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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영혼을 쓰다듬다’

 

‘지옥에서 영혼을 쓰다듬다’ 기획안


1. 취지


-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어 ‘불안한 삶’ 자체를 형상화한다. 하지만 불안을 불안으로 남겨두지 않으며, 어설픈 위안을 추구하지 않는다. 불안을 드러내 쓰다듬고 다시 ‘불안한 삶’으로 돌아갈 뿐이다. 문제는 삶이다.


- 어떤 정형화된 틀과 문법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로운 영상형식으로 얘기를 만들어본다. 전문가적 관성, 대중문화의 자본주의적 감성, 자의식이 충만한 난해함, 적당한 문화적 혼합 등을 거부한다. 아마추어적 상상력으로 삶의 진정성을 노래한다.


2. 기본 형식


- 영상, 음악, 문학, 사진 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불안한 삶’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 참여와 소통의 형식보다는 집중과 정서적 교감의 형식에 치중한다.


3. 구성


주제어

형식

내용

시간

공포

낭송 (배경음악, 정적으로 색상만 조금씩 변하는 사진)

루이스 세풀베다의 단편 소설 ‘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를 낭송한다.

15분

상처

사진과 음성 (상황 설명을 위한 약간의 자막)

경찰 폭력에 의한 기억으로 고통 받는 사람 (노동변호사 박훈 음성)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평택 대추리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대추리 신종원 음성)

15분

휴식

음악 영상

집이나 집 주변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부르는 사람

5분

불안

인터뷰

삶에 쫓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30대의 얘기 (술 먹으면서 진솔하게)

10분

위안

음악 영상

평화와 위안을 노래하는 가수의 영상 (거리나 공연장에서 노래하는 모습) 2~3곡

15분

사진과 자막

삶의 일상을 찍은 사진들

‘잠시 위안을 얻으셨습니까? 이제 다시 여러분의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자막

5분


4. 흐름


공포

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면 마마 안토니아의 집으로 가보십시오.

그곳에 가면 혐오스러움에 치를 떨다가 그곳에서 벋어나게 해달라고 울부짖게 될 것입니다.

상처

쉽게 벋어날 수 없는 현실의 야만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이들이 있습니다.

현실은 그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선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큰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휴식

한발 뒤로 물러선 일상에서 숨을 돌려보세요.

불안

아등바등 살아보지만 20대의 꿈은 멀어지고 삶의 희망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위안

노래를 통해 잠시나마 상처받은 영혼에 위안을 얻어보세요.

잠시 위안을 얻으셨습니까? 이제 다시 여러분의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 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 (루이스 세풀베다)


 

하지만 나의 신들은 나약했으며 나는 미심쩍어했다.

- 안토니오 시스네로스


울고 싶어도 울 데가 없을 때면 내 말을 떠올리고 마마 안토니아의 집으로 가보십시오.


그곳을 찾기란 아주 쉽습니다. 부둣가에서 아무 남자나 붙잡고 물어보면 별다른 서론 없이 낡은 목재 건물까지 가는 길을 알려 줄 것입니다.


어쩌면 입구에서 좀 놀라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착각해서 주교의 집에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십시오. 벽면을 장식한 어린 천사들의 중성적인 얼굴은 무시하고, 문턱을 넘어 초인종을 딱 한 번만 누르십시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와 당신을 맞이할 겁니다.


하여간 아주 이상하게 생긴 남자입니다. 항구 근처 술집들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그 남자는 질투심이 엄청난 한 남편한테서 도망치다가 전차에 치여 두 다리가 잘렸으며 자신의 비극을 토해 내기 위해 기어서 마마 안토니아의 집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또 들리는 얘기로는, 마마 안토니아가 몸이 반 토막이 나서 거의 죽어 가는 남자를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마마 안토니아가 치료비까지 물어 절단된 부위를 불로 지진 다음, 초인종을 울리면 놀란 신학생처럼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용수철로 된 복잡한 시스템의 이동 장치를 만들도록 했다고 합니다. 항구의 술집들에서 떠도는 얘기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부두 노동자들의 입이 어떻다는 건 잘 아시겠지요.


