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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이가 보시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아는 사람들에게 택배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잊고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몇 분이 그 사실을 확인시켜줬습니다.

택배로 받은 걸 어떻게 이용했는지 자세하게 써서 보내준 분이 있었고

별거 아닌 내용물에 대한 답례로 귀한 선물을 보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런식으로 피드백이 되는 것도 좋고, 보낸 것보다 좋은 걸 받아서 더 좋고 그러내요. 히히

 

나의 행복을 공유함으로서 좀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택배를 보냈지요.

받아보신 분은 알겠지만, 내용물은 별거 없습니다.

내가 지금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 뿐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거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너무 반응이 좋았던 게 탈이더군요.

기분 좋게 택배를 보내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성민아, 세상 사람들은 뭔가를 준다고 하면 관심을 가지지만, 도와달라고 하면 무관심한 법이야. 지난 8년 동안 허벌나게 경험했잖아.

진보니 좌파니 혁명이니 하는 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아직도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지난 8년의 경험이 뭘 말해주는데?

헬조선이 왜 헬조선인지 너도 잘 알잖아.”

 

뭐,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또 다른 나,

상처입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스스로에게 다시 상처를 입혀려는 거지요.

그래서 더 안쓰럽기는한데 아직은 가까이 할 자신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이 친구랑 정말 많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얘는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져서 점점 나를 먹어치웁니다.

나중에는 얘가 무서워서 열심히 도망다닌 적도 있는데

내가 열심히 도망치고 있으면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면서 제 앞을 가로막곤 했습니다.

결국 얘랑 싸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포기했지요.

  

그러다가 제주도에 내려왔습니다.

부모님과 투닥투닥거리면서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작물의 변화에 마음 졸이면서 지켜보고

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를 매일 뽑고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녹두도 따고

그 후유증으로 병원에도 나니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책으로 배운 어설픈 명상도 열심히 하고

맨손 운동도 틈틈이 하며 몸관리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쯤 지내다보니

성민이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그 놈이 안보이는 겁니다.

시냇물에 흘러가듯 흘러내려가버린 것이지요.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찾아와서 마음에 흙탕물을 일구어놓지만

이제는 얘를 다루는 방법을 알기에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면 얘가 놀다가 재미없어서 가버리거든요.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 친구가 그렇게 흘러가버려서

택배니 뭐니 다 잊고 있었는데

뒤늦은 메일과 선물로 그때의 즐거운 기억이 다시 살아난 겁니다.

그래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지요.

  

아이~참,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친구가 찾아왔네요.

이 친구는 좀 전의 그 친구랑 달리 저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저를 바라보기만 하지요.

  

아주 예전에, 성민이가 근골격계투쟁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 서울에서 후배들과 자리를 한 적이 있지요.

뭐, 적당히 폼잡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제가 성추행을 했던 여자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저를 바라보기만 했었지요.

  

뒤늦게 저를 찾아온 또 다른 이 친구는 바로 그런 눈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혐오하는 표정없이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얘는 참 난감합니다.

싸울수도 없고, 도망갈수도 없고, 무시할수도 없고, 흘려보낼수도 없고

미안했다고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사정할수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이 친구의 눈길을 의식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하나의 편법을 발견했습니다.

불교에서 발견한 편법인데요

‘보시’라는 방법이있었습니다.

내가 베품을 행함으로서 중생이 구제된다는 건데

나의 선행으로 악행이 사하여진다는 기독교논리랑도 비슷한거 같고...

뭐 암틈, 착한 일 하면 과거의 죄값이 싸진다는 그런 내용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보시’를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좀 이기적인 발상이라서 마음이 찔리기는 합니다.

제가 상처줬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제 스스로 죄값을 경감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아 뭐, 길이 안 보일 때는 옆길로도 가고 그러는 거니까

이렇게 조금 더 가봅시다.

  

앞으로 여러분은 성민이가 보내는 택배를 불쑥불쑥 받게 될 겁니다.

아시겠지만, 내용물은 별거 없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냥 성민이가 죄값을 덜려고 보시하는 거라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시면 됩니다.

만약에 이사를 가시게 되면 주소를 알려주시는 센스를 잊지 말아주시고요

지난 번에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시지 않은 분은

성민이를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말마다 촛불집회 가는 게 큰 일정이 됐는데

요즘에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3월초에 탄핵이 확정되버려서 촛불집회가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그러면 주말에는 혼자서 재미없는 tv와 놀아야하잖아요.

그렇다고 탄핵이 기각되길 바랄수도 없고

참 고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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