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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춘할망

제주도를 배경으로한 영화치고 짜증나는 영화는 없었지만 좋았던 영화도 없었다.
80년대 ‘애마부인’도 그랬고, 90년대 ‘연풍연가’도 그랬고, 2000년대 ‘인어공주’도 그랬고, 작년에 본 ‘짐작보다 따뜻하게’까지 다 그랬다.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섬사람들이 살아가는 제주도는 서울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일탈과 휴식과 치유를 위한 공간이었다.
외지인들의 눈으로 제주도와 제주사람들을 대상화하면서 그저 낭만과 환상의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다.
‘계춘할망’도 그런 부류에서 크게 벗어나는 영화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그랬다.

 

능수능란한 서울말과 어색한 제주말을 섞어놓은 대사는 집중을 방해했다.
심지어 경상도 억양으로 제주말을 하는 배우까지 있었다.
그거야 제주 출신의 배우들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라치더라도
‘할머니’를 앞에 대놓고 ‘할망’이라고 부르는 손녀의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할머니’가 제주말로 ‘할망’이라는 것만 알았지
본인을 앞에놓고 부를 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도 몰랐다는 건가.
‘할망’이라는 제주말의 이미지만을 소비하려고 했을 뿐
제주도 할망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가서지 못했다는 증거다.

 

제주도에서 평생 물질을 하며 살아왔던 할망은 참으로 순수했고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은 참으로 타락했고
그 사이에 끼어있던 손녀는 좌충우돌하면서 갈등했다.
이야기 구조는 너무도 고전적이고 식상했다.
그나마 중간중간 들어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위안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다루는 방식도 1980년대부터 다뤄왔던 방식 그대로였다.

 

10년 전에 봤던 ‘인어공주’를 다시 리메이크한 느낌이었다.
제주도와 해녀와 손녀(딸), 거기에 남자 선생님까지 집어넣어서
식상하고 어설픈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제주도의 자연으로 적당히 눈요기하며 시간을 때우는 그런 식.
‘계춘할망’은 거기에 두 가지를 더 넣었다.
삶의 힘겨움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그림을 넣었지만
삶의 힘겨움이 피상적이었기에 그림에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극적인 반전과 강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얽히고 설킨 가족사도 들어갔지만
그 혼한 막장 드라마를 제주도를 배경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2시간짜리 영화가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과
윤여정의 연기가 눈부셨다는 점이다.

 

외지인의 시선으로 제주인에 대한 얘기를 한 ‘계춘할망’은
이런 식으로 제주도과 제주사람들을 또 한 번 소비했지만
제주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나는 이런 식으로 소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속에서 제대로 호흡해봐야지.
제주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내 삶으로 가져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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