반 토막짜리 남자가 허술하게 생긴 방명록을 가져올 겁니다. 그는 거기에다가 당신의 이름, 나이, 직업을 적고, 마지막으로 왜 울고 싶은지 물어볼 겁니다. 당신이 울고 실은 이유를 정확히 모르거나, 아니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성통곡하거나 조용히 울 수 있게 충분한 이유를 주는 것도 그 집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반 토막짜리 남자는 작은 수레 위로 껑충 뛰어 올라가 어두운 복도를 따라 문이 열려 있는 곳까지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 방에는 침대 하나와 의자 하나, 거울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좀 긴장할 겁니다. 거의 확실하게 긴장할 겁니다. 하지만 믿어야 합니다. 마마 안토니아를 믿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들 겁니다. 당신이 도망치려는 순간, 방 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체구를 지닌 비대한 여자가 문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여자는 한마디 말도 없이 헐떡거리며 당신이 있는 곳까지 와서 당신을 침대 위로 밀쳐놓고는 당신 위로 올라타 당신의 편도선이 있는 곳까지 혀를 깊숙이 밀어 넣으면 키스할 겁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숨 막혀 죽을 듯한 느낌이 들 때 여자는 옆으로 돌아누워 당신을 계속 쳐다보며 옷을 벗을 겁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여자는 당신을 증오로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볼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증오심이라서 헐떡거리는 숨소리도 계속 커질 것입니다. 그 여자가 마마 안토니아입니다.


당신은 무질서하게 출렁거리는 꺼무죽죽한 살덩어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호박처럼 커다란 젖가슴에, 꼭 움켜쥔 주먹만 한 두툼한 젖꼭지, 술통만 한 거대한 다리, 그리고 그 가랑이 사이, 쭈글쭈글하게 주름 잡힌 비곗더미 아래로 비밀스러운 음부를 뒤덮은 음모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살덩어리가 계속 출렁거리고 잇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드는 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젤라틴이 방 안 가득 흘러넘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단지 당신을 옥쥐며 신음만 내뱉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소름이 돋을 듯한 몸동작으로 흐느적거리며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오라고 당신을 초대하며 늑대처럼 울부짖을 겁니다.


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갇힌 기분이 들 것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은 벽 네 개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도망치기 위해 어떤 벽면을 선택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여자가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터져나갈 듯한 두꺼비 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녀는 눈을 허옇게 치켜뜨고는,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혓바닥을 입술 밖으로 쭉 내밀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가 얼마나 큰 오르가슴에 도달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녀의 오른손이 쉬지 않고 가랑이 사이로 들락거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당신도 모르게 흥분해 있는 당신 자신에게 놀라 신음을 토해 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음탕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옷을 마구 벗어던지고는, 개처럼 헐떡이는 살덩어리 위로 올라탈 것입니다. 땀범벅이 되어 후끈하게 달아오른 살덩어리 위에서 당신은 어디를 집어도 푹푹 빠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살덩어리에 키스하고, 깨물고 아프게 하면서 고통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고통을 말입니다. 당신은 성기로 비밀스러운 구멍을 찾으며 마구 칠 것입니다. 추악하고 맹목적인 음경이 당신을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점점 커져만 가는 당신의 요구는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뭔가를 더 완할 것입니다. 수치심 이상의 그 빌어먹을 뭔가를 말입니다. 당신은 혀가 있다는 걸 떠올릴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랑이 사이로 혀를 집어넣으려는 순간, 마마 안토니아는 당신을 한쪽으로 밀어젖힐 것입니다. 자위로 오르가슴에 이르려는 순간, 당신이 거치적거릴 테니까요.


그제야 당신은 공포에 치를 떨며 몸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제야 당신은 혐오를 느낄 겁니다. 당신은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습은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마 안토니아만이 하염없이 침을 흘리며 헐떡이는 거대한 살덩어리를 드러내놓고 있을 테니까요.


당신은 서둘러 옷을 입고는 문을 열려다가 문이 밖에서 잠겼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내보내 달라며 반 토막짜리 남자를 부르면서 소리 지를 겁니다. 당신은 문을 열어 주는 조건으로 반 토막자리 남자에게 돈과 팔찌 시계, 당신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을 모두 주겠다며 소리 지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고함보다는 마마 안토니아의 고함이 더 크게 들릴 겁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게 당신은 나무 바닥을 긁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엉엉 울고 있을 겁니다.


