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나와 주변의 이야기

1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24
    3월 20일 술자리에서
    Nim Cruz
  2. 2009/03/12
    왜 화가 나냐고? 내 생각엔.(4)
    Nim Cruz
  3. 2009/03/11
    좌절된 욕구
    Nim Cruz
  4. 2009/03/11
    (2)
    Nim Cruz
  5. 2009/03/11
    2009/03/11
    Nim Cruz
  6. 2009/03/10
    최근 두 건의 참을성에 대한 시험
    Nim Cruz
  7. 2009/03/10
    줄사이 띄기가 어렵다(2)
    Nim Cruz
  8. 2009/03/09
    도서관 앞 의자에서(2)
    Nim Cruz
  9. 2009/03/08
    2009/03/08
    Nim Cruz

3월 20일 술자리에서

난 너도 이해해.

 

너도 이해해.

 

둘 다 이해하는데,

난 왜 눈물이 나지?

 

왜냐면 나도 이해 받고 싶으니까.

-좀 더 크면 이해 받지 않아도 상관 없어질까?

 

그리고 좀 싸우지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왜 화가 나냐고? 내 생각엔.

 

 

화는 여러 이유에서 난다고 생각 해.

 

사람은 저마다 화를 내는 데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

심지어 남이 나에게 너무 잘 해줘서 화가 나는 경우도 있잖아?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로 들어 차 있어.

외부에 대한 의식작용을 해서 마음 속에는 항상 현상이 생기지.

그 현상 때문에 마음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

마음의 색깔은 언제나 변해.

화도 그 마음의 색깔 중 하나일 거야.

 

외부 사건에 대해 우리는 화가 나기도 하고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스럽다고 느끼기도 하고, 즐겁다고 느끼기도 하도 많은 것이 의식작용을 통해

마음 속에서 생겨나게 돼.

 

왜 화가 나냐고? 그건 내 생각엔,

외부사건에 대해 우리의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야. 둥루뭉수리하지?

외부사건 그 자체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화는 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야.

 

그건 의식작용 중에 분별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일 거야.

어떤 것은 예쁘다. 어떤 것은 추하다. 이렇게 외부 사건을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에 의해,

나누지.

택배기사 때문이거나 녹평의 배송 때문이거나, 이건 네 말대로 화낼 이유가 아닐지 몰라.

하지만 그건 내 기준에선 화가 날 수 있는 외부사건이었고, 그래서 난 화가 났다는 거지.

 

그런 기준,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전혀 없지,

더러운 오물이 고여 있는 하수구를 보고도 아름답다할 수 있고, 향기롭다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꽃이 왜 아름답고, 하수구는 왜 보기 싫지?

아기들은 왜 사랑스러워야 하지? 사람이 사람에게 왜 소중하지?

 

우리에게 의식작용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분별하는 것도 그 속에 포함되고.

그래서 우리가 이미 만들어 낸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어.

잘 다스리다 보면 그런 마음이 안 들 것이라고 행하는 것이

보살행이고, 그런 기를 도로 돌리는 것이 선비의 수신이 아닐까? 간단히 말하면.

 

노자는 분별하는 마음 그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아름답다고 느끼고, 부끄럽다고 느끼고, 고마움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고 등등

이런 것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해. 사람에게는.

 

너무 길어졌으니 그 다음 얘기는 다음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좌절된 욕구

화는 나한테서 오는거야

 

일학년 동생이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했건

화를 낸 것은 그 아이의 마음에서지

 

내 파트너가 어떤 일을 하지 않건 어떻게 말을 하건

화를 낸 것은 내 마음에서지

그 상황을 내 식대로 해석하고 내가 화를 만든거야

 

같이 일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고

옆에서 도와주기를 바랬어

 

하지만 그것도 내 마음일뿐이야

 

내가 바라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

내가 하는 생각이 올바르다는 그릇된 생각

 

배려 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게 좌절되어서 서운한 것일뿐

 

그런데 왜 화를 내지

내 안에서 만들어졌다고 화를 내야 하나?

 

택배가 연락 없이 늦었어

그런데 왜 화를 내지?

 

녹평이 잘못왔어

그런데 왜 화를 내지?

 

택배가 늦으면 연락을 주십시오

다음부터는 주소를 확인하고 보내주십시오

말했어

내 생각을 전달했어

그런데도 왜 화를 내지?

 

왜 화를 냈지?

그게 화 낼 일인가?

왜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하지?

왜 그렇게 대우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그 생각은 누가 하지?

내가 만든 생각에 휘둘려 화를 내면서 왜 상대를 원망하지?

 

왜 화를 내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화가 나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모르겠대

그래서 주먹으로 때렸대

 

나도 너무 힘들었어

같이 일하는 사람하고 관계가 틀어지니까 모든 게 다 짜증이 나데

 

그런데 이 화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3/11

힘 내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최근 두 건의 참을성에 대한 시험

최근 두 사건 때문에 나의 참을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이라면 그냥 그저그렇게 아무 일도 아니어서 기억도 못 할 것이 마음 속에 맴돌아

스스로를 반성해 보게 한다.

