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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판은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원작 자체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할리우드판을 보고나서 왕짜증이 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웨덴판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은 있었다.
시작은 원작이나, 할리우드판이나, 스웨덴판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원작에 충실한 듯 하다가 초스피드로 얘기를 끌어가면서 폼만 잡던 할리우드판과 달리
스웨덴판은 욕심내지 않고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따라갔다.
미카엘의 사생활이나 리스베트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에피소드들도 생략하면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했던 것 중의 하나는 볼거리였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이국적인 화면도 기대했고, 소설에서 그려졌던 여러 장면들을 눈으로 보는 즐거음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판이나 스웨덴판에서 이런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소설이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할리우드판은 스타일에만 치중하다가 이야기도 꽝이고, 스타일도 꽝인 영화가 돼 버렸다면
스웨덴판은 처음부터 볼거리는 무시하고 이야기에 치중하겠다고 작정한 듯 했다.
그래서 스릴러적 장르의 특징에 충실하게 영화를 이끌어갔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장중한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이 심리묘사에서 좀 더 장점을 갖는다면,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함께 자극하는 입체적 장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두 시간 넘게 거의 비슷한 음악이 수시로 사용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은 묻혀버렸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원작에서 빠진 것들도 있었고, 원작과 달리 살짝 살짝 바뀌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굵직한 이야기 구조는 손대지 않으면서 영화를 위해 조금씩 바꾸는 정도로 보였다.
리스베트의 역할이 초반부터 약간씩 원작과 다른 위치에 놓이기는 했지만, 크게 어색하지도 않았고 이야기 구조를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긴장감 있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하는 감독의 배려로 느껴져서 좋았다.
원작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던 미카엘의 다양한 여성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해버려서 오히려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야기가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가운데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했던 인물들이 나오지 않고, 그 역할을 리스베트가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끌어가려다보니 등장인물을 줄이려고 그랬다보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가기 시작하면서 사건 해결에서 리스베트의 결정적 역할이 많아져갔다.
그래도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손대지 않고 있어서 크게 원작을 상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았다.
영화가 막판으로 가면서 리스베트가 미카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미카엘이 리스베트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심각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가면서 결정적인 두 가지가 원작과 다르게 표현됐다.
원작에서는 사건의 최종처리를 놓고 미카엘이 기자로서의 양심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건의 주범을 놓고 리스베트가 살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다.
가장 마지막에 비리 기업을 응징하는 문제도 원작과 달리 리스베트가 모든 것을 주도해서 처리한다.
그렇게 영화가 끝났다.
원작도 그렇고, 할리우드판도 그랬던 것처럼, 스웨덴판에서도 중반까지는 당연히 미카엘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다 끝나고 나니 주인공은 미카엘이 아니라 리스베트였던 것이다.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원작에 충실한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끌어오더니 막판에 돌아서 보니 이야기가 달려져 있었던 것이다.
살며시 웃으면서 리스베트의 시선으로 원작을 살펴봤다.
원작은 여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나쁜 남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정의감에 불타는 좋은 남자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리스베트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은 미카엘의 주위에서 그의 능력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남자들에 의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여자 리스베트가 미카엘이라는 인물을 감시하고 추적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리스베트는 악마와 같은 주범이 죽어가도록 방치함으로서 악을 응징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야 원작의 단점이 보였던 것이다.
할리우드판이 철학의 빈곤을 보여줬다면
스웨덴판은 철학의 날카로움을 보여줬다.
정말 아쉬웠던 점은 원작자가 1부의 성공 이후 욕심이 생겼는지 2부와 3부는 기대 이하였다는 점이다. 원작이 기대 이하였기에 원작의 이야기 구조에 충실했던 영화도 2부와 3부는 1부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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