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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거짓 여명인가 - 스콧 니어링

아침은 거짓 여명으로 시작된다. 별빛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동쪽 지평선을 따라 은은한 빛이 슬그머니 나타난다. 낮이 하늘에서 밤을 몰아낼 태세인 듯하다. 하지만 곧 별들이 반짝이다 사라지고 밤은 어느 때보다도 깊어진다. 동쪽 지평선에 잠시 나타났던 은은한 빛은 거짓 여명이었던 것이다. 이제 어둠은 정말로 물라가도 동쪽이 밝아지면서 하늘이 환하게 빛난다. 그리고 여명이 낮으로 이어진다.
대규모 전쟁이 전세계에 위협의 그늘을 드리우는 동안 나는 여명을, 평화와 안녕과 진정한 행복을 약속하는 진짜 여명을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사회주의가 바로 그 진짜 여명일까, 아니면 어둠을 뒤에 감추고 있는 거짓 여명일까? 사회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운동이 파괴적인 생존투쟁의 차원을 넘어 공동선을 보장하고 보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창조적인 활동의 지평으로 인류를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생명력이 있고 토대가 든든하며 헌신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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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공산주의가 새 날을 열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성취의 기록과 함께 지독한 실패의 기록도 지니고 있는 서구 문명은 밤의 어둠처럼 밀려나 역사의 자료실에 안장될 것이며, 그 사이 인류는 이 땅을 다음 세대들이 팽창하는 우주에서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제 몫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훈련소로 만들 각오와 열의를 갖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이 스스로를 개조하는 동시에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을 개조하는데 헌신해야만 한다.
나는 인류가 현재 서구 문명을 에워싸고 옥죄는 전반적인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비교적 수월하고 간단하며 유익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위기는 경쟁적이고 탐욕적인 사회를 조직하고 확장한 데서 기인한 논리적인 결과이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쉽고 간단하며 덜 고통스러운 방법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최근 흐름대로 계속 밀고 나가면서 과학기술을 사회과학에(자연과학은 말할 것도 없고) 적극적으로 응용하고, 여기에서 얻은 결과로 인류 전체를 결핍에서 풍요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물론 풍요의 분배는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가게 해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극심하게 한정되어 있던 과거의 계급문화가 훨씬 폭넓은 대중문화로 바뀔 것이다. 즉 인류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능력을 발휘할 영역을 확대하며, 집단 경험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기간시설과 여가시설을 확충하는데 재원을 사용하여 사회환경을 재건하고, 개별 국가들을 효과적인 전지구적 연합체로 통합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격려하여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데 협력하게 해야 한다.
기존 사회질서에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타날 변화가 기존의 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 점을 입증하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목표는 서구 문명을 뛰어넘어, 그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의 잠재력을 의식하며 사회발전의 다음 단계를 향해 분투하고 변화하고 진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 좀더 생명력 있고 창조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이며, 현재의 세계혁명을 움직이고 있는 무질서한 에너지를 잘 다스리고 조율하여 인류의 문화양식을 좀더 진보된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러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곧 다가올 힘겨운 시기에 인류의 운명을 계획하고 구체화하고 인도할 책임을 떠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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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략하게 제시한 프로그램은 전지구적 규모의 사회변화를 의미하고, 인간의 삶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류가 지구와 지구에 사는 거주자들 - 인간과 접촉하는 모든 형태의 생명체를 포함한다-의 수탁자임을 수긍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류의 능력을 시험하고 인류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우게 될 중대한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수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현실적 힘을 얻는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실행을 퉁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더 높은 차원, 더 넓은 전망, 더 막중한 책임으로 고양시키게 된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삶의 한 방식으로서의 사회주의를 확립함으로써 세계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오늘날의 여러 가지 시도들은 1917년 러시아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후 반세기에 걸쳐 여러 국가와 민족들이 잇따라 자본주의를 떨쳐버리거나 회피하고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과업에 전적으로 매달려왔다. 현재는 인류의 삼분의 일 이상이 이 과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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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회주의 건설과 관련하여 가장 기본적이고 명백한 사실은 사회주의가 반세기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대변인들이 사회주의 관리하에 있는 지역이 더 이상 늘어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으며 사회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지난 반세기 동안 사회주의 건설지역이 급속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이런 반혁명적인 공세는 앞으로 어떤 나라나 민족도 사회주의 건설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이런 반혁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뚜렷한 세력으로 입지를 굳혔다.
