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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소모품이었어"

 
"나는 결국 소모품이었어"

인력감축과 노동강도 강화가 근골격계 직업병 키웠다


지난해 대우조선 노조의 투쟁으로 사회적 관심을 모으게 된 '근골격계' 직업병 승인 투쟁
이 최근 금속 사업장을 넘어 사무직 사업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입력을 주
로 하는 '오프에스이' 노조도 최근 근골격계 직업병 승인 투쟁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
다. 이에 <하루소식>은 그 심각성과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이 병으로 요양중인 한 노동
자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노동자들의 몸이 혹사당하고 있다. 일의 강도가 너무 세고, 많은  시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환경 때문에 겉으로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 골병 드는 '근골격계 직업병'이
노동자들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만드는 두원정공에서 13년째 일을 해온 문경철(45세) 씨는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지난  달부터 요양 치료를 받고 있다. 문 씨는 제품 검사를 위해 40kg이  넘
는 상자를 나르고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루에도 수 차례씩 해 왔다. 그러다 지난 97년 이
후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문 씨는 예전보다 더 많은 일
을 해내야 했다.

"처음에는 빠진 사람들 일을  해야 하니까 과부하가 걸렸죠.  근데 한 3-4개월 지나니까
거기에 적응이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5명이 했던 일을 3명이 하고,  3명이 했던 일을 2명
이 하고... 결국 내 몸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일해왔던 거죠."

문 씨의 말은 과중한 노동강도가 근골격계 직업병을  불러왔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는 '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이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두원정공 사업장을 조사하
고 펴낸 보고서에 의해서도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구조조정으로 노동자 수는 1천여 명에
서 6백여 명으로 꾸준히 줄어왔지만, 감축된  인원이 이전과 동일한 물량을 계속 생산해
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씨는 지난 2년 동안 일을 하다 아파도 회사로부터  해고 당할까봐 제대로 말도
못하고 이를 악물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멀쩡한 사람도 아웃되는 상황인데 아프
다는 얘기를 못한 거죠. 아프다고 얘기하면  '나 잘라주십쇼' 하고 고백하는 거나 마찬가
지니까.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문 씨는 개인적으로 조퇴나 월차, 외출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 했고, 치료비용은 물
론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야 했다. "똑바로 누워서 자다보면 어
깨, 허리가 너무 아파 30분을 반듯하게  못 누워있어요. 뒤척이다 보면 설  잠을 자게 되
고,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내면 사람이 붕 뜬 것 같아요. 그러다 주말에는 고통을 잊어보
려고 주량보다 더 많이 술을 먹는 거죠. 그 다음날은 후유증 때문에 더 많이 아프고... 악
순환인 거죠."

그렇다고 문 씨가 처음부터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0년 근로복
지공단에 허리통증으로 산재 신청을 했지만 '퇴행성  질환'으로 판정, 회사가 문 씨의 질
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문 씨는 지
금도 비참한 생각이 먼저 든다고 한다.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는데, 이렇
게 나락으로 떨어지니까... 회사가 나를 인격체가 아니라 소모품이고 도구로 대했구나 이
런 비애감이 들더라구요."

다행히 문 씨는 지난 1월 노조원들과 함께 집단 요양 신청을 내고  산재 승인을 받아 병
원에 입원,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두원정공 외의 많은 사업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아픈 건  당연하다'는 논리로 근골격계 질환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산재
사실을 은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대해 두원정공 노조의 이기만 수석부위원장은  "개별적인 공상처리보다는 노동자들
이 집단 요양을 신청해 산재 승인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작업장에 필요한 인원을 보충하고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강도를 통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양 치료를 받더라도 집단 작업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근골격계 질환이 또 다시 재발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는 것이다.

실제 두원정공 노조는 잔업시간을 2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회사측에 요구, 2001년부터 이
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필요한 노동인력의 보충과 함께 집단적 작업환경을 감시
하는 노동안전보건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보장을 회사에 요구할 계획이다.

이러한 두원정공의 사례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근골격계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사업장에   모범 사례이자   힘이 되고   있다.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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