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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금언

"전쟁의 시작단계에서 진군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일단 공세로 나가기로 결정했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 나폴레옹의 전쟁금언 에서


전쟁의 기술과 관련한 유명한 고전으로는 손자의 손자병법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 또한 이들 못지않게 전쟁기술에 관한 비중 있는 인물로 거론된다. 한국에서는 흔히 나폴레옹 하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남긴 인물 정도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는 군사적 정치적 천재로서 세계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남긴 전쟁금언들은 오늘날에도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주의 깊게 검토해보고자 하는 것 역시 나폴레옹의 전쟁금언들 중 하나다. "일단 공세로 나가기로 결정했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밀어붙여야한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들은 아마도 이 구절을 이른바 공격경영의 이론적 근거로 삼으려 할 것이다. 노동운동에 복무하는 동지들도 나름대로 이 구절로부터 무언가 영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며, 단호하고 대담한 공격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그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나폴레옹은 단순하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지는 않았다. 또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나폴레옹의 실제 경험을 통해 그의 주장이 갖고 있는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전쟁금언이 갖고 있는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고 살리기 위해서는 비판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심사숙고


나폴레옹은 "진군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심사숙고"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비단 전쟁뿐만 아니라, 노동조합투쟁과 같은 일상적인 대결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많은 노동조합들에서 과연 바로 지금이 전면전에 들어가야 할 시기인가, 아니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이곤 한다. 자본가에 맞선 투쟁은 가상공간에서의 게임과는 달리, 아주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러한 격론은 불가피하다. 즉 우리는 승승장구하며 빛나는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쓰라린 패배를 겪어야 할 수도 있다. 패배할 경우 노동자들은 빚더미에 올라 끔찍한 경제적 고통을 맛보게 되고, 구속과 같은 처벌을 감수해야만 하며, 심지어 노동조합이 파괴되는 사태까지 야기될 수 있다. 때문에 당면한 투쟁의 조건과 상황, 자본가들의 준비정도와 우리의 준비정도, 서로가 갖고 있는 힘의 크기 등에 관하여 치밀하고 객관적이며 냉정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사숙고"의 결과 지금은 오직 자본가들에게만 유리한 시점이며, 우리로서는 투쟁의 준비가 대단히 불충분한 상황이라면 전면적인 싸움을 뒤로 미루고 보다 철저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오직 자본가들에게만 유리한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싸움을 시작한다는 것은 용감한 행동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대개의 경우 그 용감성조차도 단지 맹목성에 불과했음이 드러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투쟁을 위한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가장 적절한 시기가 다가왔는데도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면 모든 훌륭한 기회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불가피하게 투쟁에 나서야만 하는 경우


하지만 현실에서는 위에서 다룬 것처럼 단순하게 문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투쟁대열이 미처 충분한 준비를 완료하지 못했고 전체적으로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시점이지만, 달리 운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투쟁에 나서야만 하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 최근의 노동자투쟁들은 종종 그런 양상을 띤다. 자본가들은 자신에게 들이닥치고 있는 절박한 위기를 노동자에게 떠넘기기 위해 공세적으로 발톱을 드러낸다. 정리해고의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난다. 민주노조를 박살내려는 포악한 공격이 이루어진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단결의 첫걸음인 노동조합 건설에 성공하자마자 운명을 건 싸움터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자본가들의 가차 없는 공격 속에서 우리는 투쟁의 준비정도와 무관하게 투쟁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투쟁을 강요당했다 하더라도, 일단 투쟁이 시작된 이상 수세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공세를 취해야 하는 이유


나폴레옹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아무리 숙달된 기동능력을 가졌더라도 후퇴는 항상 부대의 사기를 약화시키게 된다. 왜냐하면 아군은 승리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반면 적은 승리의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노동자투쟁에서도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공격에 맞서 단호한 응징을 가하지 못한다면, 반대로 자본의 공격에 우왕좌왕하고, 숨을 곳을 찾고, 도망칠 궁리를 한다면 자본가들은 더한층 기세등등해질 것이다. 돌풍처럼 투쟁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한번 꺾인 투지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가령 하나의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충분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여 투쟁의 수위를 스스로 낮추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들은 스스로 투쟁의 수위를 낮춤으로써 자본가들도 적정선에서 양보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곤 한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근거 없는 희망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투쟁수위를 낮출수록 자본가들은 노동자투쟁을 더욱더 얕잡아볼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자본가들은 더욱더 공격적인 태도로 완전한 승리를 향해 돌진할 것이며,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주려 광분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애당초 투쟁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나폴레옹이 이야기했듯이 전면적인 투쟁을 개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서는 최대한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투쟁이 시작되었다면 최선을 다해 그 싸움을 전개하는 것만이 상황을 유리하게 반전시켜나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다.

