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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04
    민중탕제원, 그후 10년...(1)
    무탄트

민중탕제원, 그후 10년...

 

민중탕제원, 그후 10년...은 비전향장기수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10 여년 전인 1995년 제기동 약령시장 한 구석에 민중탕제원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자리에 예전 그대로 있지만요. 민중탕제원과 인연맺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그곳부터 먼저 소개하는 게 나을 듯 하군요.

얼핏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민중탕제원은 비전향장기수 선생님 세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권낙기, 임방규, 이두균 선생님. 두균선생은 찾아오시는 분들의 진맥을 보셨고 그 결과에 따라 침과 약으로 처방하는 일을 하셨지요. 낙기선생은 처방전에 따라 약재를 조제하시는 일을, 방규선생은 약을 다리고 포장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참고로 이분들의 호칭은 상호간 성함 뒤에 선생을 붙이더군요. 나이 불문하고 말이에요. 낙기선생은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사이에선 막둥이였습니다. 통혁당사건으로 빵살이를 시작했으니 해방이후 또는 625이후 빵살이를 시작한 선생님들에 비하면 한참 아래였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젊음으로 인해 낙기선생은 일복이 터졌구요. 방규선생은 가장 나이어린 빨치산 정치담당 중대장이셨습니다. 두균선생은 625 이후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신 우리들의 기억 저 편에 붉게 물들어 있는 간첩이었지요.이분들과의 인연은 저를 비롯한 몇 명이 불시에 이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그 당시 저를 비롯한 몇 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기로 중지를 모았습니다. 일종의 워크숖이었던 셈이지요. 머리를 맞댄 결과 ‘민중탕제원의 삶과 희망’이라는 타이틀로 비전향장기수 이야기를 풀어헤쳐 보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6미리 카메라도 없었고 해서 슈퍼비디오테이프를 원본으로 하는 집채만한 카메라를 사용했지요. 당시는 고생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잊지못할 추억이 된 거지요. 불쑥 찾아 뵙고 저희 의도를 말씀드렸습니다. 참 어려운 결정이셨을 텐데 촬영허가를 해 주셨을 때의 고마움이란 아시는 분은 다들 아실 겁니다. 해서 2주 동안의 동고동락이 시작되었지요. 이때 푸른영상 촬영팀도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행사장에서 간간이 만나기도 했습니다. 10년 후 김동원 감독님의 송환이 발표되었지요. 저는 아직 송환을 보지 못했지만 정성과 열정이 영상 한 장면장면에 배어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들의 영상물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민망했고 그럴 의도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들과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어느새 10 여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민중탕제원의 삶과 희망을 만든 저희들에게도, 사람 살아가는 세상도... 지금의 저는 사회로 진출하여 영상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두균선생은 송환되셨고 낙기선생과 방규선생은 이곳 대한민국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시구요.

이년전인가 삼년전인가 어느날 이사를 하면서 책들과 자료를 뒤적이면서 한 쪽 구석에서 먼지쌓인 테이프를 발견했습니다. 겉면에 민중탕제원01, 02, 03... 인덱스가 되어있는 비디오테이프였지요. 예전의 촬영테이프 원본과 편집본, 최종본이 그대로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민중탕제원, 그후 10년은 시작되었습니다.

10년 전. 국가보안법과 한국현대사의 거창한 주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의 시작은 그리 큰 거대담론은 아닙니다. 세 분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호흡하고 싶지요. 그분들의 일상 속  말씀과 흘러가는 움직임에서 우리가 안아야 할 한민족의 아픔과 이 시대의 자화상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잔 비가 하늘을 거쳐 대지와 콘크리트 바닥으로 흩뿌리는 날입니다. 왠지 스산하기도 하지만 봄기운의 넉넉함은 내 마음의 따뜻함으로 자리잡기에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길을 걷다 바로 옆의 가로수 가지가지에 몽골몽골 샘솟는 연두빛 고운 생명에게 방긋 미소지어주는 봄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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