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한옥집.

동대문역 십번출구로 나가서 이십미터쯤 걷다가 오른편 '소망의료기'골목으로 또 이십미터쯤 들어가면 있는...

종로5가와 6가의 뒷골목 진짜 쓰러져가는 한옥과 어설픈 양옥들이 다닥다닥한 곳..

굵은 모래가 깔려있는 마당 한구석에 이파리라곤 달지 않은 백색의 나무가 서있다.

두칸짜리 집, 그리고 사랑채. 박건희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의 공간.

두칸엔 사진을 전시하고 사랑채엔 민정의 '참회의 방'을 만들어 놓았다.

이 전시 또는 퍼포먼스 또는 파티를 준비한 젊은 작가들이 두주동안 종로 구석구석을 누비며 찍었다는 사진.

서울이라는 도심 한가운데에 섬처럼 떠있는 종로와 동대문의 낡은 풍경들..

작가들의 시선이 따뜻하다.

 



민정의 '참회의 방'에도 역시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신문지로 벽을 바른 위에 마치 사진기사인양 붙였다.

모래가 깔린 널찍한 마당에선 소시지와 햄을 굽고있다. 바베큐 파티인가.

이런 종류의 '가든파티'에 익숙치 않아 좀 어색...그러나, 있는척 하는 인간들의 재수없는 파티가 아니라서 곧 편안해진다.

이어지는 공연은 왠 사랑의 유람선풍 스탠다드 팝을 부르는 남자가수. (약간 느끼하다.)

다음으로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소프라노. 그리고 나서 민정의 순서다.

그러나 오오 역시..아티스트는 다르다. '좀 정리되면 하겠다'면서 호흡을 고른다.급할것도 없지 사실...다들 먹고 마시기 바쁜 그런곳에서 공연하는 자의 어려움을 잘 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민정이 걸어나온다.

공연을 하러 나온다기 보다는 마치 인사를 나누기 위한듯한 걸음..

정말로 여기저기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음악의 볼륨 높아지고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한다.

민정이 틀어달라고 한 씨디에는 역시나 민정다운 음악이 담겨있다. 그 자유분방함이 마냥 부럽다. 에너지는 또 어떤가.

혜심이와의 협연.

혜심이의 침향무도 좋다. 저 둘은 서로를 잘 아는가. 믿고있는가..

모래가 깔린 앞마당에서, 아직은 바람이 차기만 한 사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해가 지려면 멀었으나 그 앞마당에까지는 햇살이 미치지 않는 바로 그곳에서 민정의 춤...좋다.

찬윤이 오다. 동원이도 보인다. 남미..그리고 효순...

와인을 두잔 마신다. 음음....

남미가 소시지를 굽고있다. 오자마자 저런다.

민정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외로와서 그런거야..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거지...'

예전같았으면 나는 그랬을껄...'와우~~정말 착한거 아냐?'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좀 솔직해져서 그런지 세상의 어느부분은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러다 문득...남미를 과연 제대로 이해하기나 한 것일까...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도 밀려온다.

다른 사람의 내면을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해가 진다.

진짜 허름한 동네의 허름한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저 가로등을 매일 켜고 끄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김없이 저녁이 내리는 골목에 빛나기 시작해서, 해도 달도 없이 별들만이 지키는 새벽을 지나 순식간에 밝아오는 아침무렵까지, 매일 이 종로5가 뒷골목, 여기에서 켜지고 꺼지는 저 가로등을 다스리는 이는 누구일까.

밤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의 간판불빛이나 가로등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이때는 네온불빛도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청순미마저 띠고있다.

추워진다.

햇살은 따뜻하나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몸이 움츠러드는 사월의 토요일 저녁.

이상하게도 한겨울 추위보다도 봄날 저녁무렵 바람 몹시 부는 날의 추위가 더 기억에 남는다.

훨씬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방비상태라 그런가...햇살에게도, 바람에게도, 무장해제.....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동대문에서 공단역까지 길고긴 지하철여행의 시작이다.

안산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앉아있는 죄석의 바로 옆 출입문 앞에서 이주노동자임에 틀림없는 한 흑인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들린다. 저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고향집에서 즐겨부르던 노래일까...가슴이 아려온다. 집에 가고 싶구나 저 사람은....

시간이 가고있다.

기억되는것보다 잊는 것이 더 많아지는...그래서 이제는 아쉽지도 않은채 가버리는...왔었는지도 모르게 가고 없는...그런 시간이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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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7 11:10 2005/04/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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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seayoung 2005/04/18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엔 나도 데려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