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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경
대한파킨슨병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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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가족의 중심축입니다. 식구중 하나가 아프면, 집안의 여성이 주돌보미가 될 것입니다. 그럴 확률이 압도적이죠. 그런데 만일 그 돌보던 여성 본인이 아프다면? 이때는 얘기가 달라지지요. 미국 의료사회학에서 최근 연구한 결과를 보면 부인이 병이 들었을 때, 남편이 병들었을 때보다 이혼율이 올라가는 현상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최근 암과 다발성 경화증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는 이 병들에 걸린 배우자가 부인일 때, 이혼과 별거가 여섯 배로 증가함을 보고했습니다. 부인과 남편 중 어느 쪽에서 먼저 별거를 주장했고 왜 이혼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파킨슨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동네병원 대형병원 할 것 없이 어느 의료기관에 가도 많은 노인들을 봅니다. 좋은 의료서비스가 있으니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제가 9년째 앓고 있는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라서 저는 세브란스병원 파킨슨병 센터에 갈 때마다 노인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다가 진료를 받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여기서 재밌는 현상을 봅니다. 여성환자들이 대부분 혼자 앉아 있는 반면에 남성환자들 옆에는 꼭 누군가 돌보미가 있습니다. 아마 이 분들은 환자의 부인, 딸, 며느리들이겠지요.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경우는 어쩌다가 봅니다(물론 여성이 평균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 종국엔 여성 혼자라도 병원에 가야하겠지만).
특별히 남성환자들이 여성환자보다 더 의존적이기 때문일까요? 앞에서 말한 이혼율 같은 문제를 생각하면 분명 그런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제 관심사는 조금 다릅니다. 파킨슨병에 대한 제 경험으론 성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은 이상운동증상이 좀 늦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우울증과 같은 비운동증상은 더 빨리 나타나는 것 같고요. 또 여성은 걷기와 옷입기 같은 일상 활동에서 남자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고, 인지손상과 언어적 문제는 남성환자보다 덜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모든 임상실험에서 대표적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발작 연구에서 초기연구는 여성은 거의 심장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남성 참여자만 허용했는데, 이 가정 때문에 여성이 심장병으로 진단받는 일조차 힘들게 했다고 하지요. 여성운동단체에서 항의하자 드디어 여성도 연구에 한 요인으로 들어갔고, 요인으로 자리 잡자 여성은 심장병에 잘걸리지 않는다는 가설은 틀렸단 것이 증명되었지요. 오늘날 미국여성의 주요 사망원인중의 하나로 심장병을 꼽습니다.
중노년기에 가장 흔한 당뇨나 고혈압의 제증상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것과 달리 파킨슨병은 수족이 떨리거나 뻣뻣해지고, 행동이 굼뜨며 잘 넘어지기 때문에 여성환자들은 외출을 포기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는 가뜩이나 신경과 전문의에게 진찰받을 확률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22%나 적은데다가 전문 의사에게 좋은 케어를 받기도 어렵다는 뜻이므로, 여성은 더 힘들게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임상실험 참여 기회도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여성 파킨슨병 환자와 남성 파킨슨병 환자의 경험과 욕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바로 전까지 거의 모든 파킨슨병 임상연구의 참여자는 남성이었는데, 여성은 실험 처치에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덩치만 작을 뿐인 남성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가정입니다.) 파킨슨병 환자의 2~5%인 YOPD(Young Onset Parkinson’s Disease: 20대~50살 미만에 확진 받은 파킨슨병 환자. 저도 여기에 해당합니다만, 95%가 60대 이상에 확진을 받습니다.) 중 여성에게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이슈로 배아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한 결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실험처치에서 여성을 배제하겠다는 논리가 있는데, 단순히 위험부담을 미루자는 것일 뿐입니다. 여성이 평생 임신 가능성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성을 파킨슨병 연구에 포함시켜야 여성의 생리적인 변화가 어떻게 처치에 영향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자들은 여성참여자에게 이번 연구는 통제집단에 속하면 매우 힘들 수 있다는 둥 여성 참여자의 중도포기에 미리 대비?하는 처세를 하곤 합니다. 여성의 생리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없으니, 지레 여성을 배제하려 드는 것이지요. 이는 연구자가 남녀불문하고 모든 임상참여자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젠 종합병원의 경우 연구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으면 그렇게 참여하기 힘든 연구는 아예 시작도 할 수 없지요.
인류의 절반만을 위한 치료제 개발은 어불성설입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슈가 아니며, 혹은 정치적인 수사학도 아닙니다. 다만 양성 ― 그렇습니다, 임상연구에서는 아직도 性이 두 개뿐인 것이 현실입니다 ― 이 다 포함된 연구를 시작하라는 것뿐입니다. 우리들, 여성 파킨슨병 환자들은 스스로 당당히 증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우리의 증상을 경감하는 치료제의 개발을 요구해야 합니다. 나아가 ‘남성’과 ‘여성’에 이어, ‘양성’으로 수렴되지 않는 모든 젠더를 가진 이들의 다양한 증상을 고려한 치료제 개발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성에 따라 주로 걸리는 병과 그 병의 증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병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리고 전문가 집단의 태도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일 것입니다. 병이 이렇게 젠더화 되는 한, 건강 또한 젠더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젠더만이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학이 인간의 기본형으로 삼는 남성이 아닌 모든 성을 임시로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여성의 병을 아는 사회가, 여성의 병을 치유하는 사회가 될 때에야 비로소 건강한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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