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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선가(禪家)의 공안(公案) 같은,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토끼 한마리가 사냥꾼을 피해 숨을 곳을 찾습니다. 나그네는 토끼를 숨겨줍니다. 좀 이어 사냥꾼이 나그네에게 토끼가 간 곳을 묻습니다. 나그네가 지금 있는 곳은 갈림길입니다. 이때 나그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임의의 방향을 가리키면서 사냥꾼을 그곳으로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해를 입지 않고 토끼도 지킬 수 있으므로 그것은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냥꾼에게도 토끼를 쫓는, 혹은 쫓을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 자리는 서로의 숙명이 부딪친 자리입니다. 결국, 나그네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폭력의 근원-사냥꾼의 사냥을 중지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설득일 수도, 물리적인 실천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그네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교사는, 이 나그네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계삼,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51-52쪽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미리 읽어보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필자들이 있다. 이계삼 선생님의 다음 글이 무엇이 나올지 자뭇 궁금하다. 녹색평론도 우리교육도 다 정기구독이 끝나버렸는데 이 참에 다시 신청할까보다.

 

교육에 대한 화두를 놓치지 않으면서 천성산, 평택, FTA, 삼성, 비정규직, 가난한 삶에 관한 고민들을 풀어놓은 글들이 질리기보단 오히려 다시 읽어도 곱씹어볼 수 있는 글들이었다. 대학교에 돌아가면 꾸역꾸역 글 쓸 일들이 생길텐데 그럴 때마다 자주 인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최근 어느새부턴가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다. 오엔 겐자부로 <만엔원년 이후의 풋볼>을 최근에 읽었는데 것두 한 일주일 넘게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주변에 잡히는 책을 읽곤 했는데 이제 새해겠다 다시 뭔가 관심있는 주제를 하나 잡고 진득허니 읽고 싶기도 하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요즘 고민 자체가 별로 없다. 몸도 찌뿌둥하니 생각도 덩달아 무뎌졌나보다. 연말에 술자리 있을 때마다 암울한 넋두리만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때.

 

* 관람후기를 적고 싶은데 막상 또 쓰려니 딱히 신선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간 벼르고 벼르던 <엘라의 계곡>은 어떨지 궁금&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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