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내가 배후에다 프락치냐
by kyoko | 2008/06/11 03:53
방금 집회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우울하고 슬프고 쪽팔린다. 걍 블로그에 아무 얘기도 안 할까 하다가 들어오니 뭔가 엄청 어처구니없는 설이 여기저기 퍼져있길래 해명은 해야겠어서 자폭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 9시쯤 해서 광화문에 갔다. 여전히 동네 주민님들과 같이 가서 일단 명박산성을 보았는데... 진짜 화나더라.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 대도 저 놈은 눈 감고 귀막고 있다가 청와대 앞뜰에서 새소리 듣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고 있겠지. 확실히 오늘 사람은 정말 엄청나게 모였다. 하지만 그 인원들은 모두 경찰이 봉쇄한 라인 안에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박산성은 너무 높고, 행진의 물결을 따라간 안국동도 역시 컨테이너로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그냥 촛불을 들고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5월 말~6월 1일까지 보여주던 시민들의 재기발랄한 움직임.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서 어느 순간 똘똘 뭉치는 그런 모습은 대책위의 확성기 소리에 묻혀졌다. 우리는 그냥 명박산성으로 막힌 즉석 광장에서 무력할 뿐이었고, 아무리 공연 등을 한다고 해도 이건 그냥 관광버스 같은, 그들만의 축제에 불과할 뿐이었다. 주변은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 노는 거 좋아한다. 술도 무지 좋아하는 거 여기 오시는 사람들 다 아실 거다. 하지만 촛불시위에 왜 나오는 건가. 우리 놀러 나오는 거 아니다. 물론 많은 인원이 모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와서 경찰과 이명박이 마련해준 장소 안에서 술 먹고 도로에서 노숙하고 앞에서 어떤 얘기를 하든 적당히 흘려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나왔으니 됐어 얘들이 알아서 기겠지. 이런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는 배후가 없다는 거다. 진짜 없어서 문제다. 배후가 없어서 구호 하나 맞춰서 소리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6월 1일 새벽, 물대포를 맞으며 버틸 땐 우린 그렇지 않았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도 비폭력을 외쳤고, 쫓아오는 전경의 방패에 찍히면서도 눈물흘리지 않았다. 시위대는 당당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집회에서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전략을 썼다. 그러자 시민들은 두 종류로 갈라졌다. 한 편은 마치 소풍을 온 분위기이고, 앞의 사람들은 12시가 지나고 한시가 지나면 경찰의 무대응에 흥분해서 차를 흔든다. 그러다 결국 8일날 어디선가 들고 온 쇠파이프와 소화기를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거 실수 맞다. 그러면 그때 광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얼 했나? 그들을 말리기보다는 트럭에 설치된 오마이티비 화면으로 먼 나라 중계를 보듯이 소화기 가루가 난무하는 현장을 감상할 뿐이었다. 이게 시위인가?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돌출하는 사람들은 제지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새 집회는 모여서 자유발언 좀 하고, 도로를 점거하며 가두 한번 하고 적당히 모여앉아 있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는 그런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런 집회를 특별히 제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시위대가 도발에 넘어가자 그때서야 기다렸다는 듯 소화기를 뿌리고, 정당한 것처럼 몇 명을 연행했다. 나는 집에 와서야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앞에서 한 시간 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과 분노로 괴로워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 가장 많은 인파가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인원이 많으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점심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무너졌다. 광화문 네거리엔 촛불집회에 나가고, 나가진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차단하듯 거대한 컨테이너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경 6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 벽을 보며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직접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 벽 앞에서 마치 관광이라도 하러 온 양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은 밧줄이 쳐 진 채 마치 폴리스 라인처럼 비폭력이라고 씌여 있는 라인이 있고, 그 안에 예비군이 있었다. 나는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우리가 컨테이너 벽에 어떤 폭력을 가하길래? 우리는 오늘도, 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도 그저 준비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놀다가 가야 하는 건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걸어가는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앞에 잔뜩 쌓여있는 커다란 스티로폼이 보였다. 가로 1미터 50, 세로 1미터쯤 되고 높이는 50센티쯤 될 것 같았다. 굉장히 많았는데 아마 컨테이너 안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수량이었다. 