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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깨달은 바

 

최근, 아주 최근 말걸기가 깨달은 바가 두 가지가 있는데 뭐 별 건 아니고...

 

(1) 손님을 집에서 치르기는 힘들다.

(2) 말걸기의 피의 반은 경상도 피다.

 

 

 

말걸기의 작은 이모는 파독 간호사였다. 공부를 잘 해서 독일에서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인 의사를 만나서 셋을 낳고 여전히 독일에서 의사로 살고 있다.

 

그 셋 중 막내 동생이 얼마 전 한국엘 방문했다. 다 늙으신 말걸기의 엄니가 멀리서 온 조카 데리고 이 동제 저 동네 죄다 구경 시켜주기는 힘들지. 말걸기가 경주와 서울을 보여주기로 하고... 5박 6일 간 손님을 치렀다.

 

입국 하는 날 공항 가서 집으로 데려와서 저녁 차려 주는 것부터 해서 2박 3일의 경주 나들이, 한강 자전거 투어, 그리고 제주 가는 비행기 태우기까지...

 

5박 6일 동안 대화를 '콩글리쉬'로 하니, 이거 원... 갑갑함도 한 바가지다. 그래도 파란꼬리는 '콩글리쉬'로 아사달-아사녀 얘기와 서동요 얘기도 하더라... 대단!

 

어쨌거나 깨닫게 되었는데 말걸기와 파란꼬리는 손님을 집에 두고 대접해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냥 잠깐 손님 와서 밥 한끼 대접하고 놀다가 집에 보낸 거야 몇 번 있었지만 손님을 제대로 치른 적은 없었던 것.

 

6일 간 돌아다니느라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진을 뺐다. 그게 손님 치르는 것인가 보다. 손님 보낸 다음 날은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다. 여전히 힘들다. 입안에 상처가 생겼고 낫질 않는다.

 

 

 

두 번째, 말걸기의 유전적(?) 경향을 발견한 것이다. 사촌동생과 6일 지내더니 파란꼬리가 다음의 글을 어느 카페에 남겼다.

 

"그는 매우 친절했습니다. 어디 가면 문을 열어주고, 제가 짐을 들면 들어주고, 그냥 편안하게 저를 배려해 줬습니다...... 그는 계속 저를 배려하고 있었고, 그것은 몸에 밴 행동이었습니다. 말걸기와 꼬리는 말걸기 생후 ㅇㅇ년 만에 말걸기의 피에도 경상도 남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파란꼬리는 그런 배려가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남자가 여자한테 꼭 그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고, 누군가 자기를 배려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 자체가 좋았던 모양이다.

 

말걸기는 파란꼬리와 함께 있을 때 문을 열어 준다거나 짐을 대신 들어준다거나 하지 않는다. 앞에 가는 사람이 문 먼저 열고 들어가는 거고 자기 짐은 자기가 드는 거니까. 이러는 게 꼭 '경상도' 어쩌구 할 만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배려가 몸에 밴 것'은 확실히 아닌 듯.

 

결정적으로 버스에 타면 말걸기가 먼저 앉으니까...(파란꼬리가 이 얘기는 꼭 쓰라고 하네...ㅋㅋ)

 

파란꼬리랑 함께 있다보면 파란꼬리가 말걸기를 배려하는 게 더 많다. 이러고 살다가 말걸기와 다른 태도를 가진 손님과 6일을 보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말걸기는 그렇게 배려하고 친절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왜냐면 게으르니까), 파란꼬리가 살짝 맛을 본 이상 고민이 된다. 약간의 위기 의식이랄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