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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의 기억을 먼저 더듬어 봤다.
2~3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가난에 대한 무게감은 실감났지만,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뻔한 이야기여서 감동은 별로 없는 그런 소설이었다.
재미있게 보고나서 금방 잊혀지는 그런 소설이었다는 얘기다.
그 소설이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서 나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살짝 살짝 맛보기로 보여지는 영상들이 호기심을 약간 갖게 만들었는데
개봉 이후 영화에 대한 평이 의외로 괜찮아서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흥행에서는 완전 찬바람 쌩쌩 불어 닥친다고 했다.
반면 ‘국제시장’은 장난 아닐 정도로 난리라고 하니
‘국제시장’에 대한 반감 비슷한 기분으로 이 영화를 봤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원작 소설을 뛰어 넘어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만들어낸 상업영화였다.
이야기의 기본 틀은 원작에 의지했지만 캐릭터나 이야기 구조는 원작에서 변형이 많았다.
그런데 그 변형들이 과장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절제되면서도 나름대로 완결성을 갖고 있었다.
원작보다 훨씬 더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했지만 캐릭터들은 모두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오버하지 않았다.
체스판의 병정들처럼 정해진 역할에 충실한 이런 캐릭터들은 자칫 영혼 없는 인형처럼 밋밋할 수 있는데
이런 점을 극복한 것이 은근히 신경을 쓴 미장센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웨스 앤더슨이나 팀 버튼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장센 하나하나에 꽤 공들인 흔적들이 역력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잘 다듬은 인형들을 직접 제작한 작은 수로 위에 놓아두고 물을 흘려보내서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인위적이었지만 자연스러웠다.
현실성이 별로 없는 뻔한 이야기가 독특한 매력을 가질 수 있었던 점은 이런 절제와 정성에 있었다.
원작이 갖고 있었던 장점인 가난의 무게감이라는 리얼리티는 완전히 버려버렸다.
가난한 아이들은 가난한 티 하나 없이 맑고 천진하기만 했고
어른스러운 아이들과 아이스러운 어른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은 평등한 유토피아 같았다.
그런 세상에서는 가난마저 낭만적이었고, 추잡한 욕망은 아이들 소꿉놀이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현실성을 완전히 없애버린 그 세상이 잠시나마 관객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의 순수함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눈높이를 잃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이스러운 어른들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자연스럽게 맞춰졌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른스러운 놀이를 펼치는 것이 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루셔니스트’ 생각이 많이 났다.
헐리우드 애니메이션과는 품격을 달리하는 프랑스식 예술영화의 자존심을 보여줬던
‘일루셔니스트’에서는 장인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려낸 캐릭터들이
너무나 이타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보여줘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더위 때문에 영화의 따스함이 금방 날아가 버렸지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재미있고 보고 나와서는
매서운 칼바람 때문에 그 따스함이 조금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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