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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9
    아내와의 소통(1)
    무탄트
  2. 2006/12/28
    이른 귀가
    무탄트
  3. 2006/07/19
    비 갠 날 문득...
    무탄트
  4. 2006/04/18
    酒님의 아지랑이(1)
    무탄트
  5. 2006/03/27
    봄날 아침
    무탄트

아내와의 소통

아침 출근길, 경상에 놓여있는 공책을 펼쳤습니다. 표지에 ‘대화’라고 씌여있는 공책. 12월 28일. 아내의 글이 있었지요. 하루동안 내게 느꼈던 서운함과 감사함이 적혀 있었습니다. 참 따뜻했더랬지요. 그대로 눌러앉아 아내의 글 바로 아래에 몇 자 적었습니다.

요 며칠전부터 시작된 나와 아내와의 대화방법입니다. 소통의 한 방식인 셈이지요.

곰곰 돌아보니 아내와 인연맺은 게 지난 1993년, 후년이 되면 결혼 10주년이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누구나 으레 다 그러하듯 연애와 결혼 초기의 애틋한 신뢰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마모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부부싸움도 하게 되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아옹다옹 뒤엉킨 삶을 살기 마련이지요. 헌데 살아오면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두고 아내와 난 어느정도의 막힘없는 소통을 하고 있는지, 참 어려운 화두였습니다.

지난 휴일 아내에게 공책대화를 제안했습니다. 칭찬하고 싶은 것, 감사하고 싶은 것, 서운한 것, 불만인 것, 고쳤으면 하는 것, 변했으면 하는 것, 하고 싶은 말말말...... 공책에 적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해명, 변명, 주장, 생각 등의 댓글을 적고......

아내의 마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연애 초기의 가슴으로 아내를 보고 싶었습니다. 곰곰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즉자적인 반응으로서가 아니라 아내가 말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고민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아내에게 내보이기!

아침 출근길, 아기자기 고운 필체로 씌여진 아내의 글은 기쁨바이러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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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귀가

어제는 이른 귀가였습니다.

요 근래 연말 핑계대면서 술독에 빠져지내는 정신없는 시절을 이야기할라치면 참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불현듯 며칠 전부터 멍한 뇌리에 스치는 것들이 줄줄 있었습니다. 스물네시간 아이랑 지내는 아내의 일상이... 불혹을 바라보는 내 삶의 모습을 성찰하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의 반경을 문득... 이후 20여 년 동안 무엇을... 그 이후는 또 무엇을... 정답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인생이 사지선답형의 딱 부러지는 문제라면 좋겠다는 가벼운 상상을 펼쳐본 것도 아니고 간혹 복잡할 때 일기처럼 끄적이는 노트에 순간순간 마음에 새겨지는 잡다함을 훅 뿌려대는 것에 만족했지만 내게는 심상치 않은 화두였습니다. 인간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회귀본능을 자극받는가 봅니다. 어떤 이는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간혹 본적이 있지만, 무슨 말인고 하면 나, 가족, 가까이 있는 주변을 점점 더 세심히 바라보게 되더라는 겁니다. 가족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나누며 식사하고 텔레비전의 일일드라마를 보며 미소짓고 품에 안은 아이가 어깨에 기댄 채 잠들어버리는 순간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새근새근 아이의 호흡소리는 내 안의 평온을 이루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일상의 소소함이 이처럼 위대할 수 있음은 비단 나만의 깨달음일런지?

아님 나만이 잊고지낸 소중함일런지? 그것이야 어찌되었건 가장 가까이에 있음으로 해서 소외시되었던 내 안의 망각을 꼼꼼이 되살려 볼 작정입니다.

창밖에서 휘이잉 불어대는 바람의 시작은 지구 반대편 혹은 열대지방의 후끈거림일 수도 있으나 지금 내 살갗을 스침은 찬공기의 엄혹일 뿐.

2006년 7월 19일 비 갠 날 문득...이후 생긴 넓디넓은 공백 후에 채워지는 간만의 여유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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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날 문득...

비가 참 많이도 내립니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어둠침침합니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얼굴표정은 늘 그러했듯 일상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문득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의 세계를 보고싶다는 욕망이 솟구칩니다.

한평생을 살아내면서 짊어져야만 하는 인생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평온한 영혼의 안식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삶의 길을 떠올려 봅니다.

그 길에서 마주했고 마주하고 있고 마주해야 할 길 위의 동무들을 그려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옷깃만 스쳐 지나칠지언정 둥글둥글한 부드럽으로 길 위의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품고 살아내는 것이, 뾰족한 날카로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쿡쿡 찌르는 일상의 조급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말입니다.

내 조급함이 길 위의 동무들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곰곰 돌이켜 봅니다.

내 길만을 바라보고 다른 길을 보지않은 협소함이 아니었는지 곰곰 되돌아 봅니다.

....................

....................

....................

