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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던 날, 편한 영화가 한 편 보고 싶어서 ‘완득이’를 봤다.

이미 흥행에서는 검증이 된 영화인데다가 깊이 있는 사고를 필요로 하는 영화도 아니어서 편하게 보기에 딱 좋았다.

상업영화의 법칙을 따르면서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2세, 장애인문제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주제의식을 놓치지도 않았다.

중간 중간 눈물이 나오게 하는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되면서 감동도 주었는데, 억지스러운 멜로영화에서 보여주는 강요된 감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이어서 좋았다.

조연들의 캐릭터가 약간 식상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두 주연의 캐릭터가 너무 살아 있는데다가 연기력도 받쳐주었기 때문에 영화의 흡입력도 높여 주었다.

어정쩡한 가족주의로 마무리되는 아쉬움이 너무 컸지만, 오래간만에 따뜻하고 진지하면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완득이’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가 ‘방가방가’였다.

‘방가방가’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상업영화의 소재로서만 다룬다는 점이 달랐다.

‘방가방가’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됐던 문제들을 이제 와서 코믹한 소재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것도 한국인이었지만, 그들을 도와주는 것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주의를 은근히 깔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문제에 대한 성찰은 없이 유쾌한 헤프닝만이 남발하다 끝나버렸다.

하지만 ‘완득이’는 이주노동자의 2세들의 교육과 가난과 차별이라는 좀 더 시대에 맞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거기에 장애인까지 끼워 넣으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로 눈을 넓히려한 노력이 보인다. 물론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각색이 되기는 했지만,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 사회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인 이상 그에 시선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개그만들이 진지한 성찰 없이 웃음의 소재로만 삼는 식에서 진정성을 갖고 나아간 것이 ‘완득이’였다.

 

또 하나 비교되는 영화는 ‘도가니’였다.

2011년 하반기에 기대하지 않은 흥행작인데다가 사회문제를 진진하게 다룬 상업영화라는 점, 두 영화 모두 원작이 창비사의 소설이라는 점 등에서 비교되곤 했다.

‘도가니’가 사회 문제를 어둡고 도발적으로 다뤘다면, ‘완득이’는 밝고 희망적으로 다뤘다.

‘도가니’에서는 이기적이고 거친 호흡의 악한 인물들이 중심에 있다면, ‘완득이’에서는 이타적이고 긴 호흡의 착한 인물들이 중심에 있다.

‘도가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면서 고발했다면, ‘완득이’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희망의 노력을 설득하고 있었다.

‘도가니’가 현실의 한 측면을 과장했다면, ‘완득이’는 현실을 각색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현실은 ‘도가니’와 ‘완득이’ 사이에 어디쯤에 있을까?

 

‘도가니’에서 ‘완득이’를 이어 ‘부러진 화살’까지 이미 상업영화권에서도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나아고 있고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만큼 촛불세대로 상징되는 젊은 층들의 문화적 욕구들이 정치적이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중년층 역시 단순히 복고적 문화에만 만족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또 영화산업이 성장하고 영상문화에 익숙해진 세대들이 넓어지면서 돈만 들여서 적당한 비빔밥식으로 만드는 영화들은 더 이상 즐기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제 상업영화도 진지한 고민 속에서 잘 만들어야 한다.

상업영화의 흐름이 이 정도인데 오히려 그런 흐름에도 못 미치는 게 독립영화이지 않을까?

상업적으로 성공했든 아니든 넓은 의미의 최근 상업영화 감독들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최근 독립영화 감독들은 반대로 자기만족에 빠져 들고 있는 형국이다.

낮술 먹고 해롱거리는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든가(낮술), 사회 주변층을 놓고 멋 부리는데 주력한다든다(혜화,동), 폼을 잡느라 자기가 얘기하는 주제가 뭔지도 진지하게 고민하제 않거나(파수꾼) 하는 식들이다.

독립영화들이 상업자본에서 자유로워지는 만큼 사회적 문제의식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작가주의는 상업영화권의 작가주의 감독들과 달리 사회적 성찰과 철학적 고민이 결여된 겉멋 작가주의일 뿐이었다. 영상세대의 성장이 사회적 의식의 성장과 결합하지 못할 경우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다른 형태로 반복하게 된다는 점을 독립영화 감독들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10여 년 전에 나온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바로 이 시점에서 독립영화 감독들이 봐야 할 영화이다.

 

상업영화로서 사회적 주제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다루면서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20%의 아쉬움이 남는 점이 있다.

10%는 감독들이 너무 상업영화의 법칙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자칫 이런 주제의 영화들도 돈이 되기 때문에 만든다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영화적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대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또 10%는 감독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철학적 고민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를 이렇게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이라는 사람은 이 문제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까? 그냥 연출자이기만 하면 될까? 아니면 기자 정신을 가져야 할까? 아니면 사회평론가? 아니면 운동가? 철학자?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감독 자신이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만들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영화는 ‘무산일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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