그러므로 투쟁의 시기에 사기를 끌어올리고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초의 접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역량을 핵심지점에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기세와 투지에 놀란 자본가들이 대열을 추스르고 반격을 가해오기 전에 지속적으로 공세를 취하여 탄탄하게 진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요컨대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 투쟁이 개시되고, 비록 불리하지만 그 투쟁을 피해갈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머뭇거림이나 주저함 없이 최고의 결의와 투지로 무장하고 가장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만이 우리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고 승리의 가능성을 최대로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전진과 후퇴


그러나 전술은 단선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노동자투쟁의 일정한 시기에 옳았던 입장도 자본가들의 전술이 바뀜에 따라 옳지 않은 것으로 뒤바뀔 수 있다. 자본가들의 투쟁력이든 노동자들의 투쟁력이든, 이 투쟁력은 대단히 유동적이며 수시로 변화한다. 특히 투쟁의 매 국면마다 변동하는 대중들의 사기, 심리, 정서, 분위기까지 고려한다면, 특정한 시기에 유효했던 투쟁방향이 다른 시기에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는 나폴레옹의 주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나폴레옹 자신의 경험이 그것을 보여준다. 승승장구를 거듭했던 나폴레옹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채 러시아 원정에 나선다. 러시아는 나폴레옹 군대를 즉각 격퇴하는데 실패하고, 수세적으로 후퇴했다. 이 모습을 보고 나폴레옹은 승리감에 도취된 채 진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곧 늪에 빠졌다. 자신의 근거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옴으로써 각종 군수품을 조달하는데 애를 먹었다. 러시아의 날씨와 토양에 익숙하지 못한 나폴레옹 군대는 빠르게 지쳐갔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진격의 템포와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만, 후퇴하는 러시아 군대를 보며 승리감에 젖은 나폴레옹은 치밀한 계산을 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큰 타격만을 입은 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전진과 후퇴의 배합을 적절히 할 수 없는 자에게는 쓰라린 실패만이 기다리고 있다. 노동자투쟁에서도 다를 바 없다. 과감히 진격해야 할 시기에 움츠리고 주저앉음으로써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가령 최근의 철도파업들). 후퇴의 시점을 적절하게 잡아내지 못함으로써 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 또한 있다. 어떤 경우에 속하든 간에, 전진과 후퇴의 적절한 결합에 실패하는 경우 항상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 노동운동의 역사적 교훈이었다.



역사적 교훈


이상의 논의는 대략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1) 전면적인 투쟁을 앞둔 상황이라면 치밀한 준비와 계획 속에서 가장 적절한 진격의 순간을 잡아채기 위해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투쟁의 조건이 채 무르익기 전에 때 이른 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도 있다. 투쟁을 준비한다는 것은 곧 그 투쟁을 이끌어나갈 선진층과 광범한 대중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고, 최대한 밀접하게 결합하도록 조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본가들은 미리 시험적인 도발을 가함으로써 이 선진층을 "색출"하고 대중으로부터 솎아내고 싶어 한다. 충분한 사전 조직화를 통해 이 덫에 걸려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아무 때나 "결전"을 선포해서는 안된다. 여기서는 말 그대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2) 하지만 상황이 언제나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우리에게 유리한 시점과 조건에서만 투쟁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적을 전혀 상정하지 않고 전투를 사고하는 것이다. 수많은 생존권투쟁들이 보여주듯이, 미처 충분한 준비태세를 갖추지 못했지만 불가피하게 투쟁에 나서야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상황에서 "심사숙고하는 태도"는 아주 빠르게 "머뭇거리는 태도"로 변화한다. 일단 돌이킬 수 없이 투쟁이 개시된 상황이라면 더 이상 주저함 없이 가장 단호하고 공세적인 태도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장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3) 그럼에도, 전진과 후퇴에 관한 경직된 태도는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때로는 우리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후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힘을 다해 끝까지 싸워보지도 않은 채 지레 겁을 먹고 후퇴한다면 그 후퇴는 치욕적인 후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싸웠고, 단지 지금으로서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이상 투쟁을 밀어갈 수 없다면, 더 멀리 내다보고 더 멀리 도약하기 위해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현명함이 없다면 오직 "쓰라린 경험" 외에는 얻을 것이 없을 것이며, 과연 무엇이 실패의 교훈인지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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