안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느라 빼 둔 듯 했다. 그걸 본 순간 생각했다. 그래. 이걸 명박산성 앞에 쌓으면 어떨까.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자는 거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 못 올라가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올라갈 수는 있지만 비폭력이어야 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지 않는 거라고. 너희가 치졸하고 야비하게 담장을 높게 쌓았지만 우리도 쌓을 수 있다고. 그냥 그거라도 보여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참 조낸 의미없고 유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옆 라인엔 전경 버스로 막아 두어서 오히려 전경 버스 쪽으로 쌓으면 돌파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얼마 전 폭력시위대 운운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바로 그 다음 무리수를 두어 전경과 마찰을 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고 광화문 정면에 쌓는 게 더 잘 보이잖아.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다. 넘어가고 아니고를 떠나 너희가 이렇게 막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궁리해서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명박이의 잔머리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윗층 주민님과 함께 일민미술관 앞에 쌓여 있는 스티로폼을 내렸다. 너무 커서 의외로 무거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낑낑거리며 명박산성까지 들고 갔다. 좀비님까지 붙어서 셋이 나르다가 어떤 남자분이 도와주셔서 나는 앞의 길을 텄다. 그리고 예비군 라인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뒤 한시간 이상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일단 이런 걸 어디서 준비했냐는 배후(아놔 ㅅㅂ) 얘기부터 인화물질이라 위험하다는 얘기 등등. 그러면서 사다리 갖고 오면 올라가도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죽어라고 반박했다. 넘어가자는 게 아닌 위에 얘기한 것과 같은 생각이라고. 주변은 예비군님들이 스크럼 짜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제지하면 될 거 아니냐고. 예비군들은 왜 지키고 있는 거냐고 비폭력의 범주 내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도와주고 시민을 지켜 주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하는데 나중엔 십라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해내서 이런 도돌이표 같은 얘기를 나눠야 하지 싶을 정도였다. 스티로폼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조중동에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궁금해졌다. 명백히 시민에 대한 폭력임에 분명한 명박산성 앞에 그보다 높은 걸 쌓을 수 있음에도 넘어가진 않겠다는 게 과연 폭력인가. 톡 까놓고 얘기하자. 조중동 눈치보면서 지금 뭐하자는 건가. 우리는 야간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 그건 그만큼 우리에게 나와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인원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명박산성이나 구경하다 가자고? 그게 안타까워서 비폭력의 범주에서 의견을 낸 건데 그냥 이렇게만 있어도 충분히 압력이 된다고? 그 뒤 확성기에서 주최측은 사실상 이명박정권은 끝났으며 우리가 승리했다고 울부짖는다. 지금 장난하냐? 끝없이 설득에 설득을 계속했지만 많이 피곤해져서 그냥 이꼴저꼴 다 보기 싫어지는 상황에 그럼 뒤로 좀 밀어서 자유발언대를 만들면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것마저 감지덕지한 마음에 반 포기상태로 찬성했고 다시 일민미술관 앞으로 가서 스티로폼을 두 개째 날랐다. 역시 도와주는 사람은 일행들 뿐이었다. 두 개째를 쌓자 다시 논쟁이 붙었고, 하나 더 날라와서 세 개로 자유발언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나긴 자유발언 끝에 다 같이 쌓기로 결정이 났다. 혹시나 올라간다는 오해를 살까봐 명박산성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래 내 계획은 컨테이너가 6미터고 스티로폼 높이가 50센티 정도니 아래부터 12, 11, 10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층계처럼 쌓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분으로 안전하게 방사선 형태로 옆을 더 쌓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어느샌가 스티로폼 쌓기를 주도하고 있는 붉은 조끼의 여자에게 얘기를 해도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리고 끝없이 스티로폼은 올라갔고 붉은 조끼의 여자는 그 위에 올라가 아래 있는 시민들을 내려보았다. 확성기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높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저런 게 아니었다. 쌓고 나서 내려와 모두에게 얘기했으면 싶었는데. 우리는 못 넘어가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떤 상황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저 병신들은 컨테이너로 막을 생각은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스티로폼으로 더 높게 쌓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안 했던 거라고. 저새끼들은 어릴 때 레고 한번 안 해본 모양이라고. 상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이 결국에는 이기는 거라고. 그러니 패배감 같은 거 절대 갖지 말자고.
