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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났던 일본 여자

그녀가 소녀였을 때는 작가가 꿈이었다. 학교엔 한국인 선생님이 한 분 계셨었는데, 그 분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품기 시작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서른이 넘었을 때도 여전히 작가는 아니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어떻게 살아야하는 건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이 일 저 일 하고 있는 일들은 있었지만, 모두 그럴 법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그저그랬다. 그러다가 루돌프 슈타이너가 쓴 글을 보게되었다. 무슨 뜻인지 더 알아보려고 공부모임을 찾아갔다. 점점 더 그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일본 안에서는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독일 사람이어서 공부를 계속하려면 독일로 가야하는데 서른 넘어 새로 독일어를 배우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한 번 해본 생각이려니 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 그녀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관심 있으면 보라고 했다.

그 봉투 안에는 미국에 있는 발도르프 교사양성 대학 팜플렛이 있었다. 그녀는 당장 둘째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

 

그렇게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의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사가 되었다.

어느날 일본으로 돌아가서 일본에서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학교를? 함께할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고?

미국에서 공부했던 대학에게 제안을 하였다. 교사양성프로그램을 지원해달라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함께 일할 동료를 만들수 있도록.

그 대학은 일주일 간의 회의를 거쳐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다. 매년 일본에서 열 명 가량의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들었다. 7년 후 그동안 만났던 일본인 중 다섯명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전국을 돌았다. 인형극과 강연을 하면서 학교를 세울 것을 알렸다. 몇몇이 관심을 보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에 학교를 지으라고 내주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니어서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홋카이도 화산 옆 시골마을, 자식들은 도시로 다 떠나고 혼자 빈 집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자기 집과 땅을 그녀에게 내주었다. 그녀는 첫 눈에 그 시골이 마음에 들었고 할머니의 온갖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할머니의 지지로 학교를 세울 터로 결정하였다.

 

그녀와 그녀 동료들은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농사를 시작했다.

인원들 중 싱글맘 한 명의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어 유치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방과후 학교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을 그리고, 수공예를 하고, 악기연주를 하고, 농업을 하고, 밖에서 뛰어노는 방과후 학교. 아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 아이들이 늘어가서 토요일 하루만 있는 발도르프 학교를 열었다. 점점 관심이 늘면서 전일학교를 드디어 시작하였다.

 

그러나 처음에 학교만 세우면 애들을 보낼 것 같던 많은 사람들이 감감 무소식이고 5학년짜리 딱 한 명만 입학하였다. 아이는 한 명인데 선생은 일곱이었다.

그러나 참 즐거운 시간들이었어요,라고 그녀는 회상하였다.

곧 그 학생의 동생이 입학하고 학생 수는 점점 늘었다.

현재 그 학교는 10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그 마을은 농장, 유치원, 정원, 교사양성 대학, 청소년 프로그램, 성인 프로그램, 까페, 공예가게, 캠프장 등이 있는 공동체이다.

 


 

 

푸른 엄지손가락 이야기-닿는 무엇이든 생기있게 살아나는 신비한 손가락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 그러나 소년은 학교에서 쫓겨난 부적응자이다. 그 소년의 신비한 힘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집 정원사 뿐. 그 소년의 아버지는 무기공장 사장인데, 전쟁이 일어나 무기를 만들어 팔아서 큰 돈을 벌고있다, 그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펐던 소년은 공장으로 가서 무기마다 자기의 엄지손가락을 갖다대는데 그 무기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사용되자, 무기 안에서 총알이나 대포가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전쟁할 마음을 잊고 집으로 돌아가 전쟁은 끝난다. 정원사는 늙어 죽고 소년은 정원사를 따라 하늘까지 닿는 콩을 심어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가 아름다워 내내 울면서 운전을 했다는 그녀의 말이 전혀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 온화한 미소를 가진 올해 육십 한 살된 일본여자.

공동체 마을을 세운 이 여자의 온화한 힘.

 

루돌프 슈타이너의 강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그녀는 전했다.

"지구의 사람 모두의 할 일(미션)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기와 다른 타인에게 기여하는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타인을 타인으로 본다는 것, 하물며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무엇일까.

 

어느 친구를 사랑하며, 그 사랑이 어느덧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며, 또 어느 남자를 사랑하며, 또 그 사랑이 어느덧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며, 또 어느 친구를 사랑하며, 또 그 사랑이 어느덧 더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을 과장하여 오만번 쯤 하고난 후,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지금껏 그 모든 사랑이란 것(친구를 대상으로 한 우정도 포함)이 사실 나의 나 자신 사랑, 자기애의 변주인 것이로군,하고 결론을 내렸었다. 즉, 친구건 남자건 대상은 거울이다. 비추어서 내가 잘 보이는가. 나를 얼마만큼 실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아이는?

아이도, 고백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나는 아직도, 고백하기 어렵지만, 장애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무섭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타인을 타인으로 본다는 것.

내가 아닌 그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그에게 기여한다는 것.

그것이 지구인의 미션.

 

쓰면서 문득 든 생각.

그 미션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 자만이 장애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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