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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83회 – 겸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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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스워 보이냐? (38회)
1
두 달 동안 일산에 있는 동생 집에서 지내다가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제주공항에 내렸을 때의 첫 느낌은 ‘따뜻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기온이 10도를 넘지 않고 있고
바람결은 아직도 찬 기운을 몰고 오지만
그렇게 지긋지긋했던 눈은 말끔히 사라져 있고
목도리나 장갑을 하지 않고도 나다닐 수 있는 것이
따뜻한 남쪽나라라는 걸 실감하게 했습니다.
봄의 기운을 느낀다고 얘기하면 과장이겠고
겨울의 물라가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있다고 얘기하면 될까요?
밭에 오면 상황은 훨씬 빨라집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잡초들이 새롭게 올라와서 푸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고
맑은 날,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으면 살며시 졸음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봄이 시작됐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만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햇볕을 받으면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럴 때, 너무 마음이 앞서서 무리하다간 감기 걸려서 고생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겠지요.
시인과 촌장의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사랑일기’
새벽공기를 가르며 날으는 새들의 날개 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사랑해요라고 쓴다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지친 어깨 위에
시장 어귀에 엄마 품에서 잠든 아이의 마른 이마 위에
골목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에 홀로 서있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사랑해요라고 쓴다
수없이 밟고 지나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 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에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겨울밤차 유리창에도
끝도 없이 흘러만 가는 저 사람들의 고독한 뒷모습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사랑해요라고 쓴다
사랑해요라고 쓴다
사랑해요라고 쓴다
2
고향으로 돌아온 저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조카였습니다.
엄마와 같이 공항으로 마중 나와 준 조카는 저에게 달려와서는 저를 힘껏 안아줬습니다.
올해 한 살을 더 먹어서 여섯 살이 되어서 그런지 그 힘에 제가 쓰러질 뻔 했습니다.
다음 날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큰 조카와 함께 제가 준비한 선물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건넨 조그만 상자에는 두 달 동안 열심히 접은 색종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거든요.
둘은 신나서 소라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큰 애는 남자라서 그런지 동물이나 곤충 종류를 많이 골랐고
작은 애는 여자라서 그런지 꽃이나 인형 종류를 많이 골랐습니다.
두 달 동안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종이접기를 한 결과이지요.
무척이나 추웠던 겨울의 성과라 이렇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조카들만큼이나 나를 반겨주는 것은 우정이입니다.
우정이는 저희 밭에서 키우는 똥개입니다.
고향에 온 다음 날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볕은 동시에 느끼면서 밭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우정이를 찾았더니 꼬리를 막 흔들더군요.
줄을 풀어줬더니 제 주위를 돌면서 펄쩍펄쩍 뛰고 제 손을 핥고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제 주위에서 날뛰던 우정이는 잠시 후 어디론가 놀러나가 버리더군요.
놀러나가서도 오래 있지 않아서 돌아오더니 또 저를 향해서 달려왔습니다.
쓰다듬어 달라고 제 곁으로 다가온 우정이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어주었습니다.
쓰다듬다보니 우정이가 털갈이를 하는지 떨이 많이 빠지더군요.
그래서 몸 전체를 골고루 쓰다듬으면서 털을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우정이는 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3
부모님의 반응은 좀 달랐습니다.
제가 늦은 시각에 도착을 했기 때문에 집에 갔을 때는 밤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부모님이 잠 드실 시간이었는데, 역시나 잠 들어 있더군요.
더군다나 어머니는 제 방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잠자는 어머니를 깨우는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깨웠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도 일어났습니다.
제가 내려오는 날짜를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두 분 다 비몽사몽이라서 빨리 주무시라고 하고는 저도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했습니다.
세수를 하고 나서 가방을 정리하고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대를 즐기고 나서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머니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잠꼬대인가 싶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안방으로 갔더니
어머니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쉴 수가 없어”라면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옆에서 묵묵하게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있었는데
“화채가 올라와서... 이러다가 가라앉으면 괜찮아 진다”고 얘기 하더군요.
평소에 우울증이 심한 편이라서 웬만한 모습에는 적응이 됐는데
이런 모습을 처음이라서 많이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애써 덤덤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니
지난 두 달 사이에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나 봅니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어머니 손을 잡고 등을 쓸어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고통스럽게 울면서 몸부림치더니 막혔던 기운이 내려가자 금세 편안해지셨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이
가슴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꾸역꾸역 가슴 속에 집어넣기만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는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 계속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런 식으로 발작 증세가 나타나는가 봅니다.
오물로 막힌 하수구가 역류하듯이...
고향으로 돌아온 첫 날 밤은
많이 피곤했는데
이런 저런 심란함 때문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밤이었습니다.
4
언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얘기인데요,
이라크인지 아프카니스탄인지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쟁고아들을 맡아서 챙기는 분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매우 거친 환경에 노출돼 있던 아이들은 상당히 민감해져 있어서
웬만한 노력에도 그 날카로운 눈빛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 수녀님이 와서 그 아이들에게 따뜻한 스킨십을 해주기 시작했더니
아이들의 눈빛이 원래 아이들다운 눈빛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런 따뜻한 스킨십이 필요한 사람이 전쟁고아들뿐이겠습니까?
스킨십에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막상 우리 주위에는 스킨십을 나눌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애정과 육체적 즐거움까지 듬뿍 담긴 연인의 스킨십은 바라지도 않지만
힘들어 하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는 정도의 스킨십을 바라는 것도 꿈일 뿐이고
반대로 힘들어 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처지도 못 된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됩니다.
따뜻한 스킨십,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 중에도 이런 스킨십이 간절하신 분이 많겠죠?
그런 분들을 위해 제가 영혼의 스킨십을 해드릴까요?
어디가 아프세요?
제가 ‘호~’하고 불어 드릴게요.
호~오~
햇볕이 잘 드는 그 어느 곳이든 잘 놓아두고서
한 달에 한번만 잊지 말아줘
물은 모자란 듯하게만 주고
차가운 모습에 무심해 보이고
가시가 돋아서 어둡게 보여도
걱정하지 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게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
속상했던 마음들까지도
웃는 모습이 비출 때까지
소리 없이 머금고 있을게
그때가
우리 함께 했었던 날 그때가
다시는 올 수 없는 날이 되면
간직했었던
그대의 눈물 안고 봄에서 있을게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게
내 머리 위로 눈물을 떨궈
속상했던 마음들까지도
웃는 모습이 비출 때까지
소리 없이 머금고 있을게
그때가
우리 함께 했었던 날 그때가
다시는 올 수 없는 날이 되면
간직했었던
그대의 눈물 안고 봄에 서 있을게
봄에 서 있을게
오늘 마지막 곡은 에피톤 프로젝트가 부른 ‘선인장’이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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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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