하나는 뭐냐면, 택배를 받을 것이 있어서 배송 주소를 집이 아니라-집에 사람이 없고 난 도서관에

있으니 도서관으로 해 놓았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금요일에 받아야 할 것이 토요일에 받게 되었다.

그것까지는 괜찮다. 뭐 택배야 하루 늦어질 수도 빨라질 수도 있는 것이려니.

토요일은 경험에 의하면 12시와 1시 사이에 배송이 되는 터라 오전에 갑작스런 일이 생겼으나 허둥지둥 도서관에 달려갔다. 겨우 12시 반 정도에 도착해서 받을 수 있겠거니 하였는데, 웬걸. 오후가 다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래서 배달기사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 그 자가 하는 말이 '토요일에 공무원들이 노는 날이니 배송지가 도서관으로 되어 있는 걸 확인하고 아예 차에 싣지도 않았다.'는 거다. 참 어이가 없다. 만일 제가 그리 똑똑하게 일처리를 하는 기사라면 미리 전화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쏘아 붙이려다, 좋게 나는 공무원도 아니요, 도서관은 월요일이 휴무날이오하고 말았다. 그러니 정 오늘 필요하다면 사무실로 찾으러 가란다.

래서 사무실로 갔다. 기사양반이 오늘 안 주고 다음 주에 준다고 하는 걸 찾으러 왔다 그러니 직원이 미안하단다. 미안하다늘 말을 들었으니 된 거다.

두번째는 어제의 전화다. 원래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고 있었느데, 이번에 친구에게 정기구독을 기증하고 나는 돈이 없어 정기구독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녹색평론에 전화를 해 기증한다고 하고 입금을 했으니 그리로 책을 보내달라고 했다. 전화는 나한테 녹색평론을 부쳤는데 친구에게 한다는 기증은 어떻게 된는 건지 물어보려고 전화했단다. 그래서 나한테 벌서 붙였냐고 했더니 벌써 송달했단다. (늘 책이 왔다.)

아니 그럼 잘 모르겠으면 송달하기 전에 전화를 미리하고 책을 부치든지 해야할 것 아닌가? 그리고 또 미리 전화를 해 기증을 한다고 입금하고 나서 바로 전화를 했는데 이럴 거면 내가 왜 애써 전화를 했냐? 그래서 하는 수 없다고 이번 호는 내가 다시 부칠테니 다음 호부터는 제대로 보내달라고 했다. 알았단다.

화가나서 다시 전화를 해 쏘아 붙이려다 참았다. 내가 받은 것은 다시 착불로 보낼테니 제대로 그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하려고 했으나 참았다. 내가 그네가 잘못해서 애궂은 등기값만 날리게 되는가? 그에 또 그는 미안하다는 말 없이 입금자 이름이 같으니 헷갈렸단다.

에휴. 그나마 녹색평론이라서 참았다. 다른 잡지같았으면 그 전화상담직원은 내 화를 고스란히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 두 개 사건을 다시 떠올리면 화가 나는데, 그 와중에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 어찌 이 까짓 일로 옹졸하게 심란해지는지 부끄럽다.

 

예전 같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 길어지는 수험생활과 앞으로 좀더 남은 수험생활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많이 없어진거라 판단된다.



忍은 칼날을 내지르지 않고 마음에 묻어서 참는다는 뜻이다. 또한 忍은 잔인하다는 뜻도 있다. 많이 참으면 사람이 그 만큼 잔인해진다는 걸게다. 왜, 영화 <휴대폰>의 박용우가 그걸 잘 보여주지 않는가? 많이 참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독해진다는 것을.

 

요는 참는다는 것이 만병통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 저마다 참을 만한 것은 참고, 참지 않아야 할 것은 참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무조건 참아서는 안 된다. 참아라 참아라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줄사이 띄기가 어렵다

문단나눔이 왤케 지맘대로 되는지?

내비려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도서관 앞 의자에서

여기 바닷물을 싫어하는 사내가 있다.

 

희번덕이는 저 고기를 잡고 싶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그 짜고 시큼한 더런 물에 몸을 적시기 싫어. 그의 말이다.

 

샛강에 가 보지?

거기도 더러웁다. 짜고 시큼하지.

 

들에 산에는 고기가 없다.

그래서 고민 중.

 

그 더러운 델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원하고 산뜻하대. 헤엄치지만 고기엔 관심이 없다. 그들도 짜고 시큼해져 버렸지.

 

그래. 어쩌려고?

눈 감고 뛰어들어 볼까.

 

그는 여전히 서성이고 있지.

그럼 낚시를 해 봐. 나의 말이다.

 

여기,

바닷물을 싫어하는 사내는 여전히 서성인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밖이 환히 보이는 창 밖으로

낯이 익은 사람이 지나간다.

고등학교 때 가르치던 선생님이다. 무슨 과목이었지? 기억이 안 난다.

얼굴을 알아차린 순간,

엮겨운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앞에 놓인 밥을 내려다 보았다. 밖에 나가 인사는 생각지도 않았다.

빵집에서 빵을 사 들고 -아마- 집으로 걸어가는 그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서

나는 너무 추한 광경을 목격한듯 잠시 얼어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3/08

진보넷 블로그를 만들다.

허름해서 참 좋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