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네 (최수미)

빅토르 하라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중 한 사람, 피노체트가 91세의 나이로 지난 10일 죽었다.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가 심판받지 않고 죽었음을 억울해한다.  가족들은 그의 무덤이 파헤쳐질까 봐 화장 했다. 이런 죽음이 또 있을까?

주검으로써도 ‘용서받지 못한 죽음’은 아마 그의 영원한 불행이고, 그에 대한 가장 큰 심판일 것이다.  피노체트를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한 가수를 얘기하고 싶다.

빅토르 하라! 고통 받는 칠레 노동자 빈민 농민들을 위해 노래 불렀던 가수, 그는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로 38세 나이에 죽음을 당했다.

피노체트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당시 민중정부였던 아옌데 정권 지지자 수천 명을 실내체육관에 모은다.  죽음과 공포에 휩싸인 산티아고 광장, 구석에서 어느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 소리에 따라 수천의 사람들은 서로 어깨 걸고 노래 부르며 마지막을 함께한다.  빅토르 하라는 끌려가 두 손목을 꺽임 당하고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 또한 모두 처형당한다.  

피노체트의 죽음은 조롱당했지만, 빅토르 하라와 칠레 민중들의 죽음은 33년이 지난 오늘 이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다시 되살려지고 우리의 영혼을 뒤흔든다.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어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노래 부르며 죽기로 한 사람의 참된 진실들




여기 모든 것이 스러지고

모든 것들이 시작 되네

용감했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노래일 것이네







우․연․공․감

노래로 시대를 가난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도 있다. 그들을 우리는 민중가수라 한다.  집회 때 부르는 그들의 노래로 힘을 얻기도 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 뿐, 우리는 그들의 삶을, 그들의 인생을 알지 못한다.

유명 연예인 가수들의 콘서트는 있지만, 정작 이들의 콘서트는 없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롤송 너머로, 이들의 노래 소리를 함께 들어봄직 하지 않은가? 이들과 함께 그들의 구원이 아닌 우리의 구원을 노래해봄직 하지 않은가?  

“우․연․공․감 - 그리운 사람들의 2006년 해걷이 콘서트” 를 여기저기 아름아름 모인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면서,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있다.  민중가수인 우창수, 연영석과 함께 삶을 얘기하고 노래를 부르며, 올해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것이다.




목적과 수단의 구분을 너머

  올해 초였던가? 부안민중항쟁에 관한 강연회를 지역에서 개최하였다.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아름아름 모여 강연회를 열었다. ‘부안항쟁’을 통해 우리는 자발성에 기초한 연대를 얘기하고 싶어했다. 수천 명의 주민이 200일 넘게 매일 저녁 촛불집회를 열 수 있었던 그 힘이 궁금했다.

집회연단 옆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사로 줄을 선다.

줄이 너무 길어 끊으면 바로 ‘ㅅ~벌넘들’하고 욕이 나온다. “노무현이 죽일 놈인데 무지렁이 귀 트이게 하고 생각 트이게 해줘 고맙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내가 열여덟에 시집와 가지고 ~”하며 한참 울다가 내려가기도 한다.  그 집회연단은 한마디로 ‘뭔가 맺힌 것을 풀고 싶어 나오는 자리’이자, 서로의 삶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었고, 서로의 끼와 자유를 창조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집회에 빠지면 뭔가 허전하고 견딜 수 없게 된다.

부안군 80~90%의 학생들이 40일 동안 등교거부를 한다.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 서로 토론하면서 투쟁참여를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반핵투쟁대책위에 이들도 지도부로 참여한다.  정부가 처음으로 ‘대화하자’며 부총리와 장관들이 왔고, 학생들은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와 현실이 왜 어긋나는지?’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묻는다.  

주민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쟁과정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발휘한다.

간판 그리는 사람들은 ‘막칠하세팀’이 되어 곳곳에 ‘반핵’그림을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밴드들은 집회에서 노래하고 연주한다.  무대설치팀, 청소팀, 아이들의 대안학교 준비팀, 식사팀 등 다양한 수많은 일들을 그들은 스스로 맡아서 척척 해낸다.  

‘반핵’이란 목적이 있었지만, 부안투쟁에서 우리는 목적과 수단이 분리되지 않는, 주민들의 자발성 그 자체의 움직임이란 또 다른 소중한 그 무엇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발성은 “소통과 연대”없이는 의미가 없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람들 관계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홀로 강한 자’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힘은 ‘소통과 연대’이지 않겠는가?




누군가 묻는다.

“그게 대안이 되겠어요?”

“물론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