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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야기

 

오래간만에 연락을 해봅니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잘 지내시냐는 얘기를 하기가 민망합니다.

이 글을 받아보시는 동지 중에는 수배중인 사람도 있고, 구속 중인 사람도 있는데...

세상을 살다보면 앞에 나가서 싸울 때도 있고, 뒤에 한참 쳐져서 딴 짓하고 있을 때도 있는 법이잖아요.

동지들한테 연락하지도 오래됐고, 슬슬 연락하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나처럼 혼자 조잘거려보려고 합니다.


성민이는 두 달쯤 전부터 제주도 고향집에 내려와 있습니다.

그냥 특별히 하는 것 없이 역시나 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 같은 일산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의 생활은 천국입니다.

성민이의 천국에서의 생활을 들어 보실래요?


우리 동네는 제주공항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고내라는 동네입니다.

바다가 무척이나 맑고 해안 경치가 아름다운 조그만 시골입니다.

우리 집에 와본 동지들은 아시겠지만 동네는 참 좋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어서 가끔 밭에 가서 일을 거들곤 합니다.

제가 이곳에 눌러 앉아서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 아직은 없고, 부모님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오래간만에 내려왔는데 밭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밭에는 자주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이 드신 두 분이 하시기에 벅차거나 해야 될 일이 많으면 일주일 1~2번 정도 밭에 가서 3시간 안팎으로 일을 도와드립니다.

원래 육체노동을 많이 해보지 않았고, 오랫동안 빈둥거리다보니까 3~4시간 일하고 나면 몸이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누구 눈치를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서 쉬엄쉬엄 하고, 매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습니다.

밭일이라는 게 단순노동이라서 어렵지 않은데다가 흙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보면 머리  속에 떠다니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잠시 없어집니다.

가끔 그렇게 밭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그만입니다.

오히려 저는 자주 가서 도와주고 싶은데 부모님이 만류하십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주로 책을 보면서 보냅니다.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거든요.

이 도서관은 자랑을 많이 했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작고 아담한 도서관입니다.

주중에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정말 편하게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책을 보는 것을 좀 즐기는 편이라서 철학, 종교, 소설,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대도시 도서관에 비해 장서가 작다고는 하지만 볼만한 책은 많습니다.

도서관에 없는데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기도 합니다.

일산에 있을 때도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었다면, 이곳에서는 삶의 여유를 호흡하기 위해 책을 봅니다.

낮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데, 저녁에는 좀 더 특별한 곳에서 책을 보기도 합니다.

저녁 5시쯤 조금 이르게 저녁을 먹고는 밭으로 갑니다.

우리 집이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데, 한쪽에 작업용 공간으로 창고처럼 만들어진 곳이 있습니다.

간단히 식사도 해결하기 때문에 냉장고도 있고, 가스레인지도 있고, 낡기는 했지만 소파와 탁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밭이 동네에서 약간 위쪽으로 오르막지점에 있는데 경치가 정말 끝내줍니다.

농경지이기 때문에 주변에 집들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오르막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바다가 시원하게 내다보이고, 뒤로는 백록담까지 다 보이는 한라산의 포근한 모습이 그래도 드러납니다.

선선한 저녁 기운 속에 거름 냄새가 나는 창고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정말 편안합니다.

그러다가 잠시 나와서 바다와 산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있는 묵은 것들이 다 날려갑니다.


또 저녁이나 주말에는 조카들이 놀러옵니다.

하나는 4살 된 남자애고, 또 하나는 돌이 갓 지난 여자애인데 정말 귀엽습니다.

어린 조카를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입고리가 귀에 걸리게 됩니다.

시내에서 가구점을 하고 있는 동생네가 가구 나르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면 한 달에 1~2번 정도 바람도 쐴 겸해서 나가서 도와주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 만날 사람이 많지도 않아서 역시 한 달에 1~2번 정도 아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하거나 술을 먹습니다.


이렇게 지내다보니까 어느 순간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먼저, 가족을 비롯해서 제 주위 사람들은 지금 저를 그 자체로 받아들여줍니다.

그동안 뭘 해왔는지, 왜 내려왔는지, 앞으로 뭘 할 건지 하는 것을 묻지 않습니다.

그냥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의 삶과 조건을 인정해주고, 그 속에서 서로가 배려해주고,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와줄 뿐입니다.

자신과 서로의 삶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떨어져 있었던 기간이 있어서 조심스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조심스러운 배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관계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산에 있을 때는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과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너무 강해서 ‘나 혼자’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역시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동생이 이런 저런 신경을 써주면서 같이 살았지만, 내가 동생의 고민과 힘겨움을 같이 나누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내 자신만이 극도로 고립된 채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빈둥거리는 것이 싫어서 밭일을 도왔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서 밭에 나갑니다.

어린 조카들과도 처음에는 내가 즐거워서 놀아줬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조카들을 기분 좋게 해줄까를 생각합니다.

일산에 있는 동생은 이곳에 와서야 더 생각이 나서 가끔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오래간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집에 있는 조그만 것이라도 들고 나가서 주고 싶어집니다.


한 번은 어린 조카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애가 환자복을 입고 수액 주사를 맡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엄마 아빠가 낮에는 가계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낮에는 삼촌이 나와 할머니가 조카를 봅니다.

