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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맞이 청소

 

*

 

열장짜리건 한장짜리건 낼까지 내야 할 레뽀를 쓰기 싫어서,

'아직은 글이 안써지네, 삘 받으면 써야지' 이런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계속 빈등빈등 컴질하던 때처럼 ..

 

회의 정리를 미리 해두겠답시고 컴을 켠 후에는

계속해서 다른 것들을 하게 된다 흑

 



내일은 고향에서 엄마가 오신다.

멀기도 하고 오는데 돈도 많이 들고 해서

아주 뜨음하게 오시는지라, 오겠다고 하면 반갑고 설레지만!

 

"이나 김치 좀 가져가야지.."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나의 난감함이 시작된다.

무겁게시리 가방 가득 가져오면서 힘들어할 게 뻔하기 때문. -_-

 

나: 그런 거 택배로 보내면 되지. 뭐하러 힘들 게 직접 가져오게..

엄마: 별로 안무겁다. 안무겁게 쬐끔만 싸놨어. 안무거운만큼만 가져가면 되지뭐.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곧이곧대로 믿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

근데 언제나 마중나가보면 무거워서, 둘이 나눠 들어도 둘다 낑낑거렸잖아!! T_T

심지어 내가 마중 못나갔을 땐,

"이렇게 무거운 거 들고 오느라 힘든데 넌 나오지도 않고.." 라고 투덜댔잖아!! T_T

(남동생이 마중안가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흣)

 

이젠, 전화로 적당히 말리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대강 지는척, 고마운척-_-(실제로 고마운 일이고 고맙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 마무리 짓고,

마중 나가서 예상했던 장면-무거운 짐들을 낑낑대며 가져오는 모습-을 목격해도

울컥 해서 짜증내지 않으려고-"안그런다며!!! 내가 뭐랬어!!"-마음의 준비를 해간다.

 

여기서 난감함이 끝이 아니라는 거!

 

집에 엄마가 있으면,

집에 엄마가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사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너무나 안정돼.

퀘퀘한 내 자취집이

그야말로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엄마가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

공기가 다르게 느껴져.

내게 있어 그런 존재의 사람이니까. '엄마'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이십여년 간 나를 케어해준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런거야.

 

그런데!!!!!

난 엄마가 내 방에까지 와서, 서울까지 와서-엄마도 설레하면서 온게 보이는데-,  

무상으로 힘든 가사노동하는 걸 보는 게 너무 불편해!

그리고 그게 다 '날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게 불편해!

 

엄마가 방에 올 때 항상 몇시간씩 삐까뻔쩍하게 방을 변신시켜 줄 때면 ...

닦여나간 먼지들이 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온 듯, 그렇게 갑갑하다.

감사하는 만큼, 마음에 그늘이 져. -_-

 

그렇지만,, 절대 말려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엄마맞이 청소'를 한다.

 

청결함이나 청소에 남동생보다는 민감하지만 엄마보다는 무디기에-_-.

그리고 주위에 친구들과 비교해봐서도 무딘 편이기에;;

나 좋은대로 해놓고 사는 모습 그대로 두면

엄마가 할 일이 참 많아지기 때문에

엄마맞이 청소를 한다.

 

물론 내가 정말 나로써는 열심히, 불필요한 부분까지 마구 청소를 해도,

나보다 훨씬 가사노동에 있어 전문성을 가진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해놔도,

내가 미처 못본 부분들을 잡아내서,

"사는 꼬라지하고는~" 하면서 일을 시작하실테지만-_-

그래도 최대한 줄여 봐야지하는 생각.

 

청소를 하다가 문득 든 느낌인데.

그냥,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엄마맞이 청소를 하는 게 즐거웠다.

나를 위해서, 내가 필요한만큼 청소를 하는 것도 그럭저럭 유쾌할 땐 유쾌하지만,

(하지만 남동생에 비해 내가 더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했을 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못난 감정에 휩싸이기도... -_-)

누군가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기쁨이 있구나, 하는 생각.

엄마를 위해서, 라고 하지만 그건 동시에 엄마가 일을 덜하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지니까, 

내 마음을 위해서 이기도 한것이구. 후훗.

 

엄마가 있을 땐 옆에 둘 수 없는 담배를 제거하는 걸로 마무리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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