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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2/11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2/11
    향뮤직(7)
    나르맹
  2. 2010/02/11
    비폭력과 계급
    나르맹
  3. 2010/02/11
    <버스정류장>(1)
    나르맹

향뮤직

시와 앨범 예약판매 광고를 보았다. 미리 앨범을 사주면 막바지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그 말에 이끌려 예약구매를 하려고 했다. 시와님 계좌로 직접 송금을 하거나, 향뮤직에서 사거나. 앞으로 향뮤직을 종종 이용할 것 같아서, 적립금 좀 쌓아보려고 회원가입을 하려고 했는데, 설마 했건만 안타깝게도 주민등록번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개인정보약관을 읽어보니, 중복회원가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개인정보 보관에도 신경을 쓰겠다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이미 내가 여기저기 가입하며 뿌리고 다닌 것도 있는데 여기서만 또 깐깐해질 필요 있냐는 생각으로 적고 가려는데 환불계좌 정보도 적어야 한다기에 그냥 회원가입을 포기했다. 주민번호와 계좌정보만 있으면 사실 cms 출금 이런건 식은 죽 먹긴데. 향뮤직을 못 믿는 건 당연히 아니구. (심지어 엊그제 향뮤직에서 본 직원분의 관상과 느낌은 매우 호감형이었다).

 

회원가입 페이지를 다시 찾아보았다. '일반 회원 가입', '국내 체류 외국인 회원 가입', 'If you are a foreigner' 이렇게 세 개로 구분이 되어있다. 재미있는 건 '국내 체류 외국인 회원 가입'으로 가면 '외국인 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If you are a foreigner'로 가면 이메일 인증만 하면 된다. '국내인'과 '외국인'을 나누고 거기서 다시 또 등록증 없는 외국인을 나누는 건 도대체 무슨 기준인 것인지. 누구 말대로 인간은 나면서부터 그냥 고독한 타자일뿐인데.

 

그냥 맘먹으면 내가 외국인이라고 뻥치고 주민등록번호 없이 회원가입을 할수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가입을 해서 남들처럼 위시리스트도 채울수 있을 것이다. (결재시스템이 거기선 어떻게 적용이 될지 궁금하다.) 어쨌든 견고해 보이는 이 시스템도 사실은 이렇게 허술한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자각과 몰려드는 냉소. 등록번호가 없는 '불법체류자'도 어쨌든 고객은 고객이라는 자본주의적 친절함? 심지어 이 세번째 방식의 회원가입을 하면 인터넷 결재도 ActiveX를 설치할 필요없이 파이어폭스에서 바로 가능한 모습을 발견할까봐서 무섭다.

 

적립금에 내 영혼을 팔까 말까. 일단 시와 1집은 계좌이체로 사야지. 씨익

 

사족.

<충사> 애니를 다운받아 보기 시작했는데, '자기 몸의 감각으로 느낀 것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대사가 있었다. 개인정보에 대한 나의 민감함은 말로 명확히 설명될 수 있는 것보단 그냥 내가 느끼는 '찝찝함, 발가벗겨짐'이라는 부분에서 연유하는데, 이런 나를 이해못하는 동생에게 이 느낌을 납득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험하며 약간은 절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세상엔 '나와 이해를 공유하는 사람', '나와 아직 이해를 공유하는 부분이 많진 않지만 노력을 해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별로 이해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이렇게 세 부류의 군상이 남았다. 비폭력의 핵심은 인간의 변화가능성을 믿는 것인데, 세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어디 가서 평화주의 신념으로 병역거부 한다는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다. 하하. 존재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굳이 좇으려고 할 때 신을 믿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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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과 계급

제목을 '비폭력과 계급'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번역해서 가져다 붙인 건 아니고, 이 사람 을 내가 흥미롭게 읽은 이유라서 그리 붙여봤다. 비폭력의 방식-파업, 보이콧, 농성, 데모- 으로 억압적인 정치체제를 전복한 그 동안의 사례들-인도, 남아공,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을 보면, 민주화democratization는 됐을지 몰라도 경제적 양극화는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해지지는 않았냐는 질문이다. 그렇다고 비폭력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비폭력의 사례들을 인용할 때에 정치적 차원의 민주화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도 주목을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일전에 FTA 반대 데모 많이 있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도 함께 제기가 되던 기억이 났다. 위에 인용한 저자의 질문을 한국 상황에 적용한다면 예컨대 87년 민주화 아님 97년 정권교체의 성과와 한계 이런게 아닐까. 물론 이 동네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비폭력 데모의 범주로 넣는 것 같진 않지만.

 

암튼, 이번에 우크라이나 대선 결과 2004년 있었던 '오렌지 혁명'이 종식되었다면서 새로운 대통령 당선의 의미를 찾는 포스팅을 봤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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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근데 내가 매끄러우라고 몇 자 적어놨어. 그냥 참고해봐. 싫으면 할 수 없고"

"선생님은 원래 사람들한테 그렇게 대하세요? 싫으면 할 수 없고, 너무 자신있는 말이잖아요?"

"자신없는 게 아니고?"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상대의 반응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거 아닌가?"

"글쎄 그냥 난 솔직하게 말한건데"

"솔직하기보단,, 그냥 애정이 없는거겠죠."

 

왠지 보고나면 기분이 처질 것 같아서 몇 번 참다가, 결국 다시 본 영화. 감독 이미연. 배우 김태우, 김민정. 혼자 보는데, 대사들이 적나라하면서도 한편으론 부정할 수도 없어서, 혼자 무릎을 치며 허허 웃어가며 봤더랬다. 영화에서처럼 '진실게임'을 빙자한 '거짓말게임' 한번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선생님, 선생님은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거짓이요"

.....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은 꼭 필요한 거잖아요."

 

 

 

 

 

 

영화에 나오는 김태우보단 더 '잘' 살아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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