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감정이 마음에서 싹튼다는 것은 분명 삶이 행복한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언제나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랑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상호적이지 못한 감정은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과 같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타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의 사랑이 너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나의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나의 사랑은 패배자의 증오와 같은 감정으로 끝날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전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하고만 등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네가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너는 예술적인 소양을 쌓은 인간이어야 한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바란다면 너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간 - 그리고 자연 - 에 대한 너의 모든 관계는 너의 의지의 특정한 대응에 상응하는, 너의 현실적, 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네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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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49 2012/01/08 20:49

가끔씩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나 손등에 상처가 난다. 어떻게 해서 생긴 상처인지 알 수도 없다.

블로그의 글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일기가 아닌 글을 쓰기가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노예는 단 하루의 자유가 오히려 불안한 법이다. 20년 만에 기형도의 시집을 샀다. 2010년도 벌써 12분의 1이지나갔다. 한 달 동안 나는 자유로운 노예였다는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도 시집을 펼쳤을 때 이 시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집 앞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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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45 2012/01/08 20:45

세상이 더는 신비롭지도 않을 뿐더러 더 아름답게 변하리라고 생각하기 힘든 시기에 접어 들었다. 벌써 마흔을 훌쩍 넘겼고, 세상도 사람도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나는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념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여젼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사상의 거처

/ 김남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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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42 2012/01/08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