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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의 '찰칵' 역사

 

말걸기가 사진을 처음 찍은 게 언제였을까? 아마 어려서 자그마한 '똑딱이' 필름 사진기로 어쩌다가 아빠나 엄마를 졸라 찍어 보았을 것이다. 보통의 필름 카메라들이 한 컷을 담는 필름을 두 개로 쪼개 찍는 올림푸스의 사진기가 집에 있었는데 그걸 찍었던 기억이 있다. 이 사진기는 일종의 가족 범용이었다. 누구나 '내가 찍을래' 하면 찍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을 만한 집안 행사(여행 같은)가 있어야 했지만.

 

이 사진기 외에 말걸기의 부친께서는 오래 전부터 사진기를 갖고 계셨다. 이 사진기에는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왜냐고? 귀한 거니까. 아주 구닥다리이지만 상당히 품위 있는 사진기가 있었는데 그건 부모님댁 어딘가에 아직도 귀하게 모셔져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독일제 명품 라이카? 글쎄... 어쨌든 이 사진기는 구닥다리라 노출계도 없고 뭐 그런 거였다. 확실히 사진찍기에는 불편하다.

 

가족의 운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작은 이모는 독일 유학생으로 가서 의사가 되었고 의사 이모부가 생겼다. 말걸기 어려서는 서독은 무지 잘 사는 나라였고 이모-이모부는 아부지께 Canon 사진기를 선물했던 모양이다. 사진기 모델에 관심없을 때 사용하던 거라 말걸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 Canon 사진기 또한 손대기 힘든 물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 6학년이었던가, 아부지께서 저 멀리 삼성동 어디를 가자셨다. 관세청에서 밀수품들 압수한 것 파는 곳이란다. 사진기들만 유심히 살피시더니 Nikon FM2를 사셨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날은 역사적인 날이다. 몇 월 몇 일인지도 모르지만...

 

새 기종의 사진기는 기존의 Canon 사진기보다 가벼웠고 스트렙(사진기를 목에 메는 줄)도 좋아서 훨씬 뽀대나 보였다. 그리고 새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말걸기의 아부지는 집안 행사 때마다 Nikon FM2를 사용하셨다. 그럼 Canon의 운명은?

 

아부지 사진 찍을 때마다 부러워 하던 말걸기의 손에 쥐어졌다. 아무 때는 아니고 아부지가 허락하실 때에만. 그러다가 가끔씩 말걸기의 손에서 놀던 Canon 사진기는 점차 말걸기의 손때를 많이 타게 되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어렵지 않게 사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일년에 다 합쳐봐야 수 차례밖에 없는 수학여행이나 친구들과 놀러갈 때 뿐이지만. 거의 말걸기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지. 이 때는 필름값도 말걸기가 주로 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연중 몇 번의 행사와 함께 말걸기는 사진을 찍어댔다. 한 번 찍으면 그 비싼 필름 몇 통을 해치워버렸다.

 

초등 6년 때부터 SLR(일안반사식렌즈)을 찍기 시작한 말걸기는 대학생 쯤 되어서 FM2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게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이 기종은 대학 때는 사실상 말걸기의 것이 되어버렸다.

 

 

Canon 사진기는 55mm 단렌즈였고 밝기는 F/1.2로 기억한다. 말걸기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최근에야 알았다. 놀라운 명품이란 뜻이지.

 

50mm 전후의 초점거리의 렌즈를 표준렌즈라고 한다. 이는 사람의 눈과 비슷한 원근감을 갖는 렌즈란 뜻이다. 수치가 작아지면 광각렌즈라고 해서 사람의 눈보다 훨씬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렌즈다. 반대로 초점거리가 커지면 망원렌즈라고 해서 사람의 눈보다 원근감이 줄어든다. 즉, 렌즈는 기본적으로 원근감을 어느 정도 왜곡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또, 이 초점거리에 따라 화각, 즉 시야의 범위도 달라진다. 당연히 광각일수록 넓고 망원일수록 좁다.

 

Canon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단렌즈였기 때문에 가끔씩 갑갑할 때가 있었다. 말걸기는 이 정도의 시야를 사진에 담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 멀리 있는 걸 찍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Nikon FM2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50mm F/1.4 단렌즈 외에도 80-200mm 망원 줌렌즈도 있었기 때문이다. 말걸기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망원렌즈가 표준보다 훌륭한 렌즈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무척 기뻐했다.

 

이 두 개의 렌즈로 사진을 찍다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확실하게 원근감의 왜곡이라는 개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표준이든 망원이든 표현의 필요에 따라 렌즈를 달리해야 한다는 점. 따라서 광각 렌즈로도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이 때 운이 좋은 말걸기 앞에 후원자가 나타났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서 '아, 광각 렌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를 외치던 말걸기에게 누나가 렌즈 하나를 선사한 것이다. 지금도 사용하는 24-50mm 광각-표준 줌렌즈. 이 렌즈를 선택한 건 한정된 돈으로 광각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렌즈였기 때문이다.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돈 있는 사람들은 절대 이 렌즈 안 산다. 그러나, 말걸기에게는 어디냐?