사회주의의 성장기록에 관한 두 번째 기본적인 사실은 사회주의 국가의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볼 때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자본 식민주의 아래 있을 때보다 한층 형편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셋째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개인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생산설비의 사회적 소유와 관리를 대대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 점은 여러 면에서 독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드러진 차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사회주의 건설의 기록에서 네 번째로 중요한 사실은 소련이나 루마니아, 알바니아 같은 나라가 불과 한 세대에 걸친 강도 높은 노력만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후진국에서 탈피하여 더 나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건설하는 나라로 전환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을 배우고 기계화된 산업에서 맡은바 직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습득했으며, 필요한 자본을 모아 필수적인 장비를 생산하고, 현대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양의 물자와 서비스를 창출해냈다.
사회주의의 부상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다섯 번째 사실은 사회주의자들이 창안해낸 프로그램들이 오늘날의 사회조직 속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효과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연결되는 무상 공교육, 건강과 여가활동을 위한 무료 공공시설, 공공주택사업, 그리고 언어와 종교, 식습관이 다른 이질적인 문화에 대처하는 방법 등, 소련과 중국이 보여준 주목할 만한 성과는 원시적인 부족사회에서부터 기계화·자동화된 독점자본주의 요새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많은 부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자결권을 획득한 이전 식민지 지역들이다.
서구 문명의 중심지들은 자본상품과 소비재, 광고와 그 밖의 프로파간다로 지구를 범람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품들을 신설 사회주의 기업보다는 독점자본주의 기업이 훨신 싸게 생산, 판매할 수 있다. 자본주의 기업의 분명함 목표는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들을 꾀어들이는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의 분명한 목표는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필수품과 여가시설을 제공하는 한편 새로운 요형의 인류를 발전시키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유형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잡다한 가재도구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세대를 기반으로 삼는다. 사회주의 사회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신세대는 혁명투쟁에서 단련되지도 않았고 혁명의 경험도 부족한 탓에 서구의 프로파간다와 문명의 이기에 의해 서구와 똑같은 생활 수준을 요구하도록 유혹당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태는 모든 의도적인 계획 공통체의 삶이 갖는 중요한 역할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주의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죽거나 은퇴하면 이들의 자리를 채울 사람은 자신들이 발의하지 않은 헌법 규정을 받아들이고 따르기를 요구받는 세대이다. 새로운 세대가 윗세대에게 흡족스러웠던 삶의 방식을 반드시 받아들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쟁과 혁명으로 모든 것을 박탈당한 세대가 의견을 모아 새로운 생활 패턴을 이끌어내는 것은 비교적 수월한 일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와 유사한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날로 번창하는 자본 제국주의가 온 인류에게 합리적이고 적절하며 합법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젊은 세대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 표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언론과 여타 대중매체와 학교, 교회, 봉사단체, 사친회나 재향군인회 같은 사회조직들로부터 '불온하다'고 낙인찍힌다. 철의 장막 다른 편에서도 '독점자본주의'나 '파시즘'이 시종일관 악마로 그려진다는 점을 빼면 거의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양측이 모두 전쟁의 심리학과 전쟁의 기술을 이용해 젊은 세대를 두려움과 근심과 증오를 갖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양측 모두 육해공군을 총력 편성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징병제도를 유지한다. 양측 모두 방어와 신속한 반격을 위해 조직된 기구와 더불어 기습공격을 위한 준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거대한 군사조직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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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권리 문제에 관한 한 사회주의 국가들도 자본주의 국가들과 똑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 당국자들은 긴박함의 정도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제한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본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나) '언론의 자유'의 정도는 그 사회가 얼마만한 긴장 속에서 돌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긴박한 상황은 긴장을 자아낸다. 화재나 홍수, 지진, 전쟁, 적의 침입 등이 야기하는 불안의 정도는 각기 다르다. 한 지역 안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에는 해당 지역의 교통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화재가 크게 번진다면 도시 전체에 계엄령이 발효될 것이다. 사회주의는 새로 생겨난 것이고 상대적으로 경험이 일천한 만큼 사회주의 당국자들은 어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성의 법칙 아래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모든 사회는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인재와 아직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수재들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회든 -특히 긴급한 상황에서는 - 지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창력과 창조력이 사회를 교란하는 불온한 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가 혁명적 변화의 압박과 혁명투쟁의 열정 속에 휩싸여 있을 때는 인재와 수재들이 혁명사업에 흡수된다. 그러나 혁명의 긴장이 늦춰지면서 인재와 수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 전방위로 손을 뻗는다. 그들은 능력을 발휘할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하면 스스로 채널을 만들어 추종자들을 끌어모은다.
