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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불가' 신화

 

해고 위협

 

민주노동당에는 25인승 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운전·관리하는 당직자도 있다. 최부장이라는 분인데 상근자들은 대체로 '최선배님'하고 부른다.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꼭 나이 대접해 준다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그냥 아저씨다. 그래도 삶의 궤적에서나 인격에서 '선배다움'이 있어 그렇게들 부른다. '선배'라는 소리 싫어하는 말걸기조차도 그런 호칭이 어렵지 않다.

 

악랄한 기업이 해대는 해고와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은 '최선배님'에게 해고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심한 차출

 

지금 민주노동당 상근자들이 받는 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돈을 활동비랍시고 받으면서 당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돈 얼마 못받는 것 알고 일을 시작했고, '생활 급여'란 기대하는 게 더 괴롭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한심한 차출'은 상근일을 더 짜증스럽게 했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업무가 아님에도 불려가서 일을 해야 하는 뭐 그런 상황. 각종 선전전 및 집회가 그러했다. 각종 선전전이나 집회가 '업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왜 업무인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도 않았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부과된 업무도 결코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운전이었다. 말걸기는 다른 두 세명의 상근자에 비하면 아주 많은 횟수는 아니긴 했지만 꽤 여러 번 운전을 했다. 민주노동당 1호차로 불리는 당대표용 승용차 운전은 정말 왕짜증이었다. 피곤함도 두 배였다. 당대표를 뒷자석에 앉혀 놓았으니 일단 부담부터가 크다. 게다가 당시의 당대표였던 권영감은 운전사가 운전하는 게 맘에 안들면 시큰둥 하거나 짜증을 냈다. 아예 눈감고 앉아 있기도 했고. 진보정당의 대표가 승용차 없으면 가지도 못하는 곳에 가는 것도 아니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는 건 겉멋 들어서라고 생각했지만(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 나이든 노인네가 여기저기 다니려면 힘든 일이라 생각하고 운전했었다. 근데 요즘 생각해 보면, 다시 대선후보 되려는 양반이니 힘이 모자랐던 건 아닌 게야...

 

1호차만큼 부담되지는 않더라도 9인승 승합차 운전도 꽤 피곤한 일이었다. 중고차를 사온 건데 사무국(현 총무실)이 엉망으로 관리해서 창원에서 13시간을 걸려서 혼자서 서울까지 끌고 온 적도 있었다. 차량정비소에서 차를 찾아올 때 차량 관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물어다가, 말걸기 업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리 일지까지 만들어서 사무국에 건네줬었다. 그래도 차량 관리 안해서 금방 망가져 버렸다.

 

차량이 금방 망가지는 건 당시 사무국장의 게으름 탓도 크지만, 당이 차를 두 대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이 많음에도 이를 제대로 할 사람을 두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그러다가 2종 보통 면허로는 운전하기 어려운 버스가 등장하자 별도의 운전·관리하는 당직자를 두었다. '최선배님'은 이 전문 업무를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두번째 상근자이다.

 

조직은 커질수록 업무 영역이 분화되고 역할을 제대로 주어야 효율도 커지고 전문성도 높아진다. 말걸기는 운전하지 않게 되어서 좋아했었다. 일 부리는 자 입장에서는 엉뚱한 일 안해도 되게 되었으니 '네 일이나 잘 해라!'라고 큰 소리 칠 수 있지 않은가.

 

 

책임과 권한

 

운동권들 대부분은 '책임과 권한'이라는 말을 알지 못한다. 그게 사전에 있는 한국말인 것만 안다. 그리고, 선출과 임명에 따른 책무와 임용에 따른 책무도 구분을 하지 못한다. 운동의 오랜 역사는 이런 것들을 구분하여 조직을 운영하기보다는, 한쪽 권한자자 '수단방법 불문 관철' 시도와 이에 저항하는 상대편의 '악악대고 배째기'가 뒤엉켜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왔다. 이 방식에서 가장 잘 인용된 말은 '활동가로서의 자세'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는 위임 받은 권력(소위 지도부 혹은 집행부라 불림)이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라고 사무국을 둔다. 그게 보통 중앙단위에 사람들 몰아 넣고 기획이니 정책이니 조직이니 홍보니 하는 업무를 하게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운동조직에서는 위임에 참여한 조직원(당원)이 위임 받은 자들(당지도부-사무총장 따위)의 업무 지시를 받는 상근자들이 되다 보니 이상한 모양새들이 많이 연출된다.

 

상근자들도 '정치인'이다 보니 그러기도 할텐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개길 때는 '나도 활동가(정치하는 사람)'이고, 하기 싫은 업무를 지시 받을 때는 '나도 노동자'라고 한다. 사실 둘 다 맞는 얘기기는 하지만 영악한 태도인 것 확실하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이해 관계에 어울리는 행동이기도 하고.

 

이런 태도는 '책임과 권한'을 이해시키고, 책임 있는 만큼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많이 질 수 있는 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일임하는, '합리적인 관료 체제'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보다 더 큰 원인은 당지도부가 '책임'과 '권한'을 일치시키는 노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활동가로서의 자세'만을 강조하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로 상근자의 업무를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출퇴근시간 강조(일찍 출근 야근 장려), 데모 열심히 나가기 등등.

