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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포스트포디즘 논쟁: 몇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 김명진

포스트포디즘 논쟁: 몇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이 글은 1980년대 이후 기존의 주류적인 대량생산(mass production)방식을 대체할 것으로 각광받아 온 '새로운' 생산방식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 '새로운' 생산방식은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포스트포드주의(Post-Fordism), 일본적 생산방식, 팀 생산방식, 도요티즘(Toyotism)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새로운' 생산방식은 1960-70년대의 일본에서 몇몇 기업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후 8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의 성격과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에 대한 논쟁에서 드러난 몇 가지 쟁점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서 이로부터 약간의 함의를 도출해 내려 한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세 권의 책을 선택하여 이들의 입장을 상호비교하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나가 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세 권의 책에 대한 주제서평의 형태가 되는 셈이다. 세 권의 책은 다음과 같다: James P. Womack, Daniel T. Jones and Daniel Roos,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 (MacMillan, 1991) [국역: 현영석 역, 『생산방식의 혁명』(기아경제연구소, 1991)], Mike Parker and Jane Slaughter, Choosing Sides: Unions and the Team Concept (Labor Notes Book, 1988) [국역: 강수돌·이호창·강석재·김종환 역, 『팀 신화와 노동의 선택』(도서출판 강, 1996)], 이영희 저, 『포드주의와 포스트 포드주의』(한울, 1994). 국내에 이미 상당수의 연구서들이 편저의 형태로 나와 있음에도 이 세 권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① 각각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과 연구방법에 입각해서 '새로운' 생산방식을 바라보고 있으며, 때로는 뚜렷하면서도 때로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종종 다른 책에서 주장한 내용을 서로 언급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입장의 비교가 용이하다. ② 이 세 권의 책은 경영학 전공자, 사회학 전공자, 현직 노동운동가에 의해 각각 씌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생산방식을 바라보는 여러 분야의 입장을 다양하게 접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③ 이 세 권의 책은 편저가 아니라 자동차산업을 분석대상으로 하는 단일 연구서(monograph)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책 전체를 통해 저자들의 입장이 일관되게 전개되므로 이들의 입장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용이하다. 아래에서 필자는 먼저 각각의 책의 논지를 간략하게 요약한 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의 논점을 잡아 저자들의 입장차이를 정리해 보고 결론부에서는 필자의 입장을 한두 가지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 * * 먼저 『생산방식의 혁명』(아래에서는 『생산방식』으로 줄여 쓴다)을 보자. 이 책은 MIT 경영학과에서 발주한 프로젝트인 국제자동차산업 연구프로그램(IMVP)의 연구보고서로서 1991년에 출판되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들의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이들은 20세기 초에 수공업적 생산방식을 대량생산방식이 대체했던 것처럼, 현재의 시기는 대량생산방식을 새로운 린 생산방식이 대체해 나가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기존의 대량생산방식은 부품조달이나 재고관리, 신제품개발, 기업경영의 측면에서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반면, 새로운 린 생산방식은 생산성의 제고와 효율의 극대화,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시장상황에의 적응, 다기능화를 통한 노동자들의 직무만족도 상승이라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생산방식이다. 린 생산방식은 단순히 공장 안에서의 변화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부품조달 하청업체와의 관계, 자금조달방식, 신제품개발 팀의 인적 구성과 운영, 판매방식의 변화 등 기업운영의 모든 측면에 미치는 것이다. 저자들은 린 생산방식이 (그것이 생겨난 지역적 장소인) 일본에 고유한 사회특성들의 결과로 가능해진 것이라는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린 생산방식에 관한 한 주된 연구대상이 일본 기업들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린 생산방식이 갖는 '보편적 성격'에 초점을 맞춘다. 즉, 린 생산방식은 '또하나의' 생산방식이 아니라 생산방식의 진화과정에서 수공업적 생산방식과 대량생산방식의 뒤를 잇는 중요한 '역사적 단계'의 지위를 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들은 대량생산방식에서 린 생산방식으로의 단계 전환이 효율 면에서 불가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것이라는 함의를 이끌어 낸다. 이들에게 있어서 린 생산방식은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제거해 가면서라도 하루빨리 확산시켜야만 하는 당위이자 절대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팀 신화와 노동의 선택』(아래에서는 『팀 신화』라고 줄여 쓴다)의 저자인 파커와 슬로터는 입장을 달리한다. 