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병역거부 소견서

내가 총을 들 수 없는 이유

1.
군대 대신 감옥에 가는 것, 이것은 제 삶에 있어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특정한 시점에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를 짧고 간결한 말로 설명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가 병역거부라는 선택지를 처음 알게 된 2003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 자신에게 군인이 되어 총을 들고 서있는 저의 모습을 납득시키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제가 병역을 거부하기까지 거쳐 온 고민의 여정을 보여주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은 제가 국가와 전쟁 그리고 군대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당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던 저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 다녀오면서 ‘국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이익은 구체적으로 누구의 이익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받아온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체력은 국력’이라는 식으로 저와 국가를 동일시하고 있던 제 가치관은 이때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고 알고 있던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껏 내가 배우고 믿어왔던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역거부를 계속 고민하던 저는 미군기지확장이전 반대 투쟁이 벌어지던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펼쳐진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오던 땅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던 주민들에게 정부가 한 일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며 그들을 모두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벌어지던 5월 4일 동틀녘 대추리에서 저는 군대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내세운 국가폭력 앞에 사람들은 똑같이 폭력으로 맞서거나 혹은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비폭력적인 대응방식을 고민했지만,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군대가 자국 국민을 적으로 몰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제게 있어 군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을 내면화하는 공간입니다. 평택 대추리, 광우병 촛불집회, 용산참사 때의 전·의경을 보면서 저는 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동안 투하되는 미사일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미사일을 쏠 수 있는지 이해해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상대를 나와 같은 감정과 욕구를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총구를 겨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군인이 되는 것의 의미는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동원과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로봇이 되는 것이라는 점이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2.
병역을 거부하고 이제 (아마도) 감옥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제가 그동안 만났던 아이들 얼굴이 생각납니다. 올 봄에 초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급식실로 가는 그 짧은 길에서도 제 손을 서로 잡지 못해 아쉬워하고, 밥 먹을 때도 서로 제 옆에 앉으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그들의 삶에 중요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에 행복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서 저랑 묵찌빠를 하면서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 복도에서 걷다가 떨어진 필통을 주워줘서 고마웠다고 편지를 쓴 아이, 자기도 커서 교생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을 보면서 각자가 지닌 기쁨과 고통에 기꺼이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부한 교육학은 교육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교육이 무언가에 대한 고민은 내가 사는 이유 그리고 내가 지금 중요시 여기는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교생실습기간을 거치며 제가 결론 내린 교육의 목적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바닥을 경험하겠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주고 존재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해나간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안보’는 각자가 안전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법을 배우고 살상훈련을 하는 것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군대에서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경험하게 될 제 자신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양심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명하달의 조직문화, 남성중심의 위계질서와 같은 군사문화가 군대를 통해 사회전반에서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는 타협할 수 없는 제 내면의 진지한 목소리이며 이런 저의 신념을 도저히 속일 수 없었기에 기꺼이 병역거부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3.
얼마 전 집속탄금지협약 1차 당사국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라오스에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라오스에서는 불발 상태로 남아있는 집속탄으로 인해 하루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 당시 라오스 전역에 투하한 수백만 개의 집속탄들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인 무기로 낙인이 찍힌 집속탄에 대해 한국정부는 여전히 국가안보를 이유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의 기업들 역시 집속탄을 생산하여 이윤을 챙기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된 연평도 사건에서 한국정부는 보다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뉴스에는 이에 맞춰 한국군이 자랑하는 다연장로켓포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토화되는 것은 북의 해안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 혹은 우리의 인간성입니다. 포격을 한 북한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갈등국면을 조장한 한국 정부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북한에서도 분명 한국의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계속 서로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키워나간다면 앞으로 눈물을 흘릴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어도 괜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더 이상의 군비경쟁을 멈추어야 합니다. 서로간의 적대를 조장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것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군수업체들뿐입니다. 폭력은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낳습니다. 저의 병역거부는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제가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선의 선택입니다.

4.
제게 있어 병역거부는 저의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계기입니다. 누군가의 병역거부 소견서에도 언급된 적이 있지만, 저 역시 애초에 평화로워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병역거부를 고민하면서 여성주의와 평화주의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을 통해 만난 사람들 덕분에 채식을 시작했고,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적게 벌고 덜 소비하며 세상에 가능한 해를 덜 끼치며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 제 삶의 8할은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아직 닥치지 않은 수감생활을 미리 상상하는 것은 제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할 때마다 제가 언젠가는 감옥에 가게 된다는 생각이 잊지 않고 찾아와 저를 괴롭힐 때가 있었습니다. 감옥에 갔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며 저의 결정을 만류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안 가고 감옥에 가는 것이 왜 꼭 저여야 하냐고 말하는 부모님과 싸우면서 그분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것에 슬프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어이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야만 하는 사실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병역을 거부하기까지의 고민과 결심에 자극과 영향을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병역거부는 분명 제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것이 결코 저 혼자만의 고민의 결과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제가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완전하거나 잘 나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비폭력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도 많은 자극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저에게 병역거부는 어떤 특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제 삶의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저의 병역거부가 군대의 존재이유에 대해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 양심의 자유, 네 양심의 자유라는 상대주의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병역거부가 저로 하여금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쉼 없이 깨우쳐주는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0년 12월 14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명진

 

 

===========================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올라간 소견서를 그대로 긁어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명진이라는 말이 아직도 낯설다. 마치 14일 하루만을 향해 달려왔던 것 같은 기분이다. 14일이 지나고 어느새 금요일 새벽인 지금, 공허한 기분이 여전하다. 14일에 찾아주었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감사 인사도 못 드렸는데.

 

동생이 네이버에서 내 기사를 찾아보고 연락을 주었을 때, 병무청과 트러블이 생겨서 엄마한테 얘기를 하는데 엄마도 같이 화를 내주었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 가족으로부터의 지지와 이해를 내가 원했다는 게 새삼 자각이 된다.

 

소견서 꾸역꾸역 쓰면서 고생하다가 막상 그게 끝나고 나니 이제 구속날짜와 그에 따른 가석방 날짜를 저울질하고 있는 내모습이 보인다. 가석방 날짜 고민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텐데, 그래도 한줌의 예측가능성이나마 붙잡고 싶은 기분인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