어떤 사회든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뛰어난 인재들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치밀하게, 대대적으로 강구해 왔다. 하지만 사회주의 건설 2세대로 들어선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것도 특히 예술 분야에서 '인재'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과연 인재들, 특히 젊은 인재들에게 진리와 진실을 모색케 하고 체계화하여 그것을 공표하고, 동료 시민들을 위해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격려했던가? 진리를 추구하고 그것을 체계화하여 구현하는 일이 기성사회가 정해 놓은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성원과 보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계를 넘어서면 말썽-이론과 실천 분야에서-이 빚어진다. 규범을 준수하면 환영받고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정해진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은 문제시되고, 위반자에게는 벌이 내려졌다.
사회주의 건설이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반세기라는 시간은 낡은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개혁자들을 기꺼이 끌어안는 방법까지 마련할 수 있을 만큼 긴 세월은 아니었다. 이 문제는 과학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치학이나 사회학과 인접한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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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 롤랑은 말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사회는 그 아기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아기가 생각을 하게 되면, 기존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이 보편화될수록 사고는 분방해지고 규범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쉬워진다. 사회주의자들은 그 동안 교육을 강조해 온 만큼 사상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사상과 각 세대의 사상가들을 어떻게 다룰지 대책을 마련햐야 한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 행정학 성적표에 벌점을 받게 된다.
사회주의와 관련하여 나를 괴롭혀온 문제들 가운데 이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사회주의를 의식주와 같은 일용품의 수준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다. 인간은 이러한 필수품들이 있어야 생존하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무력해지거나 추해지거나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필수품은 정상적인 삶의 필요조건이다.
더 많은 물자와 서비스가 육신의 편안함과 사회적 즐거움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삶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잉여물자와 서비스가 날로 증가하는 형편 속에 살면서도 미국 구세대가 보이는 현실도피와 젊은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보라. 육신의 허기를 메우는 것이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한 걸음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의 만족 이상으로 인간에게는 알고 소망하고 참여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다. 그리고 오직 이런 영역에서만 인간은 큰 만족과 진정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모든 시민들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법규정을 채택하고 계획을 세웠다.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가들에게는 이 단계에서 만족하고 삶의 다른 부분들은 방임하는 경향이 있었다. 본질적으로 이는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생활 수준이다. 사회주의가 인류 문화에 남다른 공헌을 하려면 복지국가의 수준을 넘어 창의와 탐구와 창조라는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분야에서 선취권을 잡아야만 사회주의적 인간이 부르조아 전임자들과 구별될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부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사회사에서 의미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회가 부르조아 사회를 능가하는 진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적 인간이 부르조아적 인간을 능가하는 진보를 성취해야 한다.
1965년 모택동은 '자기를 잊고 사회를 중심으로 사고하라. 대중의 복지를 먼저 생각하고 대중의 복지가 모든 사회적 관심사에서 으뜸이 되는 협동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조직하라'는 슬로건 아래 편협한 개인의 이해를 보편적인 사회의 이해와 융합시키기 위한 운동에 착수했다.
현재 중국 인구는 8억으로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모택동 주석은 전체 인류의 오 분의 일에 이르는 중국 인민이 자기 중심의 편협성을 억제하고 공동체를 우선시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이 지역주의에서 보편적 이해로 시야를 확대한 것은 대중의 복지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을 자극하고 인류 전체를 더 높은 사회의식의 지평으로 끌어올리며 온 인류의 형제애를 향해 정족을 내딛는 결정적인 조치이다.
빠른 운송과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인간의 노동을 보충하고 대신하는 기계, 자연 에너지의 대규모 이용과 같은 기술의 발달이 이런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모택동의 사회혁명은 대중의 복지를 머저 생각하는 사회질서를 확립하는데 기술의 진보를 활용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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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하나의 기정 사실이라기보다는 미완의 사건이다. 문화양식의 다른 변화들이 그렇듯 사회주의 역시 몇 세대에 걸친 프로파간다와 반세기에 걸친 행정 경험을 통해 발전해 왔다. 물론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건설에 전념하고 있는 사회들에서 더 발전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종족주의 및 봉건주의의 잔재와 독점자본주의의 끈질기고 깊은 뿌리가 아직까지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는 사회주의 발전이 가장 더디다. 종족주의와 봉건주의, 그리고 독점자본주의는 문화적 '현재완료형'이다. 이것들은 이미 전성기를 지났고 제 역할을 다했다. 지금은 사회주의가 조금씩 이것들을 대신하고 있다. 종족주의와 봉건주의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확립하는 데 성공한 사회양식에 비견할 만한 전지구적 사회양식을 사회주의는 어느 정도까지 확립할 수 있으며 확립하게 될 것인가?
