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

갈무리 2015/02/01 21:41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남자들보다 여성들은 대체로 일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매년 새해가 되면 소위 '다이어리'를 사서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손으로 꼼꼼하게 쓰곤 하는 것을 가끔 본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가까이 있는 여성들에게 일기를 쓰는지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물어본 사람들 중에 대략 60% 정도는 일기를 쓴다고 했는데, 모두 노트나 '다이어리'에 쓴다고 했다. 남성들의 경우 열이면 열 모두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나이에 그걸 왜?" 이런 식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현저하게 다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두 인종이 정말 태생이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성들이 일기를 쓰는 이유 중 '그냥 심심하고 외로워서' 일기를 쓴다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심하고 외로워 일기를 쓴다. 나는 이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지만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법은 다 다르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특히 다르다.

나도 가끔 일기를 쓴다. 물론 노트에 쓰는 것은 아니고 한글 워드를 열고 노트북으로 쓴다. 나는 왜 일기를 쓸까? 나는 어떤 면에서 일기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중년의 남성들 사이에서 독특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50대를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일기를 쓴다. 나는 왜 일기를 쓰는 걸까? 나도 외로운 것일까? 나는 솔직히 말하면 심심해서 쓴다. 말 그대로 그냥 쓴다.

10대에는 일기를 잘 쓰지 않았다. 억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초등학교 때 말고 일기를 자발적으로 쓴 때가 아마 16살이었을 때였나 보다. 사실 그때는 주위 동기들 몇몇은 일기를 쓰고 있었고, 또 홀로 학교 운동장 스탠드 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노트를 열고 뭔가를 쓰고 있는 그런 놈들도 몇 있었다. 그때는 다들 문학청년이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17, 18, 19살 때는 일기를 자주 쓴 것 같지는 않다.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 때부터 였다. 물론 그때 쓴 일기장이 몇 권 있는데, 간혹, 읽어 보면 좀 우습다.

그때 쓴 일기와 요즘 쓰는 일기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스무살의 그 시절을 격정에 휩싸여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이었을 때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는 아마 매주 두세 통의 연애편지를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연애를 격정적으로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없겠냐만 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그렇게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떻게 해서 한 살 아래의 여학생과 연애를 시작했는데, 좀 느리고 질기고 맥없고 격정적이고 그런 모순적인 날들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연애를 했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났는데 만나서 멋진 데이트를 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또는 그 이상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물론 예쁜 꽃편지지에 서너 장의 편지를 깨알같은 볼펜 글씨로 써서 그녀의 하루를 알려 주곤 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 받았으니 그 분량이 얼마나 많겠나! 물론 나는 그 편지가 지금 어디 있는지 밝힐 수는 없다. 그런데 20년 만에 아주 기이한 사건으로 그녀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그녀는 내가 그때 보낸 편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일기를 쓰면서 노트나 소위 '다이어리'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볼펜을 잡고 힘주어 행간에 글씨를 새겨넣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나의 흔적으로 더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파일로 저장하는 일기는 얼마나 단순한가! 지우기도 쉽다. 우연히 실수로 지운들 무슨 큰 일이 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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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21:41 2015/02/01 21:41

돌체, Dolce

갈무리 2015/01/23 21:58

"한 외국인 연주자가 독일의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Bb 장조, KV595>를 연습하면서 현악기를 향해 이렇게 외친 적이 있습니다. "신사 여러분, '돌체'로 연주하세요! 돌체는 감미롭다는 말이죠."(40년 전만 해도 오케스트라에는 남성 단원들 밖에 없었답니다.) 또 어떤 유명한 연주자는 베토벤의 '돌체'를 마주하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 하기도 했지요. "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이 그 하나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감미롭게(süß)'라는 표현으로는 무언가 한참 부족한 점이 있지요. 이탈리아어의 의미를 살려 '섬세하게(zart)라는 단어를 선택한다면,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할 때에도 따스함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살려야 합니다. 에스프레시보(espressivo)가 외부를 향한 것이라면 돌체는 내면을 향한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innig)'이란 표현이 돌체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군. '내면적 섬세함을 살려(zartinnig)'가 그나마 가장 적확한 표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느껴지는 떨떠름한 맛을 떨쳐낼 수는 없지만요. 따스함, 섬세함, 내면성은 베포벤 음악의 서정적인 면모를 구성하는 주요한 특성들입니다. 이를 자세히 눈여겨보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듯합니다."(알프레드 브렌델, <피아노를 듣는 시간>,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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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3 21:58 2015/01/23 21:58

이 세상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지문이 다르고 홍채가 다르고 말씨나 음성의 톤이나 말하는 스타일까지 세상에 같은 것은 없다. 단지 모방하고 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만 그런게 아니다. 기계도 다르다. 똑같은 라인에서 생산된 제품도 제각각이다.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뿐만 그런게 아니다. 사실 사람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모든 것들이 차이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어의 "individual"이 사람에게 적용된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서구 역사에서 "개인"이 비로소 등장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똑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 똑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한데, 이걸 아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게 사실 참 쉽지 않다.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안도감이나 위안을 얻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도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사로 인사를 한다. 낯선 사람과 언쟁을 하다가도 그 사람이 같은 혈족이나 동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태가 달라질 수도 있다. 연인들도 상대가 자신과 같은 취향이길 바라거나 그렇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약간의 차이를 발견할 때조차 놀라거나 당황하고 심지어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특히 취향보다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개인이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지만, 아주 강고하게 개인을 묶고 있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사람의 습속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같은 음악을 듣다가도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지휘자나 연주자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기계 때문인 경우가 더러 있다. 동급의 기계라도 약간씩 다르다. 최근에 이 기계가 참 묘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같은 기계라도 음질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의 귀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게 느낄 때가 가끔씩 있다. 기계는 고가일수록 차이가 크다. 그래서 사람들이 음악에서 오디오 기계로 관심이 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음악 재생프로그램을 깔면 또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기계의 경우 그 차이를 느끼려고 애를 쓴다는 점이다. 나는 이게 참 신기하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음의 차이가 이토록 중요하다니 말이다.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것처럼 생각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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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1 16:55 2015/01/21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