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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홍상수가 생각이 많아지고 있네...

홍상수 영화를 처음 봤던 것이 ‘오! 수정’이었던 것 같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로 주목을 받는 감독이라는 기사를 읽은 듯한데, 정작 이 영화는 감독보다는 이은주라는 배우 때문에 봤었다. 그 다음에 봤었던 영화가 ‘생활의 발견’이었는데, 이 영화부터 홍상수라는 감독을 의식하게 됐다. 그러나 홍상수라는 감독의 영화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홍상수의 영화를 즐기지 않게 됐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었는데, 결말이 너무 허무한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30대 초분이었을 때 홍상수 영화는 그렇게 다가왔었다.

 

그 후에도 홍상수는 꾸준히 영화를 내놓았고, 나고 간단히 다운로드를 통해서 그의 영화를 보게 됐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홍상수는 맨날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한다”라는 것이었다. 우연히 남녀가 만나서 술 먹고, 여관 가고, 둘(셋)의 관계에 대해 갈등하다가, 여자의 결단을 통해 관계가 정리되고, 그러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10년 넘게 거의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찍고 있었고, 배우들도 예전에 찍었던 배우고 또 나오기도 하고... 그렇다고 영화제 같은데서 상 타면서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거의 해마다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30대 후반이 되니 그런 홍상수의 끈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게 됐다.

 

2010년 ‘오! 수정’을 영화관에서 본 후 10년 만에 홍상수의 영화 두 편을 영화관에서 봤다. 한 해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대단했지만, 두 편의 영화 모두 뛰어난 영화였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하하하’에서 홍상수는 기존의 자기 방식을 정리한다. 기존 방식 그대로 영화를 찍었지만, 허무한 결말을 유쾌하게 바꿔버렸다. 10여 년 간 그의 영화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던 남녀관계에서 결국 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여자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리고 ‘옥희에 영화’로 가서는 시간을 갖고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삶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도자기를 10여 년간 구워오다가 드디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내가 40대 초분이 돼서 홍상수 영화를 다시 봤더니 현실과 삶이 제대로 녹아있는 영화라는 걸 알게 됐다.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 이후 홍상수 영화가 과연 어디로 나갈까 하는 것이 궁금했었는데,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북촌방향’이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몇 달의 시간을 기다려서야 이제야 볼 수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술자리를 통해 얘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배우들도 홍상수 영화에서 한 번씩은 나왔던 배우들이었다. 그런데 엄청 낯설었다.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라고 눈과 귀를 쫑긋하고 그의 얘기를 쫓아가다보면 영화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감독의 직설적인 한마디로 영화가 정리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영화였다. 그런데 ‘북촌방향’은 초분부터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처음부터 무겁게 들이밀고 있었다. 기존 방식에서 변화를 준 ‘옥희의 영화’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얘기를 듣고 나서 곰곰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는데, ‘북촌방향’은 노골적으로 철학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힘들었다. 난해하지는 않지만, 삶을 직설적으로 해부하는 대신 관조하는 자세는 확실히 지식인의 자세였던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점이었다.

 

홍상수의 영화는 남자들의 시선과 욕망으로 여자들을 바라보고 대하지만, 현실의 관계 속에서는 결국 여자의 욕망과 현실적 판단이 힘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남성 중심적인 세상에 대해 관계와 삶을 돌아보라고 날카롭게 들이대는 칼날과 같았다. ‘하하하’에서 결국 남자가 그 칼날 아래 쓰러지면서 패배를 선언했고, ‘옥희의 영화’에서는 그 칼날로 상처를 내기보다는 칼날의 움직임만을 보여주면서 더 날카롭게 다가왔었는데, ‘북촌방향’에서는 칼을 버리고 말았다. 내가 홍상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봤던 홍상수 영화중에서 유일하게 관계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었던 영화였다. 시간의 틀을 통해서든, 욕망과 감정의 틀을 통해서든, 관계의 틀을 통해서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칼로 상처를 내면서 날카롭게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떠벌리면서 삶과 철학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가 분명히 깊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남성 지식인’이라는 자신의 모습이 점점 짙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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