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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이번엔 학교이야기. 피고용자가 아니라 소비자 신분으로 다니는 그 학교 이야기. '학교상담과 생활지도'라는 4학년 전공 시간에 ebs에서 만든 '아기성장보고서' 중 '애착'에 관한 부분을 시청했다. '아기성장보고서'는 예전에 여러 번 남들이 언급하던 걸 들은 기억이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애착에는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이 있단다. 여기서 '불안정 애착'은 다시 크게 세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회피형 애착, 저항형 애착, 혼란된 애착이 그것이다. 즉, 애착은 애착인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애착인게다. '애착'이라는 것은 생후 1년 사이에 아기와 양육자(주로 어머니) 사이에 형성이 된다고 하는데,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상대방이 들어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아기는 '안정애착'의 모습을 보인다, 라고 나왔다.

 

'불안정 애착'의 유형과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으면서 이건 비단 아기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랑 무관하게 사람들이 맺는 관계에서 늘 발견되는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연애관계에서 양자의 밀고당김 속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양한 변용과 혼형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결들을 '불안정 애착'이란 언어로 접근해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쳤다. 서로가 죽고 못 사는 사이라면 모르겠지만, 상대에 대한 애정 혹은 집착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때에 쫓아다니는 쪽에선 위의 세가지 '불안정 애착'의 모습을 모두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 양육자 혹은 연애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애정의 표현을 비일관적으로 함으로써 계속해서 관계의 주도권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닌지.

 

연애가 쫑난지도 어언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내가 '친밀함'에 대한 욕구를 자각할 때란 다름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의 내 감정과 욕구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들어줄 수 있는', 그래서 내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워질 때이다. 하지만, 지난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난 '돌봄노동'이란 측면에서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고 오히려 타인의 '희생'위에 살아왔다는 자의식 때문에, 이젠 '서로의 현재 상태를 헤아리고 보듬어주'면서 동시에 '배타적'인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상대가 내게 헌신하는만큼 나도 상대에게 헌신하는 노력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쉬워질텐데, 난 여전히 게으르고 비겁하다는 딱지를 스스로에게 붙이고 있는 상태일지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보면서 들었던 질문 하나. 생후 몇개월이 채 안되어 새엄마를 맞아 한동안 불안정 애착의 모습을 보이다가 새엄마의 노력 덕분에 안정애착의 모습을 보이는 아기의 사례가 나온다.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변화가 양육자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양육자의 성격도 안정/불안정 애착으로 분류를 할 수가 있는데, 양육자가 타인의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안정 애착의 모습을 보이던 아기를 안정 애착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식의 요지였다. 모든 인간은 변화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는 가정을 내포하는 분석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여성 양육자가 아기에게 감정노동을 하는 동안 그녀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아기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교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직 모국어를 말할 수 없는 아기와의 관계에서는 '비폭력 대화'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이번 프로그램을 보고 반장짜리 자신의 경험보고서를 다음 주까지 제출하는 것이 과제인데, 교수가 읽는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려니 말도 잘 안 나오고 괜히 더 표현도 어렵게 써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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