하지만 붉은 조끼의 여자는 내려올 줄 몰랐고 주변으로 카메라 플래쉬는 계속 터졌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자 참으로 많은 얘기가 있다. 스티로폼을 준비한 게 프락치의 소행이다. 일부러 불을 지르려고 하는 거다. 모든 게 음모다. 그리고 그 위에는 비명과도 같은 비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어도 그건 우리가 아니라고. 경찰이라고. 프락치라고. 하지만, 비폭력이란 말이 가장 힘을 발휘했을 때는 우리 위에 무자비한 폭력이 떨어지던 6월 1일 새벽 바로 그 때였다고 나는 믿는다. 부당한 폭력에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게 우리의 힘이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엔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시민이 무언가를 시도하려고만 해도 비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싹을 짓밟아 버리는 게 아닌가. 비폭력이라 외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타인의 시도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건 폭력 아닌가. 모든 걸 프락치 때문이고 경찰 때문이고 명박이 때문이라고 외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나. 하지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일수도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감싸안고 말리며 그럴때일수록 더욱 더 목소리높여 구호라도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오늘 비폭력으로 포장한 폭력을 본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나 우울하다. 지금 말들이 많은데 이 글 때문에 쿨게이 쏘쿨병 사람들한테 졸라 까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곳곳에서 프락치가 주동한 거다 어쩌고 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더라. 에라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까인다고 죽냐. 그렇다면 이명박은 지금쯤 원자단위로 작살났게.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난 다음에도 나갈 거다. 진짜 많이 실망했고 기분 더럽고 너무 화나고 완전 삐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또 보자. 이렇게는 안 끝날 거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끝>
by kyoko | 2008/06/11 03:53
방금 집회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우울하고 슬프고 쪽팔린다. 걍 블로그에 아무 얘기도 안 할까 하다가 들어오니 뭔가 엄청 어처구니없는 설이 여기저기 퍼져있길래 해명은 해야겠어서 자폭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 9시쯤 해서 광화문에 갔다. 여전히 동네 주민님들과 같이 가서 일단 명박산성을 보았는데... 진짜 화나더라.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떠들어 대도 저 놈은 눈 감고 귀막고 있다가 청와대 앞뜰에서 새소리 듣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고 있겠지. 확실히 오늘 사람은 정말 엄청나게 모였다. 하지만 그 인원들은 모두 경찰이 봉쇄한 라인 안에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박산성은 너무 높고, 행진의 물결을 따라간 안국동도 역시 컨테이너로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그냥 촛불을 들고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5월 말~6월 1일까지 보여주던 시민들의 재기발랄한 움직임.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서 어느 순간 똘똘 뭉치는 그런 모습은 대책위의 확성기 소리에 묻혀졌다. 우리는 그냥 명박산성으로 막힌 즉석 광장에서 무력할 뿐이었고, 아무리 공연 등을 한다고 해도 이건 그냥 관광버스 같은, 그들만의 축제에 불과할 뿐이었다. 주변은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 노는 거 좋아한다. 술도 무지 좋아하는 거 여기 오시는 사람들 다 아실 거다. 하지만 촛불시위에 왜 나오는 건가. 우리 놀러 나오는 거 아니다. 물론 많은 인원이 모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와서 경찰과 이명박이 마련해준 장소 안에서 술 먹고 도로에서 노숙하고 앞에서 어떤 얘기를 하든 적당히 흘려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나왔으니 됐어 얘들이 알아서 기겠지. 이런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는 배후가 없다는 거다. 진짜 없어서 문제다. 배후가 없어서 구호 하나 맞춰서 소리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6월 1일 새벽, 물대포를 맞으며 버틸 땐 우린 그렇지 않았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도 비폭력을 외쳤고, 쫓아오는 전경의 방패에 찍히면서도 눈물흘리지 않았다. 시위대는 당당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집회에서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전략을 썼다. 그러자 시민들은 두 종류로 갈라졌다. 한 편은 마치 소풍을 온 분위기이고, 앞의 사람들은 12시가 지나고 한시가 지나면 경찰의 무대응에 흥분해서 차를 흔든다. 그러다 결국 8일날 어디선가 들고 온 쇠파이프와 소화기를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거 실수 맞다. 그러면 그때 광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얼 했나? 