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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스워 보이냐? (36회)

 

내가 우스워 보이냐? (36회)

 

 

 

1

 

기온이 많이 올라서 포근하다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한 날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마음 속 묵은 때를 씻겨 주는 것 같은 상쾌함을 안겨줘서

오래간만에 찜질방에 가서 땀을 쭉 빼고는

우산을 쓰고 걸어오는데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이런 기분이 얼마만인지...

 

갑자기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나서

동네 슈퍼에서 막걸리 두 병을 사왔습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혼자 술을 먹는 일이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괜찮습니다.

 

몸은 더 없이 가뿐하고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에 마음이 가볍게 출렁이는 이 순간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킵니다.

캬~아~

술맛 죽입니다!

 

오늘은 음주방송입니다.

하하하

 

노래 하나 틀어 드릴 테니 라디오 볼륨을 조금 올려보실래요?

최백호가 부릅니다.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2

 

‘낭만에 대하여’는 저보다 조금 윗세대인 50대의 정서에 맞는 노래이기는 하지만, 어느새 중년이 되어 버린 저 같은 사람들에게도 술 한 잔 먹으면서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게 하기에 충분한 노래입니다.

노래 중간에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라는 부분에서 가슴이 짜해진다니까요. 하하하

아~ 언제 이런 나이가 돼 버렸는지...

 

이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까 예전에 제가 팔팔했던 20대 시절이 살짝 생각나는군요.

혁명을 꿈꾸면서 살벌한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맞섰던 시절이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참 열정적으로 살았던 때였습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걸 몸으로 완전히 실감하지는 못했지만, 세상이 살벌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그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덤벼들었으니까요.

 

그 시절에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기타를 잘 쳤습니다.

그 친구랑 술을 먹고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면서 불렀던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오래간만에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 노래를 들어볼까요?

‘그것만이 내 세상’, 당시 20대들의 우상이었던 들국화의 노래입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 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야~ 술맛 정말 죽입니다.

젊은 폐기와 열정이 짜릿짜릿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폐기와 열정을 안고 울산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세상과 맞짱을 뜨기 시작했지요.

조금씩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제가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됐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앞만 보면서 무섭게 달려갔던 때였습니다.

그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재미도 있었거든요.

그렇게 겁 없이 달려가던 시절이 제 삶의 황금기였습니다.

지금은 찌그러져서 이렇게 별 볼일 없이 지내고 있지만 말입니다. 히히히

 

술 먹고 옛날 얘기하다보니까 떠오르는 노래가 많습니다.

기분도 좋은데, 오래간만에 노래 하나 부를까요?

하하하하

술기운에 주접떤다고 생각해주십시오.

 

음... 음...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 걸어

한 걸음 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 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넘칠

노동 해방 이 길을

 

 

3

 

아무리 음주방송이지만 너무 제 기분대로 방송을 하는 건 아닌지 살짝 고민이 되는군요.

다른 얘기로 화제를 옮길게요.

 

제가 경기가 일산에 있는 막내 동생 집에 잠시 와 있는데요, 이곳에 있는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됩니다.

어느 날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30대 보이는 엄마와 5~6살로 보이는 아들이 와서 그림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는 70%가 영어였고, 30% 정도만이 한국말이더라고요. 영어 수준도 혀가 제대로 꼬부라진 ‘오륀지’수준이고요. 나~참!

제가 고등학교 때에도 영어만큼은 쥐약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괜한 콤플렉스가 발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자녀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까 배알이 꼬이더라고요.

 

지적인 중산층 주부로 보이는 그 엄마는 아이의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미래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과연 미래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영어 능력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는다고 하겠지만,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때도 과연 미국이 일류국가일까요?

이미 기울기 시작한 제국주의 권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 권력이 단시간에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갖는 영향력이 아이들의 교육경쟁력을 갖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10년을 내다보는 그 엄마의 노력은 선견지명이라고 칭찬할만 하겠지만... 근데, 그 아이가 어른이 돼서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될 30~40년 후에도 영어가 그렇게 막강한 경쟁력을 가질까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그 유창한 영어실력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영어를 유창하게 구하는 친미파로 빠르게 변신했던 것처럼, 그때 가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되기는 하겠지만...

 

해외 유학을 했었던 동생의 얘기를 들어보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영어가 필요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몇 달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현지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엄마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를 하던 그 아이는 엄마의 경쟁 불안감 때문에 미래의 경쟁력이 별로 담보되지 않는 영어를 배우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면서 경쟁과 승리라는 가치관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배우고 있는 그 아이의 정신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저 같은 놈이 보기에는

골빈 년이 애 하나 잡고 있는 겁니다.

 

 

4

 

술 먹을 때는 씹는 맛이 최고라고니까요. 히히히

이제 술기운이 약간 올라오는군요.

그렇다고 방송진행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 Cadaveria라는 메탈밴드를 아시나요?

