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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무지개님(http://blog.naver.com/tensiyun)의 그림을 펐다.

 

-패러디 되긴 했지만-그랜져 광고다. 예전부터 보였는데 아직까지도 이걸로 선전되고 있다.

 

만약 내 친구가 저 지랄을 한다면,

 

나는 "넌 이제 내 친구 아냐! 개장간장국간장아!"라고 외쳐 버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광고는 어쩌면 현존 사회 이데올로기의 친숙함과 신선함에 의탁한 유목적적 표현일텐데,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의 의식을 반영한 산물일텐데, 이 광고를 보면 너무 슬프다.

 

나와 너의 한 모습.

 

'세바퀴'에서 본 건데, 우리나라 20, 30대 여성이 바라는 최고 조건은 "돈"이란다. 그 현실.

바라지는 않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

 

우리의 모습이다.

 

어제 본 '얍! 활력천국 시즌2'에서 본 남해군 남면 홍현마을의 한 할아버지의 멘트.

"지금은 돈세상인데. 나는 돈이 없어 활동을 못 한다."



아무래도 그림을 퍼온 무지개님의 멘트가 마음에 걸린다.

 

"아직도 차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한다는 조금은 유치한...ㅋㅋㅋ"

 

그리고 댓글 중에

 

"아직까지도 차가 사회적 지위와 자존심을 나타낸다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광고죠. ㅎㅎ"

 

내 생각에는 이 광고는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유치한 것도 아니다.

 

조장하다는 것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명사]도와서 자라게 . 주로 부정적인 의미쓴다.

로 나온다.

 

조장하는 광고는 공익광고이다. "흡연은 죽을 죄입니다!" 이런 식.

 

하지만 상품광고는 다르다.

상품광고는 내밀한 욕망을 집어내어 펼쳐 보여 주면서 상품을 사면 그것이 실현되리라는 기대를 심어준다. 그 내밀한 욕망이 의식하기 어려운 것일수록 광고는 더욱 참신함을 갖추게 된다. 그 욕망을 꼭 집어내어 상품과 연결시키는 작업으로 인해 욕망이 드러나기 때문에 조장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욕망은 광고를 통해 면죄부를 부여받는다. 이 부풀어진 욕망이 지갑을 열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서울우유였던가? 미스유가 나오는 광고가 있다. 두 개가 제작되었는데, 하나는 학생보다 키작은 선생이 나오고, 또 하나는 동창보다 늙어 보이는 아줌마가 나온다. 키 크고 싶다는 열망, 젊고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 이 특정한 상표의 우유로 인해 충족되라는 내용이다. 이런 두 가지의 욕망이 여기서 조장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런 욕망이 보편적인 것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긍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광고가 욕망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꼬집어 내어 상품과 연결하는 것일 뿐이며, 그 내밀한 욕망은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것이어야 한다. 몇몇만 특수하게 가진 욕망으로는 당연히 돈벌이가 안 될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한 사회의 일반적이고 내밀한 욕망을 광고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위 그랜져 광고에 이러한 확인 작업을 해 보면,

 

친구가 안부를 즉 현재 상태를 물어봤는데 다른 친구는 그랜져로 '삐빅'거린다. 현재 상태가 그랜져라는 것이다. 자신의 현재 상태는 '애가 인제 갓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아빠라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고, 아내 생일을 까먹어서 집안이 아직 저기압이고, 이것 때문에 이런 고민이 있고, 저것 때문에 저런 생각이 든다." 따위가 아니라, "삐빅"이라는 것이다. 즉 나의 상태는 이 그랜져가 말해준다는 선언이다.

 

이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소유하고 있는 재화의 양과 질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치한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목록을 적은 종이를 유대하고 하고 다니다가 자기를 소개할 때 그 종이를 척!하고 보여주면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단순히 "차가 사회적지위를 나타내주는 지표에요."를 넘어서는 일이다.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욕망-소유로서의 자기소개-은 돈많은 몇몇, 혹은 특수사회의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일반적인 욕망이다. 점심먹고 스타벅스 테이크아웃컵을 자랑삼아 들고 다니는 20, 30대의 커리어우먼층, 혹은 그런 모습을 열망하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과 관련하여 심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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