그들을 말리기보다는 트럭에 설치된 오마이티비 화면으로 먼 나라 중계를 보듯이 소화기 가루가 난무하는 현장을 감상할 뿐이었다. 이게 시위인가?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돌출하는 사람들은 제지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새 집회는 모여서 자유발언 좀 하고, 도로를 점거하며 가두 한번 하고 적당히 모여앉아 있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는 그런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런 집회를 특별히 제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시위대가 도발에 넘어가자 그때서야 기다렸다는 듯 소화기를 뿌리고, 정당한 것처럼 몇 명을 연행했다. 나는 집에 와서야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앞에서 한 시간 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움과 분노로 괴로워했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 가장 많은 인파가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인원이 많으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점심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무너졌다. 광화문 네거리엔 촛불집회에 나가고, 나가진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차단하듯 거대한 컨테이너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경 6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 벽을 보며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직접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 벽 앞에서 마치 관광이라도 하러 온 양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은 밧줄이 쳐 진 채 마치 폴리스 라인처럼 비폭력이라고 씌여 있는 라인이 있고, 그 안에 예비군이 있었다. 나는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우리가 컨테이너 벽에 어떤 폭력을 가하길래? 우리는 오늘도, 이 많은 인원이 모여서도 그저 준비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놀다가 가야 하는 건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걸어가는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앞에 잔뜩 쌓여있는 커다란 스티로폼이 보였다. 가로 1미터 50, 세로 1미터쯤 되고 높이는 50센티쯤 될 것 같았다. 굉장히 많았는데 아마 컨테이너 안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수량이었다. 안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느라 빼 둔 듯 했다. 그걸 본 순간 생각했다. 그래. 이걸 명박산성 앞에 쌓으면 어떨까.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자는 거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 못 올라가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올라갈 수는 있지만 비폭력이어야 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지 않는 거라고. 너희가 치졸하고 야비하게 담장을 높게 쌓았지만 우리도 쌓을 수 있다고. 그냥 그거라도 보여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참 조낸 의미없고 유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옆 라인엔 전경 버스로 막아 두어서 오히려 전경 버스 쪽으로 쌓으면 돌파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얼마 전 폭력시위대 운운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바로 그 다음 무리수를 두어 전경과 마찰을 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고 광화문 정면에 쌓는 게 더 잘 보이잖아.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다. 넘어가고 아니고를 떠나 너희가 이렇게 막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궁리해서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명박이의 잔머리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윗층 주민님과 함께 일민미술관 앞에 쌓여 있는 스티로폼을 내렸다. 너무 커서 의외로 무거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낑낑거리며 명박산성까지 들고 갔다. 좀비님까지 붙어서 셋이 나르다가 어떤 남자분이 도와주셔서 나는 앞의 길을 텄다. 그리고 예비군 라인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뒤 한시간 이상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일단 이런 걸 어디서 준비했냐는 배후(아놔 ㅅㅂ) 얘기부터 인화물질이라 위험하다는 얘기 등등. 그러면서 사다리 갖고 오면 올라가도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죽어라고 반박했다. 넘어가자는 게 아닌 위에 얘기한 것과 같은 생각이라고. 주변은 예비군님들이 스크럼 짜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제지하면 될 거 아니냐고. 예비군들은 왜 지키고 있는 거냐고 비폭력의 범주 내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도와주고 시민을 지켜 주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하는데 나중엔 십라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해내서 이런 도돌이표 같은 얘기를 나눠야 하지 싶을 정도였다. 