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6kg

참 재밌는 경험을 했다. 일요일 저녁부터 끊긴 전기가 일요일 밤 늦게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자정부터 끊기기 시작해서 월요일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다시 돌아왔다. 허허 이젠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아서 이번 일 역시 하나의 재밌는 해프닝으로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지만, 참 흥미로운 경험임에는 틀림 없는 듯 하다. 지난 달에 여행 다녀오고 나서 그에 관한 diary를 쓰고 있다고 홈스맘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오죽 하면 홈스맘이 오늘 그걸 기억해냈는지 영국에서의 정전 경험에 관한 diary를 써보는 건 어떻냐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더라.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영국도(?) 전기 공급이 민영화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양 옆으로 붙어 있는 이웃들이 모두 다른 서비스 공급 업체로부터 전기를 구매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이번 정전은 불행하게도 유독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거리의 집들만 겪었는데 이럴 경우에 그럼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홈스맘은 ‘have no idea’ 였다.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하기 전에 다른 성미 급한 이웃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민영화로 인해 전기 공급을 책임지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기민한 다른 이웃이 전기회사든 어디든 전화를 해서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조치를 취하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누군지는 홈스맘도 모른단다. 그저 전기가 돌아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만사 태평한 홈스맘의 그런 말에 혼자 맘 속으로 민영화가 영어로 뭐더라 이걸 어떻게 한번 얘기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 나만 무색해져버렸다.-_-;; 암튼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만 하루동안 정전이 벌어졌다면 아마 바로 포털 메인에 기사가 뜨면서 한전에서 해명을 하는 보도자료를 내놓지 않았을까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그나마 내가 사는 집은 전기 오븐이 아니라 가스 오븐이어서 이번 사태를 겪는 와중에도 저녁을 무사히 해먹을 수가 있었다. 홈스맘 말로는 전기 오븐을 가진 집은 밥해먹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고.. 정전이 계속 되던 일요일 저녁에는 홈스맘과 living room 에서 초들을 켜놓고 어둠 속에서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밥을(meal을?) 뚝딱뚝딱 해치워 먹었다. 월요일 저녁에는 일요일 저녁을 교훈 삼아 해 떨어져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해서 테이블에 양초들을 켜놓고 후딱 해치워버렸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고작 7시를 갓 넘기고 있었다. 저녁 7시, 평소라면 한창 홈스맘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시간인데. 암튼 난 홈스맘이 설거지하는데 옆에서 후레쉬를 들고 비춰주면서 전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의 삶에 대해서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홈스맘이 아일랜드에 살던 시절 얘기도 또 듣고.
여기 와서 이사를 할 때마다 내가 이걸 한국에서 왜 들고 왔지 하고 생각이 들던 것 중 하나인 후레쉬를 이번 기회에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잠시나마, 캠핑장에 밤늦게 도착해서 서로 후레쉬를 비추며 밥을 해먹던 기억이 났달까.
 
보통 생활패턴에 따르면 홈스맘이 샤워를 끝내고 나갈 준비를 할 무렵쯤 내가 일어나서 부시럭부시럭 씨리얼과 빵과 우류를 챙겨먹기 시작하는데 월요일 아침에는 홈스맘이 아침에 출근을 늦게 할거라면서 부엌에서 이리 저리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옆집 사람 말로는 (여전히 나로선 정체를 정확히 짐작할 수 없는, 왜냐면 한국처럼 한전 이런게 떠올려지지가 않으니) 전기 회사 직원이 말하길 아침 8시 반에는 다시 전기가 돌아올거라고 했다고. 그래서 그 때 전기가 돌아오면 보일러도 다시 돌테고 그럼 따순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말리며 세팅을 할 수 있을테니 홈스맘이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기는 월요일 하루가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홈스맘은 회사 상사에게 얘기해서 월요일 하루 회사를 쉰다고 말했다고 한다. 얘네 문화에서는 회사 하루 빠지는 게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얼핏 듣기로 영국이 그나마 이 주변 국가들 중에서는 휴가가 가장 적은 곳인데 그래도 일반적인 샐러리맨들이 1년에 갖는 휴일이 보통 최소 한달이라고 한다. 이걸 예컨대 여름에 5주 몰아서 쉴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씩 쪼개서 쓸 수도 있고. 휴가를 어떻게 언제 어디서 보낼지 생각하는 것도 삶의 낙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홈스맘은 화요일도 결국 휴가를 냈는데, 그녀 말에 따르면 회사 supervisor에게 전화를 걸어서 not feeling very well 이라고 말했고 그걸로 이틀을 연달아 집에서 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정전이 되니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좀 견디면 되고, 전기로 물 끓이는 대신 냄비에 가스로 끓이면 되고, 하지만 문제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월요일 저녁에 홈스맘이 아들 조나단에게 부탁해서 냉동실에 있는 음식 전부를 전 남편 집 냉장고에 넣어놓으라고 보냈다. 그런데 웬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렇게 음식들을 들려 보낸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서 전기가 돌아와버렸다.-_- 이럴 때 that's life 란 말을 하게 되는 걸까. 암튼 음식이 다 상해도 얘네 여건에선 이런 정전 사태를 책임질 주체가 불분명하기에 따라서 금전적인 보상 이런 건 상상하기 힘들 듯..홈스맘 왈, I don’t know who’s going to compensate for this disaster!
 
 
 
정전이 된 와중에 저녁을 먹고 우연찮게, 아주 우연찮게 몸무게를 재보게 되었다. 후레쉬로 눈금을 비추면서 말이다. 여기 와서 한번도 안 재어봤기에 내심 호기심에 가득차서 눈금을 보았는데.....
오 마이 갓, 저울의 눈금은 예전 내 몸무게보다 6kg 더 나간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unbelievable 이었다. 그래 좋아, 겉옷을 입고 있었고, 저녁을 먹은 직후였고, 저울이 약간 부정확한 걸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해보아도 6kg나 찌다니 웃어얄지 울어얄지 정말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급작스레 내 뱃속에 있는 음식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안 그래도 조여오던 바지 허리단이 더욱도 조여져오는 느낌이었다. 엄마한테 말하면 아마도 틀림없이 기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향으로 살이 찐 것 같진 않아서 영 찝찝하다. 마치 시계의 숫자로 분절된 삶 이전에 자연의 주기에 맞추던 삶이 있었던 것처럼, 저울의 숫자 이전에 내 스스로 느끼는 몸의 상태가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며, 무려 6kg나 쪘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불편해하거나 하진 않았잖아 하고 생각해보지만 영 찝찝한 것이 거참..지금 내 몸의 체성분 분석을 해보면 6kg의 대부분은 여지 없이 체지방이 아닐까..한편으론 여기와서 나름 꾸준히 많이 걸었으니 그렇게 또 우울한 결과가 나올까 싶기도 하고. 암튼 한국 돌아가면 무조건 첫째로 단식을 해야지 하는 다짐이 굳게 들어버렸다...후훗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