 

'그대의 업무는 XXX이다. 그 업무 수행에 있어서 그대의 책임은 XXX까지이다. 그래서 그대의 권한은 XXX까지이다.' 이런 규범(혹은 지침)은 조직의 운영에 있어서,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는 필수이다. 당은 정치조직이다보니 권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두고 여럿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므로, 행정의 최종 권한자(이자 책임자)가 권한을 조정하는 역할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사무총장.

 

그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운동권들 중에는 이에 관심 있는 자들이 없으므로 민주노동당 등 운동단체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①상근자들에 대해 고유 업무에 따른 평가가 불가능하고, ②따라서 효율적인 업무 재설계에 따르지 않은 인사발령이 이루어지며, ③또한 인사권자(규범적이든 실질적이든)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채용과 해고가 이루어진다. 이는 운동권 조직의 일상이다.

 

 

민주노동당의 '해고 불가' 신화의 무기력함

 

민주노동당의 해고는 이제까지, '더럽고 치사해서 나간다'는 맘을 먹을 때까지 갈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말걸기는 당게시판이나 의결기관의 구성원들의 발언, 뒷골목 술집에서 '원칙'을 부르짖는 당원들의 입에서 등장하는 '해고 불가'의 신화는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우수사랑은 보육-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했음에도 그가 2004년 총선 직후 공채된 정책연구원의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무총국 복귀를 종용당했었다. 그리고 그가 사무총국 복귀를 거절하자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은 정책위 발령도 내 줄 수 없다며, 사실 상 해고 통보를 했다. 결국 '권고 사직'이 되었다. 의정지원단의 C실장도 정책위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인사권자의 의지에 저항해 보았지만, 대기발령이라는 처지로 얼마 버티지 못했다. 또한 마찬가지로 사직하였다.

 

다른 예는 영상담당 상근자 해고 건이다. 정책위에서 자신의 정파와 같은 입장일 수 없는 오래된 상근자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금전적 이해가 걸린 해고였다. 영상담당 상근자가 있는 한, 당의 입장에서는 '영상물 제작 발주'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운동권 영상 제작업소에 영상물 제작 발주를 하여 당의 자원을 갈라먹기 위해 영상담당 상근자를 해고했다. 물론, 그 영상 제작업소란 현지도부의 색깔 정파의 업소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아직 감은 오지 않지만 '최선배님'의 해고도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듯하다. 영상담당 상근자 해고 때와 마찬가지로 '최선배님'에 대한 좋지 못한 평가를 들먹이며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떠나게 만들고 있다. '일도 못하는 사람', '일 열심히 안하고 노는 사람' 등등.

 

민주노동당의 해고는 인사권자(당규로는 당대표이지만 사실상은 사무총장. 일부는 정책위의장에게 있다고 봐야 함)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행해진다. 한심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어찌 해고를 하느냐!'며 원칙론 들이대며 항의하는 사람들에게도 갑갑함을 느낀다.

 

민주'노동'당이니까 해고하면 안된다는 원칙만 자꾸 들이대 봐야 소용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물론 치사한 방식으로 사람 쫓아내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항의하고 결과적으로 못하게 막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상처받은 상근자들은 떠난다. 왜? 해고 위협을 딛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해도 자신의 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해고의 근거가 없다는 건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한다는 근거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전히 쫓아내려 했던 인사권자, 그리고 이를 열심히 도왔던 동료 상근자들로부터 린치는 계속당할 테니까.

 

 

'해고 불가' 원칙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민주노동당은 상근자들에게, 상근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명하게 책임과 권한을 제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즉, 합리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해고까지 얘기할 것도 없이 모든 인사 이동이 별 근거가 없다. 그냥 그래서 쟤는 여기다 심고, 쟤는 저기다 심고,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는 얘들은 저편에다 몰아 넣고... 뭐 그런식이다. 현 조직실장은, 당대표 선거 때 조승수 도왔다는 이유로 쫓아내놓고서는 조직이 잘 안 굴러가니 다시 데려왔다. 사람을 내쫓든 데려오든, 사람 피땀 빨아먹으려면 능력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안한다.

 

말걸기 생각에는 당지도부(그리고 지도부격에 있는 운동권 인사들 대부분)는 일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일을 할 줄 알아야 일이 되는 방식으로 임무를 주고 권한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평가도 할 수 있다. 못한다고 야단치거나 한직으로 쫓아내거나 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할 줄도 알 것이다. 모든 수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천덕꾸러기는 쫓아내기도 해야 할 것이다. 해고 말이다.

 

2004년 총선 후부터 민주노동당은 제대로 된 당료조직을 중앙에 만들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게 뭔지 모르는 정도를 넘어 망치는 조직문화를 가진 자들이 당권을 장악해서 당료조직 구성은 실패했다.

 

아무리 운동 조직이라며 '해고 불가' 원칙만을 강조하는 데에 그칠 일이 아니다. 이보다는 일에 있어서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책임과 권한이 뚜렷해야 당직 수행에 대한 비판과 방어, 임용된 자들(당 전체로 보면 상당한 권한을 가진 자들이다!)의 감시가 가능해지며, 이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할 수 있다. 이게 당의 능력을 키우는 방편이다.

 

 

'최선배님' 해고에 맞선 움직임을 지지한다. 무엇보다 이런 일에서는 당사자인 '최선배님'과 형수님이 상처를 덜 받는 게 중요하다. 두번째로 당의 인사 문화에 대한 뼈아쁜 통찰이 있길 바란다.

 

 

 

※ 말걸기가 예~전에 사무총장한테 '책임과 권한'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못 알아 들어서 좌절했던 적이 있다. OTL. 누구였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