당신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울 것입니다. 미친 듯한 대성통곡도 점차 잦아들어 아무 죄 없는 사람이 흐느끼듯 조용히 훌쩍거리게 되겠지요. 당신이 울다가 지켜 고개를 돌리면 마마 안토니아가 그새 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 동정 어린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때 당신은 수치심에 울게 될 것입니다. 마마 안토니아가 당신을 자기 곁으로 불러 당신 머리를 쓰다듬으며 코를 풀어 주고 침도 닦아 주며 이제는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아니며 더 울고 싶은지 물어볼 겁니다. 한 번 더 울고 싶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찌 됐든 그 집은 예의상이라도, 나가는 길에 양쪽 눈에다가 레몬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고 부어오른 눈두덩이 가라앉도록 얼음 한 덩어리씩 주니까요.

# 노동변호사 박훈의 상처


“경찰들이 다 싸고 있었거든요. 공장 안과 밖에 3만 명 정도의 병력이 부평을 싸고 있었거든요. 노동조합 사무실이 현장 안에 있는데 못 들어가게 했으니까.

3월 8일 노조활동 방해금지 가처분을 냈는데 한 달 동안 아무런 투쟁이 없을 때 그게 받아들여져 버린 거예요. 2월 8일부터 3월 8일까지는 열심히 싸움을 했고, 싸움이 안 되니까 내가 소송을 낸 거예요. ‘이거 갖고 들어가면 되겠다’ 싶은 거죠.

법원의 결정문도 있는데 자본이 그렇게 나올지 몰랐어요. 법원이 그렇게 판결했으니까 당연히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막히는 순간 나는 선택을 해야 했어요. 다시 법원으로 쫓아갈 것이냐, 여기서 한 번 붙을 것이냐... 아무도 결정할 수 없고 내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사람을 300명 데리고 투쟁하는 현장에서 1시간 동안 고민을 했어요. ‘오늘 여기서 결판내겠다’고 결정했어요. 그건 명확한 불법적인 공권력 집행이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했지요.

‘씨발놈들이 법원 결정문이 있는데도 지들이 가로막아!’ ‘죽지 않을 만큼 패라’고 그랬어요. 그때는 우리가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했으니까... 방패 뺏어 부셔 버리고, 헬멧 벗겨서 버리고... ‘노동조합의 업무를 방해하는 현행범 체포하라’고 그랬어요. 16명을 체포했는데, 전경뿐만 아니라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들도 체포해버렸어요. 사람들이 경찰들 풀어주라고 그러는데 내가 다 거부했어요.

경찰들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 못한 것은 아닌데... 그게 나한테 평생의 한으로 남는데...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양쪽 도로가에 반으로 나눠서 웃옷 벋고 누우라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하면 쉽게 진압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나는 연와시위를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처음으로 연와시위 전법을 쓰게 된 거예요.

그렇게 들어올 줄 알았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는데... 97명이 다치고, 4명은 장애2급을 받아요. 상상불허의 일들이 벌어진 거예요. 나도 현장에서 그대로 맞았는데 전경 애들이 나를 방패로 찍어도 별로 세게 찍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마구 찍어버리더군요. 도망가다가 떨어지고... 씨발....

내가 체포하도록 한 경찰들을 풀어줬으면 되었는데... 그게 내 두 번째 트라우마예요. 그 뒤로는 사람 많은데 가지를 못해요. 공황장애의 일종인데... 북적북적한 사람들 많은데 가지를 못하고, 출구가 없는데 가지를 못해요. 지하철을 못 타요. 아직도 피가 분수처럼 올라오는 꿈을 꿔요.”

# 평택 대추리 사람들의 상처


“이 분들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시지만, 정신적인 피해가 치료를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예요. 이분들은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시기에는 너무 비참한 거예요. 그 안에 있을 때 의사들이 학생들도 의료봉사 같은 거 오고 그랬거든. 지금도 와달라고 많이 얘기를 하는데, 그게 안 되지. 어디가면 했던 단체들 다 아니까 그래도 얘기를 해요. 그분들에 대한 치유는 정부에서 해줄게 아니거든. ‘우리 손으로 마음의 병을 고쳐줘야 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계속 해요. 안 되는 게 답답할 뿐이지...


지금도 주변에서 ‘저 새끼들 빨갱이 새끼들’ 이렇게 보는 시각이 대단해요. 나는 이 싸움에서 나간다면 이민 갈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주민들하고 같이 해왔으니까 같이 있는 거지... 누구나 다 똑같을 거예요. 다른 데 가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사는 거 보다 그 아픔 같이 했던 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해서 사는 거예요. 여기 이주단지보다 더 좋은 데 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대추리라는 그런 거 때문에 ‘같이 살자’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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