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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아침 10시 수업, 교생 때 강의를 못 들은 사람들을 위하여 선생님이 특별히 4주 강의분 요약을 따로 해주었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도 있던데, 나야말로 수학에 대한 울렁증이 도져서 단일표본 t검증이니 분산분석이니 하는 말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막상 문제로 나온 것을 보면 그렇게 또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직접 푼다 생각하면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주변에 도와줄 만한 사람들은 다들 통계를 배운지 너무 오래됐고, 강의 내용을 잘 아는 수강생들 중에는 마땅히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할지 난감하다. 이럴 땐 나도 동기들이 있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도 든다. 졸업도 늦게 하면서 바라는 것만 많은건가... 교생들은 과제도 교생 다녀와서 늦게 제출해도 된다고 배려를 해주시고, 못 들은 강의를 다시 한번 해주신 선생님한테 고마워서라도 마음 약해지지 말아야 될텐데.

 

한 달 교생을 마치고 나니 그간 내가 어떤 일상을 살았던지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수업 끝나고, 우체국에 들려 일을 보고, 정문까지 걸어가서 파란 버스를 탔다. 에어컨 소리에 귀에 꽂은 음악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봉천고개를 넘을 땐 내가 탄 버스가 신호등에 걸리나 안 걸리나를 살핀다. 학교 갈 땐 늘 그 신호에서 아슬아슬하게 걸려서 사람 마음을 애타게 하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왜 이리 씽씽 잘 통과를 하는 것만 같은지. 상도터널을 지나 한강대교를 한번에 건넜다. 날이 뿌옇지 않아 한강 너머 멀리까지 보여서 좋다. 황사가 갔나 싶으니 이젠 자외선이 힘들게 한다.

 

용산에서 버스를 내리면 바로 옆으로 남일당 건물이 보인다. 철거된 레아건물을 한번 씨익 돌아보며 용산역으로 향한다. 동네슈퍼에서 살 수 없는 몇 가지(맥주?)를 사고 1호선을 탄다. 남영역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해방촌오거리를 지나 종점약국에 내려 잠깐 장을 더 보고 집에 올라오니 땀이 뻘뻘. 날이 너무 덥다. 선크림을 미처 못바른 목 뒷덜미가 따갑다. 

 

날씨를 보며 지구의 멸망이 얼마 안 남았다는, 여전히 '진지한' 생각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하루 중 가장 생기가 도는 순간은 마을버스가 금방 도착했을 때라는 자각이 들면서 살짝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해진 일상, 어제와 같은 오늘, 별 특이할 바 없이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일상에 만족해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다시 새로운 '약발'을 찾아봐야할 때가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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