그에 따라 각 자치단체에서는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면서 조합비 원천징수 거부 등의 탄압이 이어졌다.
3월에 들어서면서 행자부의 자진탈퇴 추진지침이 나오면서 다시 노정간 갈등이 전면화 됐고, 3월 31일 울산시청에서의 자진탈퇴 교육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윤선문 사무국장의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각 구청과 교육청 등에서 탈퇴저지투쟁을 다양하게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4월 말 자진탈퇴 직무명령이 내려지면서 매우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게 됐다.

“구청 집행부와 노조 사이에 조합원이 있는데, 조합원에 대한 판단이 서로가 달랐어요. 구청에서는 노조를 탄압하더라고 조합원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노조에서는 간부들이 투쟁하면 조합원이 움직일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거죠. 상황을 계속 확인하면서 위기감이 높아졌어요.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하면 조합원들이 더 크게 동요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노조에서 먼저 천막을 치면서 투쟁에 들어갔던 거예요.”



5년 동안 크고 작은 투쟁들을 수없이 경험했고, 해고와 구속 등 모진 탄압도 받아왔지만 공무원노조의 조직력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다. 특히 울산본부는 대규모 징계 등의 여파로 조직력이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벌어지는 간부중심의 투쟁은 과감한 결단력만이 아니라 조합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힘든 투쟁이 될 수 있다. 윤선문 사무국장은 투쟁을 벌이면서 그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떨어 놨다.

“4월 30일 천막농성에 들어가지 전에는 정말 위기의식이 높았어요. 노조탈퇴 직무명령이 떨어지면 조합원 대부분이 탈퇴서를 낼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구청에서도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강행하려 했던 것이죠. 그래서 천막을 쳤어요. 5월 1일 정례조회 저지투쟁과 5월 2일 천막 사수투쟁을 벌이면서 조합원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지는 거예요.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주기도 하고, 출근할 때 유인물을 나눠주면 반갑게 받아 가고, 지금도 고생한다고 연락이 많이 와요. 남구에서 싸우니까 다른 구청에서도 눈치를 보게 됐어요.”

“조합원들이 탈퇴서를 갖고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한 투쟁목표였기 때문에 솔직히 그 이상의 대중행동을 조직하는 계획과 여지가 없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간부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간부들이 흔들리다보니 투쟁이 제대로 되지 못했거든요.”

투쟁이 벌어지자마자 갑작스럽게 수배상태에 놓여 있어서 불편함도 많고, 안타까움도 많았다. 차분한 성격이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얘기 속에서 마음은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처음에는 물리력으로 짓누르려고 했어요. 그런 의도가 관철이 되지 않자 이렇게 발목을 묶어 놓고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투쟁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있어야 하는 것이 안타깝죠.”

지금 투쟁이 어떻게 되든 윤선문 사무국장은 두 번째 옥살이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담담하면서도 단호했다.

“어차피 각오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갈 생각은 없습니다. 처음 구속됐을 때는 구속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얘기를 못했거든요. 이번에는 두 번째니까 법정투쟁도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난 3월 31일 행자부 교육저지투쟁 과정에서 부러진 손가락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데 수배상태까지 겹쳐서 몸과 마음의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온화한 웃음을 지으면서 상대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모습은 상대를 부끄럽게 했다.


▲ 지난 3월 31일 탈퇴교육저지투쟁으로 손가락이 부러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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