음,

음,

음,

높고 깊은 흐린 하늘 뚫어져라 응시해 하늘의 참뜻 담아내고 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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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님의 아지랑이

요즘은 매일 술이다.

점심을 먹고 저녁 6시무렵 퇴근시간이 되면 배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 반응은 곧바로 뇌로 전달된다. 밥이 아니라 술,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코올중독 초기증상이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그 걱정으로 인해 스트레스증후군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고?-기억상, 슬픔과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퍼부은 기억이 딱히 기억되지 않기 때문. 술은 내게 언제나 에너지의 창조였다.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누구는 내게 말했다. 조선시대 선비 가라사대 척했겠지만 한량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 누구는 계화도의 정우형이다. 요즘은 막걸리가 나를 희롱한다. 술이 나를 희롱한다. 그래서일까? 내부의 목소리는 가끔 술을 놓아버리라고 한다. 그 울림은 희롱의 정도가 지나친 것에 대한 반작용의 수위를 넘어서는 진지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진지해지고 있다. 술을 놓아야 되겠다는 진지함. 술 마시는 오래된 습관을 하루아침에 놓기는 힘들 듯 하다. 술 자체도 좋지만 술과 내 육신과 영혼, 나와 술과 사람들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은 힘듦을 더 힘들게 한다. 대안도 생각 안해 본 것이 아니다. 희롱당하는 횟수를 줄인다든가 술 대신 차를 마신다든가 술 종을 획기적으로 바꾼다든가, 여하튼 대안이 어찌 없겠는가. 문제는 내부의 목소리에 따라 손과 발이 움직이고 몸이 꿈쩍해야 하는 일일진대. 화면 우측 하단에 4:27의 숫자가 떠 있다. 배는 반응을 보이기 위해 준비운동 중인가 보다.

문득 어제의 술자리가 스친다. 별음자리표 형, 짱돌, 아나키스트 부부, 그리고 깊은 소개를 나누지 않았던 아나키스트 부부의 후배. 인사동의 막걸리와 삼합.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사장님은 인심좋은 대머리 형님이시다. 짱돌과 한 주전자 비우고 다른 분들이 들어오고 열한시 넘어까지 몇 주전자가 비워졌다. 그리고 신촌지하철역 근처의 맥주집에서 한잔 더. 별음자리표 형과 조직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직은 위대한 정신으로 출발하지만 결국 또 다른 울타리가 만들어지고 그 울타리는 위대한 정신을 고립시키기도 하고 열린 소통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일반적이지만 한편 보잘것 없는 경험주의적 예시를 들먹거리면서.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건 힘이고 연대지만 한편...? 인간의 역할을 이야기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인간과 조직 그리고 변화 그리고 변화의 방향. 그러고보니 나는 언젠가부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듯 하다. 희망한다. 자유. 희망한다. 열린지평. 자유와 열린지평은 나의 한편, 속박과 닫힌세계의 또다른 한편이다. 이 난제를 위해 오늘도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일까?

6시가 되기도 전 이미 배의 반응은 뇌로 전달되었나보다. 밥이 아닌 술.

(짱돌은 만능활동가이고 별음자리표는 자칭 길거리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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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아침

저는 트랜드의 불감증을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는가 봅니다.

인터넷을 활용한 시기도 그렇고, 메일을 사용한 시기도 그렇고,,,

언제 시작했느냐가 그 기준이 될 수 없을지언정 소통의 방법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블로그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변 말을 들어보니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 등의 흐름 뒤에 단연 인기를 끄는 것이라던데 관심을 가지고 이러저리 뒤져보다 여기까지 이른 것이 바로 이삼일 전의 일입니다. 솔직히 손쉽게 접근할 수 없으리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나태함이 그 직접적인 요인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이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혼자서 이것저것 클릭하면서 새로운 기능들을 습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거창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편안함과 솔직함으로 내 마음과 몸짓을 그때그때 날적이 할 작정입니다.

늦은 시간 나만의 공간인 일기라는 형식보다는 용기와 민망함을 더 머금어야 하겠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아니 인연을 맺어갈 이들 또는 우연히 이곳을 휘리릭 스쳐갈 모든 이들의 마음의 표현방식이 어떠하든 그 내면에는 따뜻함이 존재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탄트이야기는 말그대로 돌연변이 이야기입니다. 제 별칭을 무탄트 그리고 이곳을 무탄트이야기라고 지칭한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미친세상을 미친 눈으로 바라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식입니다. 무탄트로서 제가 발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든 세상이든 무탄트의 껍질을 벗어내는 과정이 시선의 끝자락에 이르는 피할 수 없는 여정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새만금이야기와 민중탕제원 그후 10년은 지금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새만금이야기는 벌써 만 4년이 되었습니다.

민중탕제원 그후 10년은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 차차 나누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완연한 봄날입니다.

콘크리트 뒤덮인 일상 속 눈망울 싹틔울 대지의 아들딸들에게 미소지어주는 잠시의 여유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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