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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글쓰기 공포증!

 

굳이 긴 글을 쓰게 하거나 굳이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대학교 이전 시기를 거친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내가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친구들, 가족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랜 시간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들은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혹은 들어오기 위해서) 내가 요구받은 말하기, 글쓰기의 경우는,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였던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혹은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야만 하는 말이나 글을 요구하는 느낌? 나와 관계된 부분이 너무나 적어보이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가 타인이나 다른 집단에 대해 월권을 행사하는 느낌의 말하기와 글쓰기를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잘' 말하거나 '잘' 쓰고 싶다는 욕망, 상대방에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공동체에서나 수업에서 이른바 '잘'한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것들을 기억해보건대,

 

구체적 년도와 역사적 사례들, 유명한 학자의 논문에서 발췌 인용들을 곁들어서

비교적 너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논리적으로 허점이 거의 없는,

그런 것들.

덧붙이자면,

자신감 있는, 여유로운 태도와 확신에 찬 말투를 가진다면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된다.

 

나는 그렇게 말하거나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떤 글을 읽을 때 내 경험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골몰했고, 글에 대한 일차적 감상의 주된 내용이 내 경험과의 연결이었다.

 

만약 누군가의 말/글이 나에게 있어서는 좀 아닌 것 같다, 다른 것 같다 라는 느낌이 들 때,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이유'를 '누가 듣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만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경험에 대해서 말/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는, 너무 '개인적'이고 즉홍적이고 소소한 말/글이 되어서,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았고, 실제 내 경험과의 간극이 커져서 오히려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할까봐, 그게 두려워, 쓰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다.



 

공개된 말/글이라고 했을때,

그건 세미나 자리나 수업 시간 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비슷했다. 약간 '덜' 하다면 덜 한 측면이 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는 오프라인과 거의 마찬가지로 무서웠고,

그나마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을 수 있는'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글 게시도

무섭고 두렵고 꺼려졌다.

 

개인적이라고 여겨지는 공간이기에 더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게 나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끄적임, 이 일기, 이 글을 가지고 나를 판단하면 어쩌지. 간혹 내가 쓴 글을 보면 나 스스로도 수용할 수 없는 내 자아의 일부분을 보게 되는 때가 있었고 그런 내 자아의 일부분을 비록 친밀한 관계의 몇일 뿐이더라도(친밀한 관계가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보이도록 하는 건 무서웠다. 나의 어디까지를 수용해줄까 사람들은, 이런 느낌. 내가 쓰는 이 글이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는 않을까, 우리 관계에 흠집을 내지는 않을까, 나는 그럼 그 사람이 보고자 하는 나만을 보여야 하는 걸까, 이런 걱정들.

 

 

여성주의를 접하고, 여성주의를 하는(doing?)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내 말과 글도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나 스스로를 용납할 수 있는 관용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도 말/글은 많이 두렵다.

 

 

내가 가진 말과 글에 대한 공포감을 굳이 내 정체성의 여성이란 부분에 모두 환원시키고 싶진 않지만, 그냥, 얼마 전 방학 중 오픈 세미나를 위한 내부 프리 세미나 커리 였던 김성례 씨의 <여성의 자기 진술의 양식과 문체의 발견을 위하여>라는 글을 읽으면서 문득 위와 같은 생각들이 마구마구 들었다.

 

 

블로그에 글쓰는 거에 대해서,

아직도,

별거 아닌 포스트 하나 쓰고 하루 종일 노심초사하지만-_-

지금까지 조금씩 극복해 온 것처럼,

점차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고 노력해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말, 내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길. 부디.

 

 

 

 

 

 

*읽었던 글에서 조금 발췌

 

- 여성은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런데도 왜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말 안하기 위해 입을 꼭 다물고 비트는 몸짓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여성이 입을 열어 자신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해버리는 것은 그러한 말하기에 대한 거부감과 부자연스러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하나의 반역 행위이다.

 

- '말하기의 두려움'이란 사실 거짓말이나 막힌 말의 횡포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남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습관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느껴진다. '글로 말하기'에 이미 익숙한 배운 여성들에게 이러한 진실의 은닉은 더 여실하게 드러난다.

 

- 언어가 없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 말이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묘사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종종 자신의 말 서두에 붙이는 단서에서 나타난다. '내가 뜻하는 것은', '알다시피', '정말' 같은 삽입구는 자신의 말이 현실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지나친 걱정 때문이지만 이러한 걱정은 말을 막히게 할 뿐이다. 이와 같이 자기를 두려워하고 존재를 숨막히게 하는 억압 문화는 언어 공포증을 낳는 것이다.  

 

 

 

덧/

필요없는 덧말일 수 있지만,

내가 말하기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더불어서,

난 타인이, 특히 나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의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해서 약간의 거부감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그렇게 말이나 글은 잘하면서 대체 행동은 왜 그런거지?'

라는 식의-_- 실망감을 느낀 적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말과 글을 잘한다고 여겨지도록 만든 사람들이 주로 남학우들이었다는 점에서, 내 거부감은 더 짙어졌는데.

 

말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라, 라던가 나는 말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지, 라는 강박이나 완벽주의까진 아니었지만 말과 글이 중요한만큼, 바로 그만큼, 허무하다는 생각때문에 거부해왔던 것도 있었다.

 

말을 하는 것, 입술을 여는 것, 펜을 쥐는 것,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액션인 순간, 혹은 그런 집단의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만 멈춰서는 안되는 순간이 있고, 그런 순간의 어떤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좀만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아.

 

여기에 대해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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