스티로폼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조중동에 빌미를 제공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궁금해졌다. 명백히 시민에 대한 폭력임에 분명한 명박산성 앞에 그보다 높은 걸 쌓을 수 있음에도 넘어가진 않겠다는 게 과연 폭력인가. 톡 까놓고 얘기하자. 조중동 눈치보면서 지금 뭐하자는 건가. 우리는 야간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 그건 그만큼 우리에게 나와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인원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명박산성이나 구경하다 가자고? 그게 안타까워서 비폭력의 범주에서 의견을 낸 건데 그냥 이렇게만 있어도 충분히 압력이 된다고? 그 뒤 확성기에서 주최측은 사실상 이명박정권은 끝났으며 우리가 승리했다고 울부짖는다. 지금 장난하냐? 끝없이 설득에 설득을 계속했지만 많이 피곤해져서 그냥 이꼴저꼴 다 보기 싫어지는 상황에 그럼 뒤로 좀 밀어서 자유발언대를 만들면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것마저 감지덕지한 마음에 반 포기상태로 찬성했고 다시 일민미술관 앞으로 가서 스티로폼을 두 개째 날랐다. 역시 도와주는 사람은 일행들 뿐이었다. 두 개째를 쌓자 다시 논쟁이 붙었고, 하나 더 날라와서 세 개로 자유발언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나긴 자유발언 끝에 다 같이 쌓기로 결정이 났다. 혹시나 올라간다는 오해를 살까봐 명박산성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래 내 계획은 컨테이너가 6미터고 스티로폼 높이가 50센티 정도니 아래부터 12, 11, 10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층계처럼 쌓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분으로 안전하게 방사선 형태로 옆을 더 쌓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어느샌가 스티로폼 쌓기를 주도하고 있는 붉은 조끼의 여자에게 얘기를 해도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리고 끝없이 스티로폼은 올라갔고 붉은 조끼의 여자는 그 위에 올라가 아래 있는 시민들을 내려보았다. 확성기로 뭐라고 말을 했지만 높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저런 게 아니었다. 쌓고 나서 내려와 모두에게 얘기했으면 싶었는데. 우리는 못 넘어가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떤 상황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저 병신들은 컨테이너로 막을 생각은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스티로폼으로 더 높게 쌓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안 했던 거라고. 저새끼들은 어릴 때 레고 한번 안 해본 모양이라고. 상상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이 결국에는 이기는 거라고. 그러니 패배감 같은 거 절대 갖지 말자고.
하지만 붉은 조끼의 여자는 내려올 줄 몰랐고 주변으로 카메라 플래쉬는 계속 터졌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자 참으로 많은 얘기가 있다. 스티로폼을 준비한 게 프락치의 소행이다. 일부러 불을 지르려고 하는 거다. 모든 게 음모다. 그리고 그 위에는 비명과도 같은 비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어도 그건 우리가 아니라고. 경찰이라고. 프락치라고. 하지만, 비폭력이란 말이 가장 힘을 발휘했을 때는 우리 위에 무자비한 폭력이 떨어지던 6월 1일 새벽 바로 그 때였다고 나는 믿는다. 부당한 폭력에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게 우리의 힘이고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엔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시민이 무언가를 시도하려고만 해도 비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싹을 짓밟아 버리는 게 아닌가. 비폭력이라 외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타인의 시도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건 폭력 아닌가. 모든 걸 프락치 때문이고 경찰 때문이고 명박이 때문이라고 외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나. 하지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일수도 있다면 그런 사람을 감싸안고 말리며 그럴때일수록 더욱 더 목소리높여 구호라도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오늘 비폭력으로 포장한 폭력을 본 느낌이다. 그래서 너무나 우울하다. 지금 말들이 많은데 이 글 때문에 쿨게이 쏘쿨병 사람들한테 졸라 까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곳곳에서 프락치가 주동한 거다 어쩌고 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더라. 에라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까인다고 죽냐. 그렇다면 이명박은 지금쯤 원자단위로 작살났게.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난 다음에도 나갈 거다. 진짜 많이 실망했고 기분 더럽고 너무 화나고 완전 삐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또 보자. 이렇게는 안 끝날 거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