사회주의는 '완제품'이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화하는 사회제도들의 결합체로서, 자본주의가 한 지역에서 미약하게 출발하여 전지구적으로 수용·채택되기까지의 유사한 파리프사이클을 밝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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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 시작된 전쟁과 사회혁명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자본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자들마저 테러와 독재, 숙청에 의지했으며 격렬하고 지리한 분파논쟁-이 논쟁에서는 인신공격을 장려하고 미화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에 의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 혁명과 비교할 때 사회주의 혁명은 공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대중들에게 분명하게 이익이 되었고, 이들의 지지를 끌어냈으며, 혁명의 지도자들 상당수가 사회에서 혜택받지 못하고 착취만 당하던 사람들 가운데서 배출되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격렬하고 가차없는 반대는 세대가 바뀌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계속되어 왔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부풀려 선전되었고, 사회주의의 성공은 선전이 억제되거나 아예 은폐되었다. 신생 사회주의 국가들이 더 나은 삶을 일구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자본주의자들은 그들을 돕기는커녕 방해하고 가로막고 뒤엎고 파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모든 초심자들이 다 그렇듯,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역시 끝없는 문제와 난관에 봉착해 왔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제대로 만들기까지 6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모든 발명가와 실험가들은 같은 운명이다.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 중에는 효율적인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많다. 천재는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른길을 마음속에 그리며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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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편협한 이익이 지배하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왔다. 지역의 익과 개인의 이익을 강조해 온 이 긴 세월 중에도 대중의 복지에 대해 생각하고 대중의 복지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생활양식을 확립하고자 하는 개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의 꿈과 계획과 창조적인 행위는 20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생존을 보장하고, 산업혁명과 기술혁명에 따른 경제·사회적 변화에 비례하는 사회질서의 발전을 지향했다.
이런 개혁가와 혁명가들의 목표는 대개 조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행복한 삶이었다. 이들은 무지, 미신, 빈곤, 실업, 그리고 이윤을 노리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만인의 면전에 흔들어대는 무질서한 수많은 유혹의 손길을 제거하고자 했다. 한편 이들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일깨우고 자극할 만한 이상과 희망과 전망과 제도와 본보기를 만들어 유지하고자 하는 동시에 올바른 사회적 삶에 우선 순위를 두고 조하로운 삶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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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로서 나는 인류가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가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여명의 빛을 지나 새날의 눈부신 빛 속으로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희망과 결단과 인내와 용기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넓은 시야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치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력, 비현실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을 구별하는 능력, 잘못된 것을 거부하고 옳은 것을 단단히 붙드는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이 복지국가형 자본주의 진영 내의 반대세력을 수적으로 따라잡거나 능가할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평가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아직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인류로 하여금 1895년에서 1917년까지 혁명적 약진 이후 줄곧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게 만든 중대한 딜레마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다. 오늘날의 사회주의는 시험중에 있다. 다른 모든 보편적인 문화양식들이 스스로를 입증하기까지 시험을 거쳤듯이 말이다. 사회주의 진영은 역사상 가장 변화가 많은 시기 가운데 하나를 통과하고 있는 세대의 절박한 요구에 답하기 위해 1945년 이후 줄곧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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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장을 사회주의가 거짓 여명인가 아니면 인류 역사의 새날을 여는 진정한 여명인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전지구적 상호의존의 시대를 맞아 가장 어려운 시험에 직면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단결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함께 일하고 함께 견딜 수 있을까? 자본주의자들은 이 시험을 통과하는데 실패함으로써 갈등의 세기를 거쳐 세계대전에 이르렀다. 사회주의자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권력을 나누고 위임하고 이전하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선조들이 지난 6천 년 동안 20개의 문명을 거치면서 실패했던 것처럼 실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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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들은 무지를 끝내고 지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길, 빈곤을 끝내고 풍요를 균등하게 누릴 수 있는 길, 되는대로 사는 삶을 끝내고 계획적인 삶을 사는 길, 혼돈을 끝내고 질서를 가져오는 길,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을 찾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답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사회주의가 인류의 새날을 여는 진정한 여명이 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 건설이 진행된 50년 세월은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상가와 정치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판단과 추축과 예측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 주기도 했다. 사회주의 건설자들이 독점자본주의 반혁명의 정면공격을 이겨내고,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유혹을 피하고, 그날그날의 진보를 꾀하는 공동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혁명적 이상주의를 일상생활의 필수요소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사회주의는 인류의 새날을 여는 진정한 여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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