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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보잘것 없는 사회

마름이 자유인을 심판하는 것도 보잘것없는 사회의 한 단면이겠다.

 

지난주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된 일곱 교사 중 파면된 세 교사만 해임으로 바꾸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 국방부는 이명박 정권의 반동적 성격을 스스로 드러낸 불온서적 목록지정에 맞서 헌법소원을 냈던 두 법무관을 파면했다. 분단 이래, 아니 일제 강점기 이래 “나서지 마, 다쳐!”는 난세를 살아남는 요령이면서 사회귀족으로 출세하기 위한 일차적 조건이다.

 

 불의를 보더라도 눈을 질끈 감아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출셋길도 열린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설령 옳다고 믿더라도 행동에 나서지 마라. 나서 봤자 나만 손해라는 점, 이 땅의 역사는 충분히 가르쳐주었다. 이젠 젊은이들도 이를 체득한 듯 불의에는 아예 분노하지 않으며 불이익에도 더 큰 불이익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야만 분노한다.

 

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부자 감세의 외길을 갈 때, 대학생들이 한나라당의 대학등록금 반값 공약을 지키라는 당연한 요구에도 나서지 않는 첫째 이유도 “나서 봤자 나만 손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동 시기가 과거 박정희, 전두환 권위주의 독재시절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일상적 고문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지금도 나섰다간 체포, 구속되고, 파면, 해임되지만, 그래도 고문은 당하지 않는다. 이 중대한 변화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나서 봤자 나만 손해’라는 주장이 물신 지배와 함께 강력하게 관철되기 때문이리라.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다. 삼성 재벌의 떡값을 받아 챙기는 허접스런 검사일수록 검찰 안에서 삼성이 관리할 필요를 느끼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조직에서 악화들끼리는 유유상종하여 긴밀히 유착하지만 자유인은 외톨이가 되기 쉽다. 검사 이전에 인간으로서 염치가 있어서 떡값을 받지 않는 검사는 삼성이 관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리에 머물거나 그 염치 때문에도 신영철 대법관과 달리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회 변화는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소수의 사람에게 빚지는 법이며 어느 사회에서나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은 소수이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그 소수조차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사회에 맞서겠다는 진정한 자유인이 있다면 그에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이 보잘것없는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는 결코 끼어들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다음, 이 보잘것없는 사회가 인정한 그대의 능력이란 게 당연히 보잘것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기 성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이번에 파면, 해임된 교사와 법무관이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그래야 하듯.

 

반면에, 이 사회가 인정한 능력을 갖고 있기에 언제라도 이 사회에 안주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어려운 길을 택하기보다는 그 안에 안주하는 자신을 긍정하려고 이 사회에 대한 시각 또한 비판적이기보다는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이 위태로운 도정에서 진정한 자유인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조건 지운 보잘것없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 가끔 신기하게도 같은 고민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글을 볼 때가 있다.

이럴 땐 반가우면서도 조금 서운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개가 비슷하구나하는 생각도 한다.

* 마름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마름인 줄을 꿈에도 모른다는 것이다.

Das Mans...

* 내 실력증명 노정이 나를 잘근잘근 씹지 말지어다. 허나 잠시는 참아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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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內 달밤>

山內 흰 길을 돋구는

달에

白山 흙담이 옹긋웃긋하다.

 

月이

달이니

너의 달인 줄을 안다.

 

나의 달이

어느 마당에 눌어붙어 들리는 건

너의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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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면,

신문을 보면 참 갑갑하면서도,

재미가 있다.

 

특히 만평이.

 

오늘은 불온서적에 대해 헌법을 내세워 비판(?)한 법무관 2명이 파임되었다는 뉴스.

하하하......하.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 아테네의 소피스트다. 그의 말이 옳음이 오늘도 증명된다.

 

"한데 적어도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서 각 정권은 자기의 편익을 목적으로 하여서 합니다. 민주정체는 민주적인 법률을, 참주정체는 참주 체제의 법률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정치 체제들도 다 이런 식으로 법률을 제정합니다. 일단 법률 제정을 마친 다음에는 이를, 즉 자기들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 올바른 것으로 공표하고는, 이를 위한 하는 자를 범법자 및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자로서 처벌하죠. 그러니까 보십시오. 이게 바로 제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 즉 수립된 정권의 편익이 올바른 것이지요. 확실히 이 정권이 힘을 행사하기에, 바르게 추론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디에서나 올바른 것은 동일한 것으로, 즉 더 강한 자의 편익으로 귀결합니다."

 

허나 이 트라시마코스도 법률이 제정될 때가 아닌 공표된 후, 그것도 민주주의적인 법률 아래에서 최고 법인 헌법이 호도되고, 더 강한 자의 입맛에 맞게 하위 법률이 상위 법률을 업신여기는 상황, 이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의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의 공정성 모형이 동화童話인 현실.

 

고대 폴리스에서는 짐작 조차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고기가 물 밖을 모르듯이.

시민의 정치는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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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길

* 뚫린 입으로 사람은 아무 말이나 지껄일 수 있다.

 

*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말의-말이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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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예전 전공시간의 말이 떠올랐다.

문득, 예전 전공시간에 한모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논술에 시를 적어도 좋지 않겠니? 얼마나 멋지겠니? 시로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봐.'

 

이런 얘기. 그 때는 그냥 -그녀의 수업시간 대부분 내가 그러했듯이 별 생각없이 지나쳤다.

