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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독서일기. 그동안 아껴두었던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이번에 읽었다.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불신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또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이성과 감정, 기억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야만 하는 역설적 상황. 가슴 아릿한 구절이 너무 많았다. 아우슈비츠를 떠올리면 한국의 감옥은 훨씬 더 견딜만한 곳일 것이라는 묘한 위안.
"역사와 삶 속에서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잔인한 법칙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삶을 위한 투쟁이 원초적인 메커니즘으로 축소되어버리는 수용소에서, 이 불공평한 법칙은 공공연히 효력을 발휘하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굴복하는 것이다.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일터와 수용소의 규율에 따라서만 배급을 먹으면 된다."
-134-135쪽
"'변화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수용소의 격언 중 하나였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은 우리에게 모든 예측이 헛되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의 그 어떤 행동도, 그 어떤 말도 미래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뭐하러 고통스럽게 앞일을 예측하려 하겠는가? 우리는 고참 헤프틀링이었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는 게 우리의 지혜였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 178-179쪽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비가 오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다. 혹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하지만 오늘 저녁 내가 추가로 죽을 배급받을 차례라는 것을 안다. 혹은 상황이 더 안 좋아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보통 때와 다름없이 배가 고프다. 그러면 정말로 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을 때마다 종종 그렇듯 정말로 마음속에 고통과 지루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좋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건드리거나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러면 비는 끝이 날 것이다."
-201쪽
"운명의 선물은 단번에, 가능한 한 철저히 즐기면 된다. 내일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으니까."
-214쪽
"코만도의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그러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 내가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침에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216쪽
- 어젯 밤엔 인천의 어느 구청에 단수여권을 발급하러 가는 꿈을 꾸었다. 4시 반이 마감이었는데 후다닥 뛰어가서 번호표를 발급받고 마지막 순서로 줄을 서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난 급한 마음에 인지를 안 사붙이고 일단 작성한 서류부터 냈는데 그 공무원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오늘 업무는 이제 끝이 났다고 다음에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억울해서 그 공무원을 붙잡고 사정을 좀 했더니,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오되 대신에 신청 후 한시간 이내에 바로 여권을 받아갈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다고 했다. 그런데 난 그 구청이 집에서 먼 곳이기에 그냥 다음에 서울에 있는 구청으로 가야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꿈이 깼는데, 생각해보니 서울에 있는 구청으로 다시 가면 발급하고 나중에 또 한번 찾으러 가야하는 건데 그냥 인천의 그 구청에서 그 공무원의 제안을 받아들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왜 이런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_-; 책 내용이랑은 상관이 없지만 여튼.
낮에 마을버스를 타고 숙대쪽으로 나가는데 버스에서 영진씨를 만났다. 새삼 사람 일이란 참 공교롭다 싶었던게, 엊그제 조은 파티 때 잠깐 영진씨 얘기를 나누면서 프랑스에서 공부 잘 하고 있나 이런 말들을 했었는데 마침 그렇게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무지 반가웠다. 6월 초에 서울 들어오기 직전까지 프랑스에선 추위를 탔는데, 서울 돌아오니 참 후덥지근하다는 날씨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난 가끔 추운 것과 더운 것 중에 선택을 해야한다면 무얼 고를지 고민을 하곤 한다. 굳이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히 선선한 날씨만 계속 되는 건 왠지 삶에 재미가 줄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 내가 원하는 좋은 일만 있을리는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있기도 하다. 여튼, 그래서 둘 중에 고르라면 그래도 추운 것보단 더운 게 생존에 그나마 친화적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은행에 가서 조은 후원계좌를 만들었다. 아이디 비밀번호 등등 다 예전에 전없세 재정 일 할 때 쓰던 것들하고 비슷하게 정해버렸다. 체크카드와 인터넷뱅킹까지 한번에 해결한 스스로를 기특해하면서.
학교에 가서 '중등교원자격 무시험검정원서'를 제출했다. 500원 수입인지를 붙이고 신상에 관한 몇 글자를 적어내는 것으로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니, 기분이 참 묘하다. 일정 학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리 내 점수가 안 좋기로서니 그 커트라인을 못 넘을까 싶다(라고 믿고 있다). 이걸 따려고 이렇게 졸업에 집착을 했던건가 싶은 약간의 허무함도 든다. 운전면허증 다음으로 많은게 교사자격증이라고 하지만, 암튼 부모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므흣하긴 하다. 친구랑 같이 도서관에서 잠시 시간을 때우는데, 이 공간도 조만간 영원히(라는 건 없다고 믿긴 하나) 빠이빠이라는 생각이 드니 괜한 아쉬움도 들었다.
씨네큐브에서 <시>를 보았다.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마음 한구석이 걷잡을 수 없이 착잡했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같이 봐도 좋았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하하>에서 문소리를 보면서도 그랬고, <시>에서 윤정희를 보면서도 연기력에 절로 감탄을 했다. 산자락을 휘감으며 흐르는 남한강도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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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프리모 레비..스스로 증인이 되기 위해 살아남았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전달과 소통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다가,
어느날 아무 말도 없이 자살한...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죠. 알면 안될 것 같았어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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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경식 선생님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프리모 레비를 알게됐던 것 같아요. 뭔가 암울하고 처절한데 여전히 잔잔하고 포스있는 분위기가 좋았다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