어린 애가 끝임 없이 몸을 움직이다보면 수액 주사바늘이 자주 빠지곤 합니다.

어른들도 그 바늘이 빠져서 다시 혈관을 찾고 그 속으로 집어넣고 하는 것이 고역인데, 그 어린 애가 오죽하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조카는 겁에 잔득 질려서 마구 울어댑니다.

간호사들이 달라붙고, 할머니가 달래보지만 울음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그 옆에 서 있는 나는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눈을 돌려버립니다.

그렇다가 밖으로 나가버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조카한테 미안할 것 같아서...

조카의 울음소리를 듣기만 하면서 벽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렇게 조카의 아픔을 같이하다보면 그 순간은 조카와 내가 하나가 됩니다.


성민이가 울산을 떠나서 오래고 오랜 방황을 하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자기 호흡으로 뭔가를 하는 것.

서로를 배려하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이 아파하면서 하나가 되는 것.

천국에서 다시 그것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천국에서의 행복을 만끽하면서 잠시 천국을 둘러보았습니다.

천국의 앞문은 지옥과 연결되어 있고, 뒷문은 낭떠러지입니다.

지옥을 거쳐야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그리고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곳.


하지만 천국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이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예순이 넘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은 편안함만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것저것 간섭하지 않고 배려한다고는 하지만 삶의 가치관의 방식의 차이는 미세한 틈을 만들어냅니다.

밭에서 부모님이 같이 일을 집에 와서는 아버지는 tv를 보시고 집안일은 어머니만 합니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내가 도와주려고 하면 어머니는 마흔이 넘은 아들이 집안 일 하는 거 보고 싶지 않다고 하지 못하게 합니다.

청소도 하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하지 않고, 설거지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이 몸은 편하지만 좋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두 달 넘게 지내다보니까 집안 일에 대해 아주 신경을 끄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며칠 전부터는 어머니가 없을 때 작은 설거지 같은 것부터 제가 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일상의 가부장성이 몸에 스며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동네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란 동네가 아니라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살기 시작한 동네입니다.

그 이후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울산에서 활동을 하다보니까 이 동네에서 거의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기도 하고, 눈도 좋지 않고, 또 성민이가 싸가지가 없어서 인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어느 우리 집 근처에 사는 한 분이 동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라고 한 마디 했습니다.

기분이 팍 상하더군요.

저는 그분의 얼굴을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성민이는 같은 동네에 사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인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도 역시 인사를 하지 않고 쌩까기는 하지만 솔직히 신경은 쓰입니다.


매제와 같이 술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제는 우리 동네에서 약간 올라간 산간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결혼도 해서 아이도 있고, 나이도 40대로 접어들고 있는 자영업자인 매제는 애가 조그만 더 크면 부모님과 떨어져서 동네에서 나오고 싶다고 합니다.

첫째는 아이 교육문제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 동네를 벋어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오랜 세월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가부장적 보수성이 진저리쳐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는 매제의 친구는 아직도 동네에서 술을 먹을 때는 어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살아가는 천국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천국은 이런 모습니다.

그지없는 편안함 뒤에는 촘촘하고 끈끈하게 스며드는 보수성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보수성은 내 몸 속에 스며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거든요.


지금 당장 또는 올해 안에 제주를 떠나서 다시 어떤 곳을 가거나 제주에서 어떤 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용기는 없습니다.

적어도 1~2년 정도의 호흡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 기간 동안 천국은 점점 속세로 변해있을 것이고, 나는 이 일상의 보수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관료적 습성을 버리고,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울산을 떠나서 일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매우 깊은 방황과 격렬한 경험을 하는 2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달콤한 이 시간을 이어 일상의 보수성을 품어야한다면 너무 슬픕니다.


바로 지금 나의 긴장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울산에서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폭력에 맞선 긴장력은 없습니다.

일산에서처럼 고독감과 무력감에 맞선 자기 긴장력도 없습니다.

내면의 긴장력을 일부러라도 갖지 않는 다면 그지없는 편안함 뒤의 보수성에 스며들고 말 것입니다.


도를 닦는 다고 생각하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해봅니다.

‘다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돌아갈 곳이 내게 익숙한 울산일 수도 있고, 지옥과 같은 서울일 수도 있고, 편안해 보이는 이곳 제주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지역일 수도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가 됐든, 배고프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 속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배고프고 외롭고 아프다는 것이 뭔지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재미있고 용기가 생기기 때문에...


전태일 열사가 결단을 하고 나서 비장한 각오로 하는 말처럼 비치는 군요.

그런 건 아닙니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 외쳐도 되는 말을 이렇게 멋 부리면서 하는 것은 나를 강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뱉은 말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성민이의 중요한 삶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오래간만에 얘기를 하려다보니까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우리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동생집에 와서 하고 있거든요.

이제 이 정도로 마치고 슬슬 집에 가봐야겠습니다.

5월 29일 촛불집회 건으로 재판이 있어서 일산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나서 일산에 있는 짐을 완전히 정리하고 내려오게 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보내는 성민이 소식을 기대해주세요.

크~윽



2009년 5월 21일


제주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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