지금 그 물음이 다시 돌아 온다면 내 대답은 -그 교수의 질문에 내 대답이 거의 그랬듯이 '아니오'다.

 

평가에서 어느 한 논설문을 평가할 때 논술의 형식이 평가의 중요한 한 가지 요소이기 때문이다.

논술을 적어라면 논술을 해야 한다.

논술이 무엇인지 대략이라도 안다면 논술에 시를 적는다고 하는 말은 무식한 소리이다.

그 때의 맥락은 논술이라는 딱딱한 글에 문학적인 표현이 가능하지 않겠는냐는 소리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유 정도가 아니라 시라면 곤란하다.

 

또한 다르게 접근하면,

 

만약 그 교수가 레포트를 내어 주었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백지에 낙서를 휘갈겨서 내었다고 하자.

그 레포트는 한모 교수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학이 아니라 낙서니까 F가 되는 것인가?

특정한 레포트에는 그에 걸맞는 내용과 함께 특정한 형식이 요구된다. 그래야 평가라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문학이라는 글은 평가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레포트와 논술이다.-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는 낙서. 그것은 내가 시라고 하면 시이다.

그 교수는 이해불가하다고 하여 -그녀의 일천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에서라면- 나에게 낙제점을

줄 수 없다.

왜냐면 선이해적 기반없이 내 낙서를 해석할 수 없을테니까.

나에 대한 선이해적 기반은 평가자인 교수의 몫이니까 내가 해명할 이유 역시 없다.

 

이런 식의 전개가 되었을 때 '내가 내어주는 레포트는 이것과 달라.'라고 한다면

그녀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렇게 그 때 한방 먹였어야 했는데,

좀 아쉽다. 히-

 

잠시 예전 생각. 요샌 이런 생각이 아주 가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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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인데>

내 어깨죽지에

깃은,

움트지도 못 한 채

썩었다.

 

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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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가 나냐고? 내 생각엔.

 

 

화는 여러 이유에서 난다고 생각 해.

 

사람은 저마다 화를 내는 데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

심지어 남이 나에게 너무 잘 해줘서 화가 나는 경우도 있잖아?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로 들어 차 있어.

외부에 대한 의식작용을 해서 마음 속에는 항상 현상이 생기지.

그 현상 때문에 마음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

마음의 색깔은 언제나 변해.

화도 그 마음의 색깔 중 하나일 거야.

 

외부 사건에 대해 우리는 화가 나기도 하고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스럽다고 느끼기도 하고, 즐겁다고 느끼기도 하도 많은 것이 의식작용을 통해

마음 속에서 생겨나게 돼.

 

왜 화가 나냐고? 그건 내 생각엔,

외부사건에 대해 우리의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야. 둥루뭉수리하지?

외부사건 그 자체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화는 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야.

 

그건 의식작용 중에 분별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일 거야.

어떤 것은 예쁘다. 어떤 것은 추하다. 이렇게 외부 사건을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에 의해,

나누지.

택배기사 때문이거나 녹평의 배송 때문이거나, 이건 네 말대로 화낼 이유가 아닐지 몰라.

하지만 그건 내 기준에선 화가 날 수 있는 외부사건이었고, 그래서 난 화가 났다는 거지.

 

그런 기준,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전혀 없지,

더러운 오물이 고여 있는 하수구를 보고도 아름답다할 수 있고, 향기롭다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꽃이 왜 아름답고, 하수구는 왜 보기 싫지?

아기들은 왜 사랑스러워야 하지? 사람이 사람에게 왜 소중하지?

 

우리에게 의식작용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분별하는 것도 그 속에 포함되고.

그래서 우리가 이미 만들어 낸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어.

잘 다스리다 보면 그런 마음이 안 들 것이라고 행하는 것이

보살행이고, 그런 기를 도로 돌리는 것이 선비의 수신이 아닐까? 간단히 말하면.

 

노자는 분별하는 마음 그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아름답다고 느끼고, 부끄럽다고 느끼고, 고마움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고 등등

이런 것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해. 사람에게는.

 

너무 길어졌으니 그 다음 얘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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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욕구

화는 나한테서 오는거야

 

일학년 동생이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했건

화를 낸 것은 그 아이의 마음에서지

 

내 파트너가 어떤 일을 하지 않건 어떻게 말을 하건

화를 낸 것은 내 마음에서지

그 상황을 내 식대로 해석하고 내가 화를 만든거야

 

같이 일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고

옆에서 도와주기를 바랬어

 

하지만 그것도 내 마음일뿐이야

 

내가 바라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

내가 하는 생각이 올바르다는 그릇된 생각

 

배려 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게 좌절되어서 서운한 것일뿐

 

그런데 왜 화를 내지

내 안에서 만들어졌다고 화를 내야 하나?

 

택배가 연락 없이 늦었어

그런데 왜 화를 내지?

 

녹평이 잘못왔어

그런데 왜 화를 내지?

 

택배가 늦으면 연락을 주십시오

다음부터는 주소를 확인하고 보내주십시오

말했어

내 생각을 전달했어

그런데도 왜 화를 내지?

 

왜 화를 냈지?

그게 화 낼 일인가?

왜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하지?

왜 그렇게 대우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그 생각은 누가 하지?

내가 만든 생각에 휘둘려 화를 내면서 왜 상대를 원망하지?

 

왜 화를 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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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모르겠대

그래서 주먹으로 때렸대

 

나도 너무 힘들었어

같이 일하는 사람하고 관계가 틀어지니까 모든 게 다 짜증이 나데

 

그런데 이 화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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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힘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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