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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연말편지

작년 이맘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참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런 행복한 느낌을 가져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만큼 이런저런 성과들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다시 연말이 됐습니다.

올 한해는 ‘참 힘들다’라는 느낌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올 초 울산노동뉴스 활동을 정리하면서 좀 쉬고도 싶었고, 그동안의 성과를 딛고 좀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욕심은 생계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고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울산노동뉴스를 그만두고 나서 몇 군데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고,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를 생각하면서도 이후 삶에 대한 문제로까지 고민이 이어지면서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울산에서의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쌓은 경험과 알량한 능력을 팔아먹는 식으로 활동을 계속할 경우 40대 중반이 돼서는 매너리즘에 빠져 관료화되거나 일선에서 멀어질 것이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익숙해져 있는 것들을 털어버리고, 28살에 울산에 내려올 때처럼 내 자신의 관성과 대결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일을 같이 하기로 결정한 동지들이 있었지만 무책임하게 울산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생이 있는 경기도 일산으로 온지 벌써 6개월이 됐습니다.

사회적 관계는 단절되고 새로운 관계들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립 속에서 외로움은 점점 깊어졌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문든 문득 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지는 기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도 옆에서 묵묵히 챙겨주는 동생이 많은 의지가 되고 있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가 삶의 밑거름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생각이 ‘사람들이 쌩깐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돈이 필요하면 돈을 만들어서 쥐어 주었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들을 데려왔고,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면서 곁에 있으려 했고, 휴일이나 명절도 없이 함께 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할 때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생각에 내가 잡혀 있는 동안 엄청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쌩까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다보니 나 역시도 나름대로의 이유를 대면서 쌩깐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쌩까고 있는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항상 나를 걱정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목적의식적으로 가족과 멀어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지할 데가 없는 경우에는 결국 또 가족에게 의지하면서 또 쌩까고 있는 것입니다.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지독하게도 일방적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를 느꼈습니다.

말로는 ‘대중이 아프면 나도 아프기 때문에 함께 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내가 어려울 때는 뭔가 돌아오는 게 있겠지’ 하는 바램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은 상대가 쌩까더라도 계속 걱정하고 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간절함은 이렇게 부족하고 이기적인 간절함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생각이 이렇게 변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그 즈음에 故 권정생 선생의 글 하나를 우연히 읽게 됐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고 외롭게 죽어갈 때 하느님은 끝낸 침묵으로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의 집 건너편 개울가에 남편에게 얻어맞고 쫓겨난 벙어리 아주머니 한 분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또 권정생 본인은 외로움을 쥐와 개구리와 함께 달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외롭다고 쩨쩨하게 밖으로 푯대내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혼자서 꾹꾹 숨겨놓고 태연스레 살 뿐이다. 하느님이 계속 침묵하시듯 우리도 입 다물고 견디는 것뿐이다.”

저는 주로 ‘외롭다고 쩨쩨하게 밖으로 푯대내고 사는 사람’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입 다물고 견디는 것’이 더 필요한 가 봅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서 투쟁해왔던 얘기들을 듣다보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운동을 해왔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10년이 넘게 척박한 조건에서 활동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는 동지도 있었고,

10년 넘게 상근 간부를 하면서 지칠만도 하지만 쉼 없는 열정을 이어가는 동지도 있었고,

20년이라는 세월을 폭력적 테러가 난무하는 속에서 버티고 있는 동지도 있었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투쟁을 7년이나 벌이면서 싸워온 동지도 있었고...

그 동지들과 얘기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운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롭게 배우는 기분입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동지들을 만나서 좀 더 다양한 얘기를 들을 생각입니다.

이 과정이 새롭게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겠습니다.

 

2000년에 ‘동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유지태와 김하늘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무선통신을 통해 2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대화를 한다는 약간 황당한 멜로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매우 잘 만들어져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영화 중에 1979년을 살아가는 김하늘이 2000년을 살아가는 유지태에서 “그 세상은 이뻐요? 살맛나는 세상이냐고요?”라고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내가 30년 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할까?

아니면 내가 30년 후에 살고 있는 사람과 통화하고 있다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을까?

 

그해 연말에 여러 동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약속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는 마무리하면서 3년 후의 목표를 하나 세웠습니다. 2003년 연말에는 지금 소식을 전하는 동지들에게 다시 연말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3년 후에 제 나이가 끔찍하지만 서른 다섯이 됩니다. 30대 중반에서 40대에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우리 동지들과의 소중한 관계는 정말 중요한 삶의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2003년 연말의 목표는 5년 후에 다시 연말인사를 하는 것이겠지요. 40대에 접어들면서 말입니다.”

3년 후에 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해 연말에는 구속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해 연말에 뒤늦게 약속을 지켰고, 두 번째 약속인 2007년 연말을 확인했었습니다.

오늘 두 번째 약속을 지키게 됐습니다.

물론 2000년에 연락을 했던 동지들과 지금 연락을 하는 동지들이 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저와 동지들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또 다시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또 새로운 약속을 해야겠습니다.

앞으로 5년 후에 내가 40대 중반이 됐을 때 다시 연말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또 무엇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까요?

 

 

2007년 12월 23일

 

일산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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