이들은 GM과 도요다의 미국 내 합작공장인 NUMMI의 사례를 주로 들면서 노동운동가의 입장에서 본 '팀 방식' - 이 당시에는 아직 린 생산방식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 의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흥미롭게도) 팀 방식의 '보편성' - '일본화'와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 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이 파악하는 팀 방식의 보편적 성격은 앞서 『생산방식』의 저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팀 방식의 '우월성'과는 관계가 없다. 이들이 보기에 팀 방식은 "모든 나라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위해 만국의 경영자들이 서로 앞다투어 채택하고 있는 '경영 관리' 기법"(『팀 신화』, p. 52)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들은 팀 방식을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라고 이름짓는다. 이들에 따르면 팀 방식의 높은 생산성과 효율은 생산방식이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원리(내지는 '철학')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생산체계 내의 모든 지점들에 물리적·사회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가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부품을 적시에(Just-In-Time) 조달하며 세부 작업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방식은 전통적인 생산방식에 대한 혁신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설치되었던 완충 장치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전통적 방식을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 결과라고 이들은 결론내린다. 이어 이들의 논의는 생산현장 내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팀 방식의 확산과 이에 따른 노동강도의 강화에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로 초점이 옮아가고, 마지막에는 몇 가지 실천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것으로 책을 끝맺고 있다. 앞의 두 책에 비해 볼 때, 『포드주의와 포스트포드주의』(아래에서 『포드주의』로 줄여 쓴다)는 좀더 본격적인 연구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앞의 두 책과는 문제설정의 지점을 달리한다. 구체적인 입장을 어떻게 취하고 있는가와는 별도로 '과거와는 <다른> 생산방식의 광범한 도입'이라는 거시적인 문제설정에 일단 동의하고 있는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그런 식의 문제설정이 한계를 안고 있음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포드주의, 유연전문화론 등의 거시적인 개념틀들이 실제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사례연구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므로 이를 검증하기 위해 개별 공장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한 미시적 연구가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문제설정과 포스트포드주의 논의에 대한 일반적 서술, 연구방법론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는 3장까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분량을 현대자동차, 도요다자동차, 볼보자동차의 비교연구에 할애한다. 이들 기업들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환경과 개별작업장 내에서의 미시적인 '생산의 정치'가 어떻게 각 기업들 내에서 특정한 생산체계를 정착시키게 되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포스트포드주의'라는 거시적인 개념틀의 유효성을 점검해 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전략이다. 그 결과로 도출된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먼저 도요다자동차의 생산체계를 전통적인 포드주의적 생산방식과 단절한 '포스트'포드주의로 파악하는 것은 명백한 오해라는 점이다. 저자가 보기에 도요다자동차의 경우,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는 컨베이어벨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여전히 '규모의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숙련의 배제에 기반한' 다능공화(多能工化)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 자율권의 행사가 생산효율성의 측면에서만 형식적으로 부여되고 있다는 점 등으로 판단컨대, 전통적 생산방식과의 단절로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컨베이어벨트의 폐기, 직무의 통합, 더 넓어진 노동자의 자율권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볼보의 우데발라 공장과 같은 경우를 포드주의적 원리들로부터 명백히 벗어난,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한 전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 * * 이상의 요약으로부터 세 책의 저자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의 차이가 어느 정도는 드러났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제 네 가지 정도의 논점을 중심으로 해서 저자들간의 입장의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면서 이러한 입장의 차이들이 생겨난 원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포스트-', 즉 '연속'과 '단절'의 문제 우선 세 책의 필자들은 '새로운' 생산방식을 지칭하기 위해 각기 다른 용어 - 린 생산방식, 팀 생산방식(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포스트포드주의 - 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 용어선택 속에 '새로운' 생산방식이 무엇을 넘어섰는지, 혹은 무엇을 넘어서지 못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먼저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대량(mass)'이라는 말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작은(lea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린 생산방식은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대량생산방식에 대해 대안적인 생산방식으로 제출된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이들은 이런 의미에서 린 생산방식이 과거의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 - 이들은 포드주의라는 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듯하지만 - 을 '넘어선(post-)'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모두 이러한 단절을 인정하지 않는다. 