 

초광각은 아니었지만 광각렌즈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크나 큰 행운이었다. 24-50, 80-200mm의 초점거리면 그냥 그렇게 사진을 찍을 수 었었으니까. 표준만 오래 찍어보았기 때문에 다양한 화각의 렌즈의 가치도 쉽게 깨칠 수 있었던 것 같다.

 

 

화각에 대한 이해를 깨치던 시절, 말걸기의 사진 생활에 또 다른 장벽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 3학년 때 학과 후배 하나가 사진을 무척 좋아해서 사진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녀석과 사진 얘기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언제는 사진을 찍는 걸 지켜보고선 현상, 인화하는 것까지 함께 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사진은 찍는 것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인화하면서 완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말걸기는 반쪽 사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말걸기만의 암실을 갖는 것.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직접 현상, 인화를 할 수 있는 암실은커녕 그 정도의 공간이 있는 집도 마련하지 못했으니까. 먼 미래에는 가능할까? 사실 암실 이전에 필름, 현상, 인화값이 부담이었다. 말걸기는 소위 '출사'라는 걸 가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저 산 꼭대기에 가서 전경을 찍어야지, 저 나무와 꽃을 찍어야지, 거리의 사람들과 풍물을 담아야지 따위를 해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 대학 1학년 때 교양 과제물을 내기 위해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것 빼고.

 

경제 사정도 그러했고, 대학 때는 언제나 그랬드시 항상 '활동'에 묻혀 있었으니 말걸기만의 사진 생활은 없었다. 단지, 과행사(신입행 환영회서부터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등)나 각종 놀러가기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주 즐거운 사진들을 많이 찍었다. 그러다 보니 인물 스냅 장르라고나 할까, 그런 사진만 찍어댔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끔씩 찍던 것도 차츰 횟수가 줄어들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는 건 꾀나 힘들다. 일행 모두가 사진을 찍기 위한 게 아니면 쫓아다니기 힘들다. 짐도 두 배나 되고. 세파에 찌들면서 사진기 들고 어딜 가는 게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뭔가 새로운 전기가 닥치면 사진을 마구 찍을 기회를 잡길 희망하고 있었다.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바로 사직이다. 사직으로 돈이 생겼다. 드럽고 치사하게 받아낸 퇴직금의 절반은 사진 장비에 쏟았다. 필름 사진기만큼의 해상도는 아니나 상당히 진보한 디지털 사진기는 필름, 현상, 인화값을 없애고 초기 투자로 상당한 기간 동안 비용 부담 없는 사진 생활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기대로 Nikon D200을 손에 쥐었다.

 

DSLR에 대해 잘 몰랐던 말걸기는 사진 장비 마련 후 또 한번의 갈등을 겪었다. 같은 초점거리의 렌즈라 해도 DSLR에서의 초점거리는 SLR의 1.5배가 되는 것이었다. 즉, 말걸기의 24-50mm은 D200에 꽂으면, FM2로 환산하자면 36-75mm라는 표준 줌렌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D200에 24-50mm를 꽂고 나서 사진을 찍는데 광각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풍경을 왕창 담아와야 할 시베리아-몽골 여행을 가기 전에 조금씩 비상금으로 모아 두었던 돈을 털어 10-20mm 초광각 줌렌즈를 사고야 말았다. 지금으로써는 후회는 없고 오히려 안 샀으면 후회가 컸을 거라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괴로왔다.

 

또 하나, DSLR로 전향하면서 현상, 인화에 대한 갈망도 새롭게 바뀌었다. 디지털 사진은 보정이 현상과 인화의 상당 부분을 대체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필카와 디카는 각각의 장단점을 갖지만 말걸기의 사정으로 보자면 디카가 훨씬 나은 점이 많다.

 

 

D200을 선택한 것은 Nikon의 제품이기 때문이었다. FM2에서 사용하던 렌즈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세세하게는 몰랐지만 운이 좋은 선택이 되었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새 기종을 계기로 생겨난 사진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이 동호회에서 다양한 장르의 사진을 접하고 있고 또한 찍어 보기도 한다. 혼자서 20년 넘게 하나씩 깨우쳤던 것보다 빠르게 사진을 공부하게 된다. 이런 나날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쉼'의 세월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앞날의 경제적 어려움을 '무시'하고 선택한 DSLR의 생활, 후회는 없고 욕망만 커지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이 욕망을 다 채울 수 있진 않겠지? 그림 그리는 꿈을 버린 말걸기에게 사진은 대체품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계가 되길 희망한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삶의 또 다른 부담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