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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는 이유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권유' 때문이어서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다 블로그에 들락거리며 지내 보니 블로거들이 서로의 글을 은근히 많이 본다는 것을 알았다. 말걸기가 하고픈 말을 전하게 되는 효과도 있고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지극히 사적인 글에서부터 무척 선동적인 글까지 다양하게 공존하는 면도 재밌다.

 

(다른 블로그는 사용해 보지 않아서 제대로 비교가 될까마는) 진보블로그에서는 블로거가 맘만 먹으면 대부분의 글을 읽을 수도 있는 규모라서 조금만 부지런하면 이미지로 형상화가 될 만큼 익숙해지는 블로거들을 많이 알게 된다. 가끔은 한 다리 건너면 '신원'도 파악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쟁점이나 갈등도 만들어진다. 독특한 동네라서 정도 간다.

 

반면, 블로거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밀도가 높아, 쉽게 말하자면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생판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동네라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톤으로 마구 질러도 되겠지만 진보블로그에서 이는 이려운 일이다. 이런 부담은 종종 글쓰기의 어려움이나 동기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갈등이 다른 블로거에 대한 '기대감'이나 '신뢰' 때문에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말걸기가 게을러서 지나쳐 버린 이야깃거리가 많이 있지만 글을 쓰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주변의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만 여기서는 여자가 아니라서 침묵하기도 한다. 경험하지 못한 바에 대해서 나서는 것도 별로다. 말걸기가 느낌이나 감정,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한다고 확신할 수 없어서 조용히 있다.

 

이와 함께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단히 정의롭고 평등의식에 가득한 '깬 사람'인 척 보이는 게 싫다. 사실은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 왜냐면 말걸기도 어떤 종류이건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갈등이 싫어서이다. 진보블로그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좌파를 가장한, 평등을 가장한 끔찍한 생각을 담은 것들이 가끔 있다. 말걸기가 보기에는 어처구니 없는 '꼴통의 소리'이지만 그것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면 시끄러워질 것 같아 침묵한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비겁하다 할 지 모르나 예전과는 달리 집중력을 가지고 끝까지 논쟁할 수 있는 정력이 쇠락해서 책임질 수 없는 문제 제기, 혹은 넋두리가 될 게 뻔해 초장에 침묵한다. 또 다른 면에서는 전혀 필요치 않은 논쟁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짜증스러워서 주변 사람에게만 투덜거리고 말기도 한다. 이를 테면 침묵하면 안된다느니, 소통을 해야 옳다느니 하면서 윤리적 태도를 보이는 글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이 경우가 가장 글을 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