『팀 신화』에서는 린 생산방식이 과거의 생산체계는 온존시킨 채 단순히 관리기법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보며, 『포드주의』에서는 팀 방식을 도요다자동차에서의 그것(=린 생산방식)과 볼보 우데발라 공장에서의 그것으로 나누어 후자만을 포스트포드주의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왜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빚어졌을까? 물론 이를 간단히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해 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필자는 이보다 좀더 정교한 설명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관점의 차이를 빚어낸 결정적인 요인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비롯된다.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량생산방식의 핵심은 ... 이동식 조립공정이 아니라 부품의 완전하고 일관된 호환성과 부품장착의 용이성이다."(『생산방식』, p. 50) 물론 부품의 호환성이 대량생산방식의 구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대량생산방식은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테일러주의적인 직무세분화와 정교한 시간-동작연구와는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반면,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이들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이 직무세분화와 구상과 실행의 분리, 그리고 중앙집중적 통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여전히 근본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린 생산방식은 결코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포드주의』의 저자는 도요다자동차의 작업조직이 노동자의 다능공화 원칙을 도입하긴 했지만, 이는 여전히 직무의 세분화에 근거한 가운데 그것의 수평적 확장을 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테일러주의의 원칙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린 생산방식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의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결코 포드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2) '보편'과 '특수'의 문제 린 생산방식이 대량생산방식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생산방식이라는 주장에 대해 주어졌던 (경영자측·노동자측 양측 모두의) 일반적인 반응은, 그것이 '일본'이라는 특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이런 점을 특히 강조하는 이들은 '일본적 생산방식'이나 '일본화(Japan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생산방식』과 『팀 신화』의 저자들은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특수'의 측면을 강조하는 이러한 주장에 서로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이들은 린 생산방식이 일본의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생산방식의 핵심을 몇 가지의 원리나 요소들로 추려낼 수 있으며, 이러한 원리나 요소들이 일본과는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 하에서도 도입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일단 공통적이다 (이들은 모두 앞서 언급한 NUMMI의 사례를 공통적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으로부터 이끌어내는 함의는 서로 다르다. 『생산방식』의 저자들의 경우에는 "따라서 하루빨리 이 생산방식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라는 식의 결론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팀 신화』의 저자들은 '일본화'에 대한 논의가 일본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영 주도의 효율성 향상'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흐려 그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특수의 측면에 대한 강조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러나 『포드주의』의 저자는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 개별사례 연구를 통해 '포스트포드주의'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의 유효성을 검증하겠다는 그의 입장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특정한 공장에서 어떤 생산방식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특수한 환경뿐만 아니라 개별 공장 내에서의 노사관계의 성격, 경영측과 노동측이 각각 취하는 전략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입장을 따르자면 도요다 공장에서 정교화된 린 생산방식을 몇 개의 원리들의 묶음으로 치환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원리들의 묶음이 다른 공장에서 도입될 때에도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필자는 『포드주의』가 취하는 이러한 입장이 현상을 설명해 내는 틀로서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의 능동적인 실천을 보장해 준다는 면에서도 앞서의 거시적인 논의들보다 좀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러한 입장은 "일본 내의 일부 공장들은 특별히 '린'하지도 않으며, 북미의 많은 공장들이 린 생산방식의 실현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생산방식』, p. 