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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와~

 

연말과 설 연휴에는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이 좀 어정쩡한 시기라서 그런지 다양한 영화가 걸렸다.

“무슨 영화를 볼까?”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1주일 만에 또 영화를 보러 나섰다.

 

“유치하기는 하겠지만, 감성적이고 따뜻한 노인들의 사랑얘기인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볼까?”

“지식인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뭔가 흡입력이 있어 보이는 ‘블랙스완’을 볼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추울 때 오히려 차가운 영화가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블랙스완’을 택했다.

“헐리우드 영화의 뻔한 스토리를 돈과 기술로만 포장한 것은 아닐까?”

“지식인 냄새만 풀풀 풍기면서 관념적으로 흐르는 영화는 아닐까?”

약간의 걱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기대를 하지 않고 보기로 했다.

 

평일 낮 시간이었고 구도심에 있는 영화관이었는데도 열 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구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강한 음악과 함께 발레 장면이 움직이는 카메라 속에 펼쳐졌다.

“오~ 시작은 괜찮은데...”

자세를 잡고 영화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뒤에 앉은 아줌마 두 명이 수다를 떤다.

“아! 짜증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봤던 초기 장면들이 이어진다.

“음...”

주인공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카메라는 쉼 없이 돌아다니고 모든 사람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너무 주인공에게만 집중하는 거 아닌가?”

예상했던 갈등상황은 오래가지 않아서 전면에 드러나고 사람들의 움직임과 심리변화가 빨라진다.

“늘어지지 않고 긴장감 있어서 좋기는 한데, 좀 빠르다.”

뒤에 앉은 아줌마 두 명은 여전히 소곤거리다.

“아이~씨. 그만 좀 떠들지...”

주인공의 심리를 중심으로 쉼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와 음악과 음향과 춤과 상징적 장면 등이 계속 쏟아진다.

“그런 대로 괜찮은데...”

뒤에 앉은 아줌마들도 조용해졌다.

“이제는 안 떠들겠지?”

남자 단장과 여성 경쟁자가 주인공 주위에서 은근한 추파와 뻔한 질투를 유발한다.

“독특하기는 하지만, 결국 헐리우드 영화군!”

주인공은 점점 초조해져가고 주위 사람들은 그를 계속 압박해왔다.

“지식인의 자의식에 대한 영화네...”

카메라의 움직임과 음악과 음향과 춤과 상징적 장면들이 긴장을 높여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연출력은 괜찮은데...”

주인공의 강박관념이 더욱 강해지면서 욕망과의 싸움이 이어지지만 여 주인공의 자위 장면이나 섹스 장면은 자극적이지 않다.

“감독이 자기 자의식에 눌리는 거 아닌가?”

주인공의 강박관념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전체적인 호흡은 계속 빨라지고 섬뜩한 장면들도 계속되고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무섭고 무거운 영화 싫은데...”

도저히 편한 자세로 볼 수가 없어서 허리를 세우고 팔짱은 끼고 잔득 긴장한 채 영화에 집중했다.

“나쁜 꿈을 꾸는 것처럼 정말 섬뜩하다!”

자의식에 빠져버린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어렵게 뒤엉켜 버린 채 숨 가쁘게 달려간다.

“어디까지 밀어붙이려는 거야?”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르고 모든 것이 빠르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발레 공연이 시작된다.

“......” (아무 생각이 없다.)

클라이막스에서 음악도 웅장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긴장해 있고, 영화는 빠른 호흡을 멈추지 않는다.

“쿵! 쿵! 쿵!” (내 심장이 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카메라는 주인공의 얼굴을 중심으로 돌면서 주위를 보여준다.

“헉~ 헉~ 헉~” (내가 흑조가 돼서 공연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공연의 끝과 함께 영화가 끝나고 엔딩타이틀이 올라간다.

“아~”

뛰는 심장은 멈추지 않고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눈물이 흐른다.

“후~”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도 치열하게 밀어붙일 수 있구나!”

 

자신의 자의식과 정면으로 싸워본 흔치 않은 영화였다.

그 끝이라는 게 결국 ‘자의식에 짓눌려 죽거나, 자신을 버리거나’라는 것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아쉬웠다면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였다.

물론, 아무나 쉽게 소화해내기 대단히 어려운 연기를 아주 뛰어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강조했던 백조가 흑조가 되는 핵심은 관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전혀 관능적이지 못했다.

중간 과정이야 자신과 싸우는 과정이라서 그렇다쳐도 마지막 흑조의 춤에서는 관능미가 뿜어져 나와야 했다.

정말 치열하게 연기를 잘 했지만 관능미를 느끼지 못하는 흑조는 결국 백조일 뿐이었다.

결국 나탈리 포트만은 감독의 연출력 속에 갇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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