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내 가슴에 칼날로 박힌 '세상의 모든 계절'

 

유럽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 유럽영화를 보다보면

극적인 얘기가 아니면서도 살며시 스며들면서 강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접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계절’이 바로 그랬다.

 

두 시간이 넘게 누군가의 얘기를 편하게 듣고 나서 돌아서면

가슴 한쪽 구석이 따끔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 강하게 심장을 찌르는 것도 아닌데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리는 아픔이 계속 이어져서

가슴을 만져보면

칼날이 정확히 박혀 있다.

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박혀 있어서

아픈 줄도 모르고

피도 나지 않지만

빼낼 수가 없어서

계속 그 아픔을 가져가야만 하는 영화다.

 

가난하고 늙고 외로운 메리가

직장동료인 제리를 통해서 편안하고 행복한 기운을 잠시 느껴보지만

제리의 안락한 보금자리는 메리가 잠시 휴식을 취할 수는 있어도 삶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지만

그 거리를 넘어서 들어오려고 하면 싸늘하게 대한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메리를 두고

제리의 가족들은 “좀 독특한 사람이야”라면서 선을 그으면서...

그것이 큰 욕심 없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중산층 인텔리들의 삶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메리를 통해서 내 모습을 보았다.

너무 외롭고 지쳐서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들 속에서 끼어들 자리는 없다.

나처럼 외롭고 지친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지만

나는 이 외롭고 지친 상황을 벋어나고만 싶다.

결국 어색하게 그들의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

사회성은 점점 떨어져서 ‘독특함’은 더 심해지고

내가 어울릴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영화 보는 내내 메리 때문에 속상해서 많이 울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가 지났는데도

가슴에 박힌 칼이 빠지지 않아서 계속 아렸다.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려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내 가슴 속에 메리가 아니라 제리가 들어가 있었다.

그때야 몇 년 전의 내 모습들이 들여다보였다.

 

내가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던 그 때

나는 억압받고 소외된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얘기를 듣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이 마음 속 깊이에서 원하는 삶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내 기준으로 그들을 제단하고 평가하면서 바꿔내려고 했다.

설득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내치기도 하고...

나의 진보는 그들과 함께 호흡했지만

삶의 깊은 곳까지 다다르지 못한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외롭고 힘들어지니까

이제야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