126)는 『생산방식』의 저자들의 주장을 오히려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일부 공장에서 '앞선' 린 생산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뒤처져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거시·미시적 요인들이 공장마다 차이를 보여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좀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3) '노동의 인간화' 문제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린 생산방식이 생산성 및 효율의 제고와 노동의 인간화라는,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우월함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자면 이들은 린 생산방식의 구현 속에서 상반되는 가치들 사이의 '최적화(optimalization)'가 달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흔히 선전되는 바와 달리, 린 생산방식 속에서는 현장노동자에게로 책임의 광범한 이양이 이루어지거나 하지 않으며, 도리어 수평적 직무확대로 인한 노동강도의 강화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팀 신화』의 저자들은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하에서 노동자들은 오히려 일상적인 물리적·심리적 스트레스 하에 시달리게 된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직무확대 내지는 다기능화가 반드시 직무만족으로 이끌리는 것은 아님을 여러 가지 경우를 들어 언급하고 있다 (『팀 신화』, pp. 229-232). 아울러 『팀 신화』의 저자들은 '팀 내부의 협동작업에 대해 노동자들이 대체로 만족감을 표시한다'는 주장을 공격한다. 이들에 따르면 작업이 막 시작되어 라인이 제속도를 내며 돌아가기 전까지는 불균등한 작업이 이루어지므로 노동자들간의 자발적인 상호협력이 가능한 반면, 라인이 완전히 제속도로 일단 돌아가기 시작하면 상호협력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팀 워크란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팀 신화』, p. 126). 『포드주의』의 저자 역시 수평적 다기능화가 직무만족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볼보 우데발라 공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직무의 통합과 자율성의 확장이야말로 인간적 노동으로 향하는 길임을 주장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생산방식』의 저자들이 이러한 비판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린 생산방식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결국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기법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해, 이들은 그것을 스트레스가 아닌, '지속적인 도전' 내지는 '창조적 긴장감'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어 이들은 볼보 우데발라 공장의 '실험'을 '신장인주의'라고 명명하면서, 이런 생산방식이 직무만족도를 높여 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생산방식』, pp. 142-146). 이상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은 분명히 특정한 가치의 개입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컨대, 단순작업을 하면서도 생산라인에 좀더 몰입하도록 강제하는 린 생산방식이 노동자들에게 '지속적인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경영자측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듯하다. 마찬가지로 우데발라 공장의 실험이 생산성이나 효율의 측면에서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은 결국 노동의 인간화보다는 생산성과 효율을 더 상위의 척도로 놓은 결과가 아닌가라는 반박을 피해가기 어렵다. 결국 필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생산성 및 효율의 극대화와 노동의 인간화 모두를 만족시키는 어떤 최적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이 둘 사이의 대립은 서로 상이한 가치들 사이의 대립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생산성'과 '효율'의 문제 지금껏 줄곧 서로 분명하게 다른 입장을 보여 왔던 세 책의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효율'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입장을 같이한다. 즉, 린 생산방식은 분명히 여타의 생산방식에 비해 보았을 때 생산성과 효율의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책의 저자들은 높은 생산성과 효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두고서는 역시 서로 입장을 달리한다.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린 생산방식이 생산성의 면에서 뛰어난 이유를 이전의 대량생산방식과 결별한 지점에서 찾는다. 즉, 한마디로 말하자면 린 생산방식은 '포스트포드주의'이기 때문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린 생산방식이 생산성 및 효율과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 하에서는 달성되지 못했던) 노동의 인간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생산방식이라는 이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입장을 달리한다. 