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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를 앞둔 동지에게

3월에 편지를 주셨는데, 두 달이 지나서야 답장을 드리게 됩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구속돼 있는 다른 분들에게도 책을 보내드리고 하다 보니 답장이 늦게 됐습니다.

이해해 주시겠죠? 히~잉~

 

6월 15일 출소하신다고요?

책을 보내드리는 분들 중에서 조금씩 출소하시는 분이 생기고 있어서 정말 기분 좋습니다.

꼭 내가 나오는 기분입니다.

2년에 이르는 시간을 버텨오셨는데, 앞으로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간도 잘 버티시리라 믿습니다.

 

출소를 하시게 되면 인사를 해야 될 사람이 많을 텐데, 누군지도 모르는 저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씨~익~

제가 인사치레 받으려고 책을 보내드리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무슨 뜻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굳이 저에게 인사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고마움을 표해야할 사람은 오히려 접니다.

작년부터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책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집에 쌓여 있는 책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해서 하는 건데...

그러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 되고, 뜻하지 않는 수확도 얻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구속되신 분들의 편지입니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따뜻한 편지를 보내주십니다.

외롭고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을 때, 제 손에 전해진 그 편지가 주는 따뜻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내가 힘들 때 내 손을 가장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은 항상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힘은 낮은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 실감합니다.

이미 저에게 보내주신 한 통의 편지로 감사의 뜻을 충분히 전한 것뿐 아니라, 저에게 힘도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7~8년 전에 제가 아는 동지가 구속돼 있어서 지금보다 더 정성스럽게 챙겨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오랜 수감생활 끝에 출소한 그 동지를 노동자대회 때 만났습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제 손을 잡아주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길과 손길이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그 동지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그 동지는 지역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저는 지역을 떠나서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술을 사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그 동지의 어깨와 목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눈높이는 저보다 위에 있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가장 씁쓸했던 기억이었습니다.

박종만 동지는 출소를 하시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갖고 있는 그 마음을 계속 갖고 계셨으면 합니다.

그게 오랫동안 고마움을 전하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앞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박종만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될 때가 또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 “이 사람이 내가 보낸 책을 기분 좋게 받아보고, 나한테 소중한 편지를 보내주었던 사람이었지...”라고 다시 떠올리면서 살짝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인터넷으로 제 이름을 검색하면 약물복용으로 세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배우가 가장 많이 뜹니다.

제 이름으로 저를 기억하시게 되면, 좀 그렇겠지요? ㅋㅋㅋ

주위에서 외롭고 아프고 배고프고 힘든 사람들을 볼 때 저를 기억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달해주시면 더 좋겠고요.

 

많이 늦은 답장을 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이 글을 읽게 될 동지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봄의 기운이 점점 무르익어서 여름을 향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봄기운을 가슴 속에 많이 담아두세요.

 

 

2011. 5. 9

제주에서 성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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