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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4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긴 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턴 인천(과 부천)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나를  '지방'출신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한편 집을 나와 (서울에 있는) 기숙사와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살던 대학 1,2학년 때에는 나의 동선이 고만고만한 바닥에 한정되어 있었고 따라서 종로나 신촌 강남 등등으로 나갈 때에는 지방에서 서울구경 왔을 때 느꼈을 법한 느낌들이 들곤 했다. 그 이후에 주 생활무대가 학교 바깥으로 벗어나게 되고  잠 자는 곳이 다시 부천으로 바뀌면서 매일 한시간 남짓 거리의 이동을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문학 속의 서울>이란 책을 오늘 다 읽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을 서울의 역사와 흔적들일텐데, 지금의 나는 책의 내용들이 좀 더 내 삶과 연루된 듯한 느낌으로 독서를 한 것 같다. 경인선 철도가 개화기에 놓였다는 사실은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는 책에 나오는 경인전철 이야기와 내가 매일같이 타는 그 전철이 동일선상에 놓여져 보였다. 노량진-제물포 사이를 왕복하는 철도로 시작해서 노선이 연장되고 전철화되는 이야기, 경인선이 전철화되고 노선이 연장되면서 70년대 중산층 서울 사람들에게 송도 월미도 등등이 여가를 즐기는 새로운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등. 문득 내가 처음 부천으로 이사해왔을때 황량했던 송내역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금은 급행열차도 생기고 역사도 크게 지어졌는데. 책을 읽으며 그런 세월의 흔적들을 떠올려보게 된 것 같다. 서울시청 앞에 1호선 전철 공사를 하는 옛날 사진도 보게 되었는데, 앞으로는 전철 타고 시청역을 지나면서 30년 전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며 똑같은 일상의 팍팍함을 달래는 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헤이스팅스에 머물면서 잠 자는 곳과 낮에 머무는 곳이 아무리 멀어도 걸어서 30분 이내로 커버가 되는 삶의 방식을 경험하면서 그 이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서울과 부천을 왔다갔다 하는 삶의 양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런던에서도 비록 전철을 타고 다니긴 했지만 길어야 20분 이내였고, 사무실과 집 사이의 공간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걸어서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고 머릿 속으로도 지도가 수월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 적어도 서울에서보다는 내가 그 당시 머물고 있는 지역에 (비록 여전히 표피적이긴 하지만) 좀 더 뿌리를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집은 주로 잠만 자고 다시 나오는 곳이었고 아예 집 근처에서 소비를 해본 적도 거의 없었으니깐. 집 근처의 전철역에서 서울의 전철역까지 이동하면서 지나치는 공간들은 나에겐 그저 풍경의 일부이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으로 인식해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 좀 엉뚱하긴 하지만, 낮과 밤에 생활하는 공간이 좀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는 혹은 자전거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수준의 거리에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외출을 했다하면 거의 홍대쪽으로 나가다 보니 그 지역이 친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중교통에 의존해 나는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상이한 공간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이면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직 말로 속시원히 끄집어내지 못하겠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면 내가 직접 장을 볼일이 거의 없어진다. 그래서 더욱더 이 지역에서 내가 관계를 맺는 곳은 전철역과 근처 공원, 초등학교 운동장 밖에 없어지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얼른 독립을 해야할 텐데 하는 생각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서울,,그 퀘퀘한 공기와 끊임없는 소음, 수많은 인파가 싫긴 하지만 아직은 웬지 떠나기 힘들 것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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