이들은 린 생산방식이 결코 대량생산방식과의 결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기본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린 생산방식의 높은 생산성은 오히려 대량생산방식의 '빈 곳'을 공략하여 그것을 극단적으로 합리화시킨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노동의 관점에 볼 때, 이는 곧 노동강도의 강화와 스트레스의 배가를 의미한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이들 중 특히 『포드주의』의 저자는 유연적 포드주의로서의 도요다자동차와 포스트포드주의로서의 볼보 우데발라 공장을 대비시키면서, 도요다의 높은 생산성은 결코 '포드주의를 넘어선' 요소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이에 덧붙여, 우데발라 공장의 생산성이 전통적인 포드주의적 공장들에 비해 보았을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높은 수준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우데발라 공장의 생산성이 린 생산방식을 적용한 도요다의 그것에는 확실히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면서 노동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실험'의 전망이 상당히 암울할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이러한 그의 예측은 볼보자동차의 경영합리화의 결과, 우데발라 공장이 문을 연 지 3년만에 폐쇄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 * * 지금까지 부족하나마 세 권의 책을 중심으로 해서 린 생산방식과 포스트포드주의에 대한 몇 가지 논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 위에서 정리한 것이 각각의 책들에서 주장한 핵심적 내용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은 못된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생산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첨예하게 제기되는 몇 가지 지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립구도가 명확해진 듯하다. 필자는 이 대립구도를 근거로 해서 이제 몇 가지 '확실해'졌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맺을까 한다. 아래에서 필자의 주된 관심은 노동의 인간화 쪽에 맞추어질 것이다. 먼저, 린 생산방식으로 흔히 알려진 '새로운' 생산방식이 전례없이 높은 생산성과 효율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포드주의적 요소들로부터의 일탈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어느 정도 분명해진 것 같다. 즉, 흔히 받아들여지는 생각과는 달리 린 생산방식과 포스트포드주의는 서로 친화도가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포드주의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소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포드주의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의 핵심적 요소가 무엇일지는 자명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린 생산방식은 생산성 및 효율과 노동의 인간화의 대립을 중개하면서 이 둘을 최적화하는, 그런 '환상적'인 생산방식이 아니라는 점 역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결론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과연 생산성(및 효율)과 노동의 인간화가 양립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오래된 논쟁에 새로이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점을 잠시 접어둔다면, 적어도 이 둘을 서로 이질적인 가치체계의 대립으로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진 것 같다. 즉, 이 중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의 논리나 언어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데발라 공장에서 있었던 포스트포드주의적 실험의 예를 다시 상기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우데발라 공장은 경직적 포드주의에서 성취한 정도의 생산성과 대단히 높은 수준의 직무만족을 동시에 이끌어 냄으로써, 앞서의 오랜 논쟁에 출구를 마련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인적 생산방식을 도입한 우데발라 공장이 포드주의적 공장의 극단적 합리화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 도요다 공장의 생산성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팀 방식』의 저자들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첨예한 국제 경쟁의 시대에 생산성과 효율의 향상으로 얻은 비교우위는 모방에 의해 금방 상쇄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만약 저항이 없다면 린 생산방식은 지역적으로 분명 확대될 것이고, 그 결과 결국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가장 극단화된 형태의 린 생산방식과 생산성의 면에서 경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린 생산방식에 의한 '최적화'가 노동의 인간화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노동의 인간화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한 미시적·지역적 실천에서 도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볼 때, 그 미시적인 실천은 자본의 다국적화라는 현상 앞에서 상대적으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다소 암울한 예측이 앞서의 결론에 따라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여기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지구화(globalization)의 경향 속에서 지역적(local)인 실천이 가질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지점이 될 것 같다. 필자는 『팀 신화』와, 같은 저자들이 지은 Working Smart: Unions' Response to Participation Program and Reengineering(1994)과 같은 저서들이 내놓은 구체적 방안들이 이러한 지점에 있어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팀 신화』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들은 최근에 린 생산방식의 확대와 관련하여 북미 지역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개관해 주고 있는데 이들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되며, 린 생산방식의 미래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http://myhome.naver.com/walker71/postford.htm 접속일: 200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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