저도 메탈 쪽은 잘 모르지만, 우연히 이 밴드의 음악을 듣게 됐습니다.

전자기타를 이상하게 연주하면서 괴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처음에는 좀 오싹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오싹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를 듣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Opera IX의 여성보컬 Cadaveria가 Opera IX를 나와 만든 밴드이다. Necrodeath의 Flegias가 드럼을 맡고 Killer Bob이 베비시스트로 참여한 악츄러스 풍의 과감함과 기괴함이 공존하는 뉴 심포닉 호러 블랙 메틀이다”라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블랙 메탈’을 검색해봤더니, “블랙 메탈 (Black Metal)이란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로써 비명을 지르는 듯한 보컬, 괴상한 기타 소리 등이 특징이다. 어둠(Black)의 세력인 사탄을 숭배하는 헤비메탈이라고 해서 `블랙 메탈'로 불렸다고도 한다”라고 나와 있더군요.

 

극단적인 마초들의 음악인거 같은데, Cadaveria의 노래는 마초적인 분위기와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 보컬의 쫙 깔린 고음으로 내지르는 노래가 내 마음 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들춰내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여성이 그 상처들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저주를 퍼붓는 듯한 그런 느낌.

 

아이~씨, 읽는 라디오로는 더 이상 설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우림의 ‘새’라는 노래를 메탈로 부른다고 생각하면 비슷하지 않을까요?

더 이상 제 능력으로는 설명하지 못하겠으니까,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들어보세요.

 

인터넷에 그들 노래의 가사라도 떠있으면 번역되지 않은 가사라도 전해드리고 싶은데, 온통 영어로 지껄이고 있는 사이트뿐이어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여러분의 상상력을 빌어서 술 취한 제가 그 노래의 느낌을 간접적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이건 그들의 노래를 듣고 난 후의 저의 느낌이지, 그들의 음악은 아닙니다.

기괴한 음악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음악을 듣지 말고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숲속 찬바람이 불어오고, 요상한 전자기타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오두막의 문이 열리면, 검은 드레스를 입고 기괴한 얼굴 문신을 한 여자가 밖으로 나온다.

전자기타와 드럼 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그 여자가 차가운 눈을 하고 가만히 앞을 쳐다보다가 고함을 지르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응?

왜? 아무 말도 못하는데? 응?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고? 응!

왜! 아무 말도 못하냐고? 응!

 

내가 미친년 또라이 같아 보여?

이 얼굴에 있는 문신들이 이상해?

이 문신들 하나 하나에 담긴 뜻을 설명해줄까?

이 문신들 하나 하나에 흘린 피를 얘기해줄까?

 

나에게서 건질 것이 있을 때는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잖아

내가 순진해 볼일 때는 더없이 상냥하게 대해잖아

나를 욕망할 때는 무지무지 부드럽고 뜨거웠잖아

나 아직 젊고 뜨겁거든

일로 와, 놀아줄게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 모른다고 했지?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서 성숙해진다고 했지?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악이 쏟아져 나왔지만 마지막에 희망이 들어있었다고 했지?

그 희망이 이 문신이야

가까이 와서 만져봐

 

내 가슴에 꽂혔던 너의 칼로 하나씩 팠어

싸늘하게 돌아선 너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피를 마셨지

도와달라는 외침을 못 들은 척 지나가버리는 너를 이마에 그렸어

역겨운 표정으로 찡그린 너의 눈을 생각하면서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았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 이상 봐주지 않는 너를 위해 만든 것들이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그 눈을 파 버리겠어

아무 말도 하지마! 그 입을 찢어버리겠어

그냥 즐겁게 나랑 놀기만 하면 돼

이 밤을 나와 함께 즐기자고

 

 

5

 

벌써 한 병 반을 비워버렸군요.

술기운은 오르고, 술은 더 땡기고...

흐흐흐 미치겠습니다.

아~ 갈등생기네.

 

자,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좋겠지요?

여기서 더 달려 버리면 내일이 힘들어지니까.

혼자서 막걸리 두 병이면 마실 만큼 마셨으니까 조금 아쉬울 때 그만해야겠습니다.

 

예전에 유명한 DJ 이종환은 술 먹고 헤롱헤롱한 상태로 방송하다고 짤렸는데,

저야 괜찮겠지요? 흐흐흐

가끔 이런 맛이라고 찾으면서 살아봅시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잔을 마저 비우겠습니다.

캬~아!

혹시, 시간도 많고 돈도 있는데 술 먹을 사람이 없으신 분이 있으면 연락주십시오.

제가 같이 마셔드릴게요.

 

오늘은 조금 일찍 잘 수 있겠군요.

마지막으로 브루콜리 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들으면서 음주방송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죠.

안녕~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께요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주변의 이웃들은 자야 할 시간

벽을 쳤다간 아플테고

갑